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선 / 간호학 석사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후 간호사의 경험』 김희선 著 (2020, 간호학과 석사논문)

 

본 지면은 학위 논문을 통해 중앙대 대학원에서 어떤 연구 성과가 있는지 소개하고, 다양한 학과의 관점을 교류하고자 기획됐다. 이번호에서는 간호학과 김희선의 석사 논문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후 간호사의 경험』을 통해 병원에서의 간호직무 현장을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간호사, 참 힘들다

 

김희선 / 간호학 석사

 

 
 

   최근 직장 내 괴롭힘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으며 간호사의 경우,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의 비율이 타 직종에 비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들 중 65% 이상이 근무기간 중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 간호사의 직장 내 괴롭힘은 연령, 근무 기간, 근무 부서 등 개인적 상황 요인과 조직 문화, 관리자의 관심 및 리더십, 동료의 지지, 조직의 정체성·도덕성·용인 등과 같은 조직적 요인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간호사의 직장문화 특성상 직장 내 괴롭힘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고, 그마저도 간호사가 되기 위해 견뎌내야 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취급되는 부적절한 인식으로 인해 적절한 대처가 이뤄지지 않다는 점도 문제가 된다. 간호 집단의 직장 내 괴롭힘은 근무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고 직무 불만족으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이직 의도와 결근율 증가, 낮은 업무 생산성과 만족감 저하 심지어 투약오류 발생 등으로 문제가 확장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에 특별한 관심과 대책이 필요하다.
   2019년 7월 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됐다. 그러나 해당 법이 시행된 후 간호 근무환경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제도와 관련된 문제와 개선안에 대한 구체적 연구가 미비한 실정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후 간호사가 주관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심층적인 내용과 적용 과정에서의 다양한 사례를 파악하고자 했으며 질적 현상학적 연구를 적용했다.


구조화된 ‘태움’


   직장 내 괴롭힘이란 사용자나 다른 근로자가 업무와 관련해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침해를 주는 언행을 일컫는다. 힘의 불균형을 가진 조직에서 억제된 사고와 감정이 표출될 때 더 심하게 나타나는 이러한 괴롭힘은 권력 관계로 구조화된 병원 내 간호사들이 환자들과의 관계나 타부서와의 업무 조정 중 발생하는 스트레스를 올바르게 표출하지 못하고 내면화시키며 발생한다. 이 모습은 억제이론 측면에서 지속적인 욕구불만과 좌절로 인한 분노를 느끼는 와중 좀 더 무기력해 보이는 동료를 괴롭히는 것으로 설명된다. 특히 여성의 경우 청소년기 이후 공격방식이 강화되며 업무 시 발생하는 분노와 자기 비난이 투쟁방식으로 변화한다. 대부분 여성으로 구성된 간호사 조직 문화엔 학습된 직장 내 괴롭힘이 자연스럽게 녹아있어 괴롭힘에 대한 내성 합법적 권력 남용을 불러온 것이다.
   국내의 경우 간호사의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된 연구들은 2000년대부터 시작됐다. ‘태움’은 부당한 혼냄, 이유 없이 눈치 보게 하는 간호사들 간 대인관계 갈등의 한 형태로 직장 내 괴롭힘에 포함되는데, 신규간호사에게 태움은 신체적·정신적 상처가 될 뿐 아니라 이직까지 고려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실제로 신규간호사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22.3%가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했으며 2011년 신규간호사 33.6%는 입사 후 1년 이내에 이직했고 2017년을 시작으로 33.5%, 38.1%, 42.7%를 기록하며 그 비율은 매해 상승하고 있다.
   신규 간호사가 조직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원인은 조직 내 지지적인 분위기의 부족과 동료로부터 경험하는 대인관계 갈등으로 알려져 있다. 신규간호사는 간호사 중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을 가장 많이 경험하는데, 업무의 적응과정 중 선배 간호사들로부터 ‘태워져야 배운다’는 말을 들으며 비합리적인 행태로 교육받는다. 예를 들면 선배 간호사가 신규간호사한테 소리를 지르거나 환자 앞에서 실수를 지적하고 비아냥대는 행위를 비롯해 꼬집기 등과 같은 신체적 폭력도 행사하는 것이다. 신규간호사가 아니어도 업무에 미숙한 모습을 보이는 간호사는 피해자가 되기 쉽다. 이는 간호 현장에서 위급한 업무가 많아 한 사람의 부족함이 다른 사람 업무의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간호사의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연구 중 조직적 요인이 개인적 요인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있다. 이는 곧 간호사의 직장 내 괴롭힘을 더는 개인적 문제로 치부하는 것이 아닌 조직적 차원의 문제로 인식하고, 그에 대한 관심과 체계적 예방 및 대처가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한편 지금까지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한 연구 진행이 많았음에도 태움이 묵인됐던 이유는 간호 업무가 생명을 다루는 엄중한 일로, 업무 과정에서의 태움이 다분히 발생할 수 있다고 여겨지거나 괴롭힘을 경험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을 거라는 부정적 편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당한 상황을 겪으면서도 선배에게 순응하며 주변에서 가지는 방관적인 태도는 직장 내 괴롭힘을 더욱 악화시켰다.


현장에서 마주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간호사들이 처음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대해 알게 됐을 때 ‘태움’ 현상을 더는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다고 한다. 실제로 간호사들은 개선된 근무환경을 경험했다. 신규간호사의 위축된 모습이나 주눅 든 모습이 줄어들고 밝아진 모습을 종종 볼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했다. 또한 경력이 적은 간호사나 신규간호사의 실수 및 미숙한 업무로 인해 피드백이 주어질 때도 전과 달리 개방된 장소에서 모욕감을 주거나 큰소리로 혼내는 모습이 많이 사라졌고, 이전처럼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후배간호사를 교육하던 행위는 볼 수 없다고 했다. 간호사들은 향후 긍정적 변화를 통해 더 나아진 환경과 밝은 분위기 속에서 근무하고 싶어 했으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을 간호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간호환경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태움이나 괴롭힘의 양상이 법의 시행과 함께 달라졌다는 것은 긍정적인 결과였다.
   그러나 동시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은 간호사들에게 당혹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해당 법 시행과 관련된 공지를 전달해주는 관리자가 오히려 보복성 근무를 주는 모습에 굉장히 실망했으며, 신규간호사를 포함한 후배간호사를 위해 기존에 근무하던 간호사들이 뜻하지 않은 희생을 겪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는 곧 근로자 보호 및 배려가 선배 간호사들의 당연한 희생으로 귀결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임과 동시에 또 다른 괴롭힘과 모순된 권력체계로 이어진 것이다. 앞서 전보다 화기애애한 업무 분위기에서 근무한다고 진술한 경우와 달리 기존 간호사들 사이에선 오히려 전에 없던 신규간호사 눈치 보기와 업무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정시 퇴근을 위해 서둘러 그들을 귀가시키는 모습 등이 관찰됐다. 간호사들은 이러한 상황에 곤란함을 느끼며 업무 부담을 호소했다.
   본 연구의 대상자들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긍정적 효과가 있지만, 간호 조직문화에 적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진술했다. 간호사들은 그 이유를 법의 기준이 간호 집단에 적용하기에는 모호한 것들이 많고 오히려 개개인의 역할에 있어 혼돈 상황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부분 경력 5년 이상인 간호사들은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가 되기 싫어 몸을 사렸고 방관적인 태도로 근무하거나 해야 할 말을 자제하고 체념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력이 적은 간호사들은 신규간호사들의 입장과 경력이 많은 간호사 간의 상황, 한마디로 권력의 저울질 사이에서 당혹스러운 입장을 표했다. 이렇게 서로 협력하는 것을 포기한 듯한 모습은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부분으로 여겨진다.


법, 그리고 인식의 개선으로


   간호사들은 먼저 ‘괴롭힘’이라는 것이 지극히 주관적인 요소라 그 기준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으며 직장 내 괴롭힘은 규제를 강화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인식의 개선을 통해 줄여나가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간호사들이 이수한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교육은 연 1회, 1시간이었는데 이를 통해 법을 이해하고 숙지하는 데 부족함이 있었다. 또한 실제 업무 중 경험하는 괴롭힘은 이론과 다른 부분이 많아 신고의 기준을 명확하게 세우기 어려워했다. 근무하는 데 있어서 법의 영향력은 너무 약했으며, 보복이 두려워 현장을 보고도 신고를 하지 않거나 신고법을 정확히 알지 못해 시도 자체를 부담스러워한 것이다.
   현장에서 법의 효력이 더 강화되고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관리자와 노조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협력해야 한다. 또한 본 연구를 바탕으로 더 많은 의료기관 및 근무지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를 대상으로 확대 연구를 진행하는 것을 제언하고, 모든 간호사를 대상으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대한 이들의 관심 및 지식 정도를 알아보는 연구 역시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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