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민 /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소장

여기, 지금, 우리의 이야기 ④ 새로운 가능성, 생태배당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기후변화’와 ‘자원고갈’은 작금의 지구 생태계를 대표하는 단어들이다. 이 단어들은 무한하게 생산하고 무한하게 소비하는 경제 체제가 구르고 굴러 전 인류의 생존을 서서히 위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위협은 불공평하게 배분돼 누군가에게는 견딜 수 없이 무거운 무게로 다가오지만 방패를 준비한 누군가에게는 그 무게가 미약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환경 이슈가 더 이상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일상의 위협으로 다가온 지금, 우리에게 어떤 고민이 필요한지 찾아가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지배에서 공존으로 ② 기후변화와 환경 불평등 ③ 채식의 세계 ④ 새로운 가능성, 생태배당

 
 
생태배당과 생태적 전환


금민 /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소장

 

  코로나19 팬데믹은 인간의 경제활동을 제약했다. 특히 중국, 유럽, 미국에서는 공장 가동이 중단되는 대봉쇄가 이뤄졌다. 대봉쇄의 결과는 역설적이었다. 대기의 질은 좋아졌고 탄소배출도 줄어들었으며 수질은 개선됐다. 인간이 철수한 곳에는 자연이 되돌아왔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대봉쇄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경제적 약자였다. 팬데믹은 탈성장을 강요했는데, 그 피해는 자산, 소득, 고용관계에서 열위에 놓인 사람들에게 집중됐다. 이와 같은 역설적 상황은 생태 전환이 사회적 전환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과제라는 점을 분명히 드러낸다. 기후재앙을 막기 위한 생태적 전환은 단순히 탄소의존적 기술의 규제와 생태친화적인 기술개발만으로 좁혀 생각할 수 없다. 이러한 기술변화를 이뤄내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전환을 위한 프로그램이 가동돼야 한다. 즉, 생태적 전환이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이익이 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기본소득이야말로 이러한 프로그램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기본소득은 생태적 전환을 뒷받침하고 촉진한다. 물론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것만으로 생태적 전환이 저절로 이뤄지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기본소득은 그 필요조건이 된다. 탄소세와 생태배당의 연동 모델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기본소득은 생태적 전환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전환의 필수적 조건이다. 기본소득 없이는 생태적 전환도 불가능하다.

 

평등하면 할수록 유리하다

 

  산업주의는 자본과 노동 간의 일자리 성장동맹에 기초했다. 성장의 과실은 오직 일자리를 통해서만 노동자 가계로 분해됐고 임금 이외의 소득원천은 퇴직, 상해, 질병과 같은 상태에 처한 사람들에게만 예외적으로 부여됐다. 완전고용과 안정적 임금소득이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불가능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의 목표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일자리와 소득의 탈동조, 자산 및 소득의 심화되는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사회개혁은 정체됐으며 이러한 상태는 경제를 더 처절한 성장주의로 내몰고 있다. ‘파이 나누기’ 비유는 이러한 상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준다. 파이의 분배를 바꾸지 않고 전체 크기를 늘리면 상대적 불평등은 늘어나지만 적은 몫을 가진 사람에게 돌아가는 절대적인 크기는 이전보다 많아진다. 즉, 파이의 분배가 불평등할수록 파이 전체의 크기를 늘리려는 성장주의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그런데 산업적 확대로 파이의 크기를 늘리는 경제는 이미 생태적 임계점에 도달했다. 더 평등한 분배의 생태적 가치는 이러한 임계점에서 오히려 분명해진다. 이를 다시 파이의 비유로 말하자면, 파이의 몫이 평등하게 분배될수록 성장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고 파이 크기를 키우는 일을 생태적 관점에서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평등한 분배는 경제와 사회의 생태적 전환에 유리한 조건을 마련해 준다.
  국민총소득의 일정 부분을 모두에게 평등하게 분배하는 기본소득은 탁월한 평등효과를 낳는다. 물론 이러한 평등효과는 다른 제도에서도 부분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기본소득의 평등효과는 좀 더 직접적으로 생태적 전환에 연결된다. 그 이유는 기본소득이란 노동시간, 재생산시간, 여가시간 등 사회적 시간의 재분배를 뜻하며 단순한 소득재분배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자동화는 노동력을 절감하게 해 주고 사회 전체의 총노동시간을 단축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별적인 노동시간이 단축되지 않는다면 자동화는 해고를 의미할 뿐, 일자리는 점점 더 희소해진다. 한편 기본소득처럼 노동과 무관한 소득최저선이 모두에게 부여된다면, 사람들은 임금노동 시간을 축소해 자유로운 활동을 위한 더 많은 시간을 얻게 되고 설비투자 확대 없이도 신규 일자리는 늘어날 것이다. 나아가 기본소득은 사람들에게 생태파괴적인 일자리를 거부할 역량을 부여함으로써 노동공급의 측면에서도 생태적 전환의 조건을 만든다. 긴 안목으로 볼 때, 기본소득은 임금노동 시간의 감소로 자유로운 활동시간을 증대시키고 자연 약탈성이 줄어드는 생태적 효과로 이어진다. 즉, 기본소득 도입으로 자본주의적인 속도의 경제엔 감속장치가 부착되는 것이다.

 

리바운드 효과를 억제하는 정의로운 전환


  생태배당은 보다 직접적으로 기본소득의 생태적 효과를 보여준다. 기본소득의 재정원리는 기본소득 지급을 위해 거둔 세수의 전액을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평등하게 배당한다는 ‘과세와 배당의 결합 원리’로 요약할 수 있다. 탄소배출량을 감축해 나가기 위해서는 자연재생 에너지 확대를 위한 투자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온실가스 배출산업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경제가 더 이상 ‘값싼 자연’에 의존하지 않도록 만들려면 탄소세는 필수적이다. 탄소세를 비롯한 생태세 본래의 목적은 당장 금지할 수 없지만 생태환경에 부담을 주는 생산의 비용을 높임으로써 이를 간접적으로 규제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는 탄소세가 대단히 역진(逆進)적이라는 점이다.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의 개인적 에너지 소비량은 다른 종류의 상품소비량에 비교할 때 미미한 차이만을 보여준다. 결국 높은 탄소세는 높은 에너지 가격으로 이어져 저소득층의 에너지 평등권을 침해하고 사회적 저항이 발생할 수 있다.
  단적인 예가 2018년 프랑스 정부의 생태세 인상계획으로 촉발된 노란조끼 시위다. 이 문제는 1990년대 독일의 적록연정도 부딪혔던 문제다. 하지만 저소득층의 저항 없이 탄소세를 올리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기본소득의 원리인 ‘과세와 배당의 결합 원리’를 도입하는 것이다. 즉 탄소세 세수를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무조건적으로 분배하는 동시에 탄소배출량 목표와 연동해 탄소세를 적절하게 인상해 나가는 것이다. 탄소세 세수를 생태배당으로 지출하는 방식은 저소득층의 에너지 기본권이 보장되는 ‘정의로운 전환’의 기초 위에서 지속적으로 탄소세율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온실가스 감축기술의 발전이 항상 긍정적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감축기술의 발전이 오히려 온실가스 총량을 증대시키는 역설, 곧 리바운드 효과(Rebound Effect)로 나타날 수도 있다. 여기에서 기술발전을 탓한다면 그것은 인과관계의 오류다. 기술혁신은 단위 생산 당 온실가스 절감에 분명히 기여했지만, 동시에 생산이 확대될 계기도 제공했다. 그러나 탄소세를 생태배당의 재원으로 삼으면 리바운드 효과가 억제된다. 탄소세가 생태배당의 재분배성과 결합되면 신축성 있는 세율 인상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즉 탄소세율이 더 올라도 더 많은 생태배당이 지급되기 때문에 저소득층의 에너지 평등권은 언제나 보장된다. 리바운드 효과가 나타나면 탄소배출량 목표치와 기술혁신의 전망에 맞춰 언제든지 탄소세율을 더 올릴 수 있고, 탄소세율이 오르면 화석에너지 소비는 더 줄어들며 자연재생 에너지 기술이 더 발전하게 된다. 이처럼 탄소세와 생태배당을 결합한 모델은 2008년부터 이미 스위스에서 시행 중이고 최근에는 미국에서도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기본소득은 생태사회의 필수적 구성요소


  기후위기는 전 세계적으로 그린뉴딜 논의를 촉발시키고 있다. 국가는 생태친화적 기술개발을 지원하고 부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자연약탈적 생산방식이 여전히 저렴하다면 생태적 신기술의 산업 전체로의 파급은 느리게 진행될 것이다. 탄소세는 자연약탈적 생산의 비용을 높임으로써 생태친화적 기술의 확산을 돕는다. 탄소세 없는 그린뉴딜은 경제 전체를 생태적으로 바꿀 수 없다. 아울러 생태적 목표설정에 맞춰 탄소세를 인상하려면 생태배당과 연동해 저소득층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생태학자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의 원인을 자본주의의 생태 파괴에서 찾는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감염을 차단할지 몰라도 원인을 없애지는 못한다. 코로나19 이후에도 또 다른 바이러스가 창궐할 수 있다. 원인을 제거하려면 인간과 자연이 거리를 두고, ‘지구의 절반’을 다른 생물종에게 양보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소득이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 기본소득을 지렛대로 삼아 사람들은 생태환경에 유해한 일을 거부할 수 있으며 더 평등하고 자유로운 생활양식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기본소득은 생태사회로 나아가는 경로일 뿐만 아니라 생태사회의 구성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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