전승화 / 《포노 사피엔스 경제학》 저자

 [특집] 띵동, 도착했습니다

직접 만나지 않고 물건을 구매하는 것을 떠올렸을 때 우린 흔히 배달 서비스를 머릿속에 그리지만, 기술 발달을 기반으로 비대면 소비는 굉장히 다양한 형태로 확장됐다. 길을 걷다가 무인으로 운영되는 가게를 보는 것이 일상이 된 요즘, 과연 사람을 만나지 않고도 실현할 수 있는 산업의 한계는 어디일까. 이번 기획에서는 코로나19로 급부상한 영역 중 하나인 언택트 산업의 전망을 조명해본다. <편집자 주>

 
 

언택트 산업, 전망은

   코로나19의 급속한 확산으로 전 세계가 전대미문의 보건 위기에 처하게 된 지도 벌써 6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세계 각국은 지역사회 감염을 막기 위해 국경 봉쇄와 이동 제한, 휴교령과 휴업령, 공공 행사 취소 및 공공장소 폐쇄 등 초강경 대책을 쏟아냈으며, 기업과 시민들도 다중이 모이는 것을 자제하는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에 적극 동참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는 좀처럼 종식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뉴욕타임즈의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T.Friedman)은 “세계는 이제 코로나 이전인 BC(Before Corona)와 코로나 이후인 AC(After Corona)로 구분된다”고 기술한 바 있는데, 그의 말처럼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우리 인류의 삶이 항구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특히 건강과 위생에 대한 경각심이 극에 달하면서 사람 간의 부대낌으로 북적이던 일상은 불과 몇 달 만에 사람과의 접촉 자체를 피하는 언택트(Untact, Un+Contact의 합성어) 방식으로 빠르게 재조정되고 있다. ‘만나지도, 만지지도 않는다’는 새로운 일상, 언택트 시대가 열린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또 다른 이름, 언택트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급부상한 언택트 산업은 ‘디지털 기술을 통해 사람과 사람 간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사람 간의 상호작용을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비대면, 비접촉, 무인 서비스를 포괄하는 산업’으로 정의될 수 있다. 언택트 서비스들은 모두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에 기반한 것들이다. 이러한 디지털 기술은 본질적으로 사람이 하는 일을 대체하고 사람 간의 상호작용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는 그동안 우리가 오프라인 세상에서 아날로그 방식으로 행하던 여러 가지 경제 활동을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디지털 방식으로 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이 된다. 따라서 갑작스러운 언택트의 일상화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 모든 산업 영역에서 그만큼 더 빨리 진행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모든 변화의 과정이 그러하듯, 디지털 전환 역시 관성에 의한 반발과 저항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익숙한 습관과 방식이 바뀌는 것을 싫어하는 성향이 강한 데다가 기존의 생활양식과 괴리가 클수록 변화에 대한 저항도 더 커진다. 지난 몇 년간 디지털 기술의 괄목할 발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일상생활은 그다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 사태는 언택트라는 새로운 생활방식에 대한 거부감을 일시에 잠재우고 사회 전반의 급진적인 인식변화와 행동 변화를 불러왔다. 온라인 유통과 비대면 소비를 중심으로 수년간 서서히 진행돼 온 디지털 전환이 이번 상반기가 기점이 돼 급작스럽게 모든 산업과 다양한 삶의 영역으로 확산된 것이다. 그 결과 그동안 대중화가 다소 더디게 진행되던 많은 서비스들과 관련 기술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으며, 디지털 전환을 주저하던 기업들조차 앞다퉈 언택트 마케팅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언택트라는 새로운 생활방식에 대한 사회 전반의 코페르니쿠스적 인식변화와 행동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이유 있는 급부상


   이처럼 단숨에 급부상한 언택트 산업이 향후에도 주류 경제 현상으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음의 3가지 요인을 중심으로 설명될 수 있다.
   첫째, 정부의 강력한 봉쇄·격리 정책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본인의 선택 여부에 관계없이 언택트 서비스에 의존해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동안 기술 발전 속도에 비해 개인이나 기업, 정부의 변화속도가 늦다는 것은 여러 차례 논의된 바 있는데, 그중에서도 정부의 정책 변화가 가장 더디고 느리다는 것이 통설로 여겨진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정부의 강력한 봉쇄·격리 정책이 개인이나 기업의 기술 적용 속도보다 더 빠르게 취해진 매우 이례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코로나19 사태는 로저스(E.Rogers)의 혁신확산이론으로 설명되는 캐즘(Chasm)이나 시장조사기관 가트너(Gartner)의 시장기대치주기로 설명되는, 신기술에 대한 대중의 환멸 단계를 이미 넘었거나 혹은 이제 막 넘으려고 하는 많은 언택트 서비스들이 급속하게 대중에게 전파되는 효과를 냈다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확산되던 지난 5월에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가 “2년 동안에 걸쳐 이뤄질 디지털 전환이 최근 2개월 사이 일어나는 걸 경험했다”고 말한 것도 바로 이 같은 맥락이다. 또한 온라인 교육이나 재택근무와 같이 그동안 소수의 사용자들만 이용했던 서비스가 갑작스럽게 대다수의 이용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다. 이는 다운스와 누네스(L.Downes & P.F.Nunes)의 빅뱅 파괴 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는데, 이미 보편화된 디지털 기기와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빅뱅과도 같이 대다수 사람에게 침투해버리는 파괴적인 신기술도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언택트 서비스가 이렇듯 빠르게 우리의 일상 곳곳으로 확산된 것은 건강과 신체적 안전에 대한 우리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A.H.Maslow)의 욕구 이론처럼 질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하는 안전에 대한 욕구는 생물학적 욕구와 더불어 우리 인간의 가장 강력한 동인이며, 이는 사회적 욕구에 우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언택트 서비스가 단순히 건강과 안전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다는 이유로 확산되지는 않는다. 해당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유사한 서비스가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컨설팅기업인 베인 앤 컴퍼니(Bain & Company)는 고객의 선택을 받는 서비스들은 기본적인 욕구 충족을 넘어서 그들에게 다양한 가치 요소를 한꺼번에 제공하는 기업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밝혀낸 바 있다. 이는 곧 감염의 위험과 불안을 감소시켜주는 많은 언택트 서비스 중에서 보다 확실하고 다양하게 고객의 불만을 해소해주거나 혜택을 부여해주는 인지 가치가 큰 서비스들만이 다수의 이용자에게 수용·확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래를 향해 더욱 빨라진 디지털시계


   요컨대 이전에는 특정 산업과 고객층을 중심으로 서서히 확산되던 언택트 서비스가 전 산업 및 고객층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욕구를 자극하며 단숨에 주류 경제 현상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금번 사태를 계기로 급격하게 일상화된 언택트 서비스의 편의성을 이미 대다수의 소비자가 체감한 상황이기 때문에 코로나19가 완화되거나 종식된다 해도 비대면·비접촉·무인화라는 언택트 추세는 앞으로도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또한 5G 시대의 도래와 함께 더욱 실감 나고 효과적인 언택트 서비스를 위해 다양한 초실감, 초개인화 기술들도 봇물 쏟아지듯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가상증강현실 기술과 3D 안면인식, 엣지 컴퓨팅 등을 활용한 AI 기술의 발전 속도와 대중화가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된 상황이므로 언택트 서비스 고도화 역시 빠른 시일 내에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5G의 초저지연, 초연결성으로 인해 드론이나 자율 주행 자동차, 스마트 팩토리, 휴머노이드 로봇, 스마트 시티 등 새로운 무인 서비스 분야도 당초 예상보다 최소 1~2년 더 빨리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 우리는 앞으로 일어날 디지털 전환의 미래를 미리 엿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본격화된 ‘소매업의 종말’을 시작으로 다른 산업까지 확대됐을 언택트로의 전환이,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의 오프라인 활동이 한꺼번에 멈춰 서면서 경제 전체가 일시적으로 마비되는 미증유의 경제 위기로 불거진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우리가 체감한 디지털로의 생산방식 전환을 일컫는 4차 산업혁명의 변화 속도에 비해, 언택트로의 소비 확산 속도는 가히 기하급수적이라 할 수 있다. 정부와 기업은 물론, 소비자이자 동시에 생산자인 우리들 역시 이미 와버린 미래에 대한 대비를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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