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라 심리학과 박사

『낭만주의 해석학의 음악이해:슐라이어마허와 딜타이의 해석학적 철학을 중심으로』 장유라 著 (2020, 철학과 박사논문)


본 지면은 학위 논문을 통해 중앙대 대학원에서 어떤 연구 성과가 있는지 소개하고, 다양한 학과의 관점을 교류하고자 기획됐다. 이번호에서는 철학과 장유라의 박사 논문 『낭만주의 해석학의 음악이해:슐라이어마허(F.D.E.Schleiermacher)와 딜타이(W.Dilthey)의 해석학적 철학을 중심으로』를 통해 낭만주의 해석학을 기반으로 한 음악이해에 대해 살펴본다. <편집자 주>


낭만주의 해석학을 통한 음악이해

장유라 / 철학과 박사

  ‘낭만주의’를 “완전함을 향한 충족될 수 없는 동경”으로 정의한다면 이런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19세기는 낭만주의의 세기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낭만주의 해석학은 철학사적으로 합리주의의 해체, 즉 순수이성의 자기제한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등장했다. 또한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분과학문을 위한 특수해석학에서 보편적 해석학 내지는 철학적 해석학으로 나아가는 발판이 됐다. 낭만주의 해석학의 중심적 사유 대상이자 기본 정신은 ‘개성’과 ‘천재성’ 개념이다. 이는 곧 독자가 자신의 이해 능력을 발휘해 문헌에 표출된 저자의 개성과 천재성에 다가가고 ‘저자의 의도(Mens Auctoris)’를 재구성한다는 측면에서 문헌의 의미를 완전히 복원시키는 일을 중시하는 일련의 작업이다.
  낭만주의 해석학은 ‘저자 보다’ ‘더 잘 이해함의 명법(Imperativ des Besserverstehens)’ 아래에서 ‘이해(Verstehen)’를 끝없는 과제를 포함한 이상적인 요구로서 제시한다. 이런 맥락에서 본 연구는 낭만주의 해석학을 대표하는 슐라이어마허(F.Schleiermacher)와 딜타이(W.Dilthey) 사상과 저작 속 음악이해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규명하고, 특히 해석학적 사유가 어떻게 음악과 예술 영역으로 적용 및 확장되는지를 탐구하고자 했다. 또한 해석학적 사유와 현대음악학과의 연관성을 규명하고자 했으며, 이는 타자가 권리를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고 ‘대화의 정신’을 강조해 온 해석학의 역사적 전개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연구 방향이기도 하다.

 

 
 

슐라이어마허와 딜타이, 해석학적 철학과 음악의 이해

 

  슐라이어마허의 철학적 사유의 기본적 특징은 ‘해석학적·변증법적 사유’라고 불리며, 특히 헤겔의 논리적·변증법적 사유와 대립적인 구도를 형성한다. 이때 슐라이어마허는 사유와 지식의 문제를 논리에만 맡기지 않는데, 이는 지식이나 체계가 순수 이론적 철학의 지평에서 충분히 밝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식은 늘 실천의 연관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주장은 이론과 실천, 철학과 삶의 경험이 갖는 불가분적 관계를 잘 나타내며, 슐라이어마허의 해석학은 ‘특수와 보편’ ‘부분과 전체’ ‘차이성과 동일성’ ‘경험과 사변’ ‘언어와 사고’의 관계에서 정당성을 찾는다. 이들은 교호적·대화적 관계라 할 수 있고, 그의 저작 《성탄축제(Die Weihnachtsfeier)》(1924)에는 이러한 사유가 잘 드러나고 있다. 슐라이어마허는 성탄 전야의 기쁨과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말과 음악의 역할에 대해 상세히 해명한다.
  그에 따르면 “아름다운 감정은 말을 위한 소리를 찾은 다음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본래적인 의미의 소리를 발견한 다음에 완전하게 나타난다.” 말은 조형적 요소에 불과하고 소리는 “생동적인 것으로 바꿔야 하며, 이를 조화로운 내적 전체 존재로 전이시키고 확정해야”한다. 조화로운 내적 존재로의 전이는 종교적 영역 안에서만 그 완성에 도달할 수 있고, 종교와 음악의 유사성은 바로 이러한 내면의 법칙을 결합하면서도 특정한 보편성을 갖는 것에 있다고 봤다. 그는 가사가 붙어있는 성가곡인 비발디(A.Vivaldi)의 글로리아(Gloria)와 전례 음악 레퀴엠(Requiem)이 가사의 청취 없이도 훌륭한 음악일 수 있지만, 소리가 노래와 동반됐을 때 “최고의 확실성으로 가슴 깊이 파고드는 가장 경건한 소리를 낸다”고 주장한다.
  한편, 딜타이는 자신의 일생 과업인 ‘역사이성비판(Kritik der historische Vernunft)’ 프로그램으로서의 ‘정신과학의 학문적 정초’라는 작업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문제들에 물음을 제기한다. 그는 개별적인 인간 존재를 학문적으로 담아낼 위대한 형식이 우리에게 존재하는지 묻는다. 과연 그러한 인식의 과정이 가능한지, 또 해당 인식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수단을 가지고 있는지 등과 같은 질문을 끝없이 던진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행위는 항상 타인의 이해를 전제로 하며 행복의 대부분은 낯선 영혼 상태를 추체험(Nacherleben)하는 데서 나온다.
  딜타이에 있어 ‘체험-표현-이해’는 이러한 정신과학 방법론의 기초가 된다. 그의 인식론은 ‘의식의 사실’에서 출발하는데, 그것의 가장 원초적인 단계는 체험이다. 체험을 통해 한 특정 개인의 체험 연관에 대한 보편적 술어들이 생겨나고, 이 술어들이 삶의 객관화와 정신과학적 진술의 모든 주어들에 적용되면서 그 타당성의 범위가 확대되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표현이 체험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중간매개라고 봤다. 예컨대 딜타이는 독일 시와 음악 연구 《Von deutscher Dichtung und Musik》(1933)의 ‘18세기 위대한 독일 음악’ 부분에서 음악학의 이론적 부분을 창조과정, 예술가의 삶 그리고 음악 학파들의 발전과 연결시켜야 하는 음악적 의미론의 사례로 몇 명의 음악가의 작품을 언급하며 이를 분석한다. 그 중 바흐(J.Bach)에 대해 상대적으로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데, “바흐와 같은 음악의 천재는 어떤 자연의 소리에서도, 그 어떤 동작에서도, 규정할 수 없는 소음에서도 영감을 얻고, 이에 대응하는 음악적 형상으로, 그리고 움직이는 주제로 접근해간다”고 언급해 바흐를 높이 평가했다.


현대음악학에서의 전망

 

  현대음악학에서 음악해석학에 대한 논의를 가장 잘 드러내주는 작업은 크레이머(L.Kramer)에 의해 이뤄졌다. 그는 블라디미르 얀켈레비치(V.Jankelevitch)가 주장하는 음악의 형용 불가능한 매력(Music’s Ineffable Charm)에 대한 찬반을 다룬 미국음악학협회의 학회지 《Journal of the American Musicological Society》포럼의 논문들을 기반으로 음악해석학에 대한 강한 주장을 펼친다. 해당 논의에서 크레이머는 음악이 말로 표현이 불가능하다는 ‘음악의 형용 불가능성(Ineffability)’을 편협한 역사주의와 지나치게 통제된 해석학에 기인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에게 음악의 형용 불가능성이란 음악과 언어 둘 다 표현의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전적으로 그 반대다. 오히려 그는 키츠(J.Keats)의 시에 나오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들을 예로 들어 우리 역시 작가의 감상처럼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아닌지 묻는다. 다시 말해 크레이머가 제시하는 키츠의 시어들처럼, 시가 키츠의 경험을 단어를 통해 표현하는 것처럼, 음악 역시 말로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해석학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지 않다. 그 이유는 과학적인 방식으로 작업을 수행하는 음악학자들이 자신의 영역에 대한 확고한 신념들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그들 대부분은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음악이론의 지식으로 학문 경계를 형성하는데 종종 전문 음악분석가들조차 잘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매우 기술적이어서 이는 비전문가들에게 도저히 이르지 못하는 영역이 된다. 예컨대 음악형식과 구조에 대한 연구는 주로 음계와 코드들의 형성에서 주어진 시간 안에 음들을 배분하는 높낮이에 대한 배분 과정, 대위법이나 12음계 혹은 음렬작업, 그리고 형식과 원칙 심지어 기호학까지 포함해 언어학에서처럼 고도로 전문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실증주의적 음악분석은 삶과 체험으로 이뤄진 작곡가들의 작품이나 음악가들의 정신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게 한다.
  그래서 생동적이며 창조적인 음악세계에 접근하기 위해선 해석학과 같은 새로운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슐라이어마허는 낭만주의 해석학에서 문법적·심리적 해석과 함께 ‘실천의 연관’에 기반한 해석을 추구한다. 그리고 딜타이는 ‘삶의 연관’에서 출발하는 역사적 해석으로 인간의 정신적 산물들을 탐구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개별성과 전체성의 해석학적 순환을 바탕으로 낭만주의 정신인 ‘천재성’과 ‘개성’을 해석에 적용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낭만주의 해석학을 기반으로 한 음악해석학은 음악 분야에서 탁월한 기여를 할 수 있다. 특히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우리는 개별과 보편의 상호관계 속 전통적인 정신의 변증법적 도식과 접점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음악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 특수와 보편, 부분과 전체, 차이와 동일성이 변증법적 사유 안에서 이해의 보편이론을 형성하는 토대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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