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진희 /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저자

[출구 없는 공포 ④ 공포, 질병의 재생산]

치료할 수 없는 질병이 주는 무한한 두려움은 인간에게 공백의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공포는 혐오와 맞닿아 발현되기도 한다. 인류에게 공백의 공포를 메꿔주는 중요한 열쇠 중 하나는 바로 의약의 개발이었다. 그러나 모든 ‘약’이 치료를 가능케 한 것도 아니며 약이 ‘약’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데다가 오히려 공포를 재생산하기도 한다. 이번 기획에서는 질병의 공포를 메꿨던 의약의 역사, 현재, 미래를 정확한 지식과 함께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팬데믹의 등장 ② 의약의 변천사 ③ 약과 악의 경계 ④ 공포, 질병의 재생산

 

잘 아플 수 있는 사회

 

조한진희 /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저자

 

  질병은 수시로 의학적인 것을 넘어선다. 일상은 물론, 때로는 의료 현장에서도 그렇다. 일례로 간질이라고 불렸던 뇌전증은 역사적으로 차별과 낙인이 가장 많은 질병 중 하나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지랄병’이라고 불렸던 간질은 그 낙인이 깊어서 뇌전증이라는 새로운 병명을 붙였다. 하지만 고대 서양에서는 뇌전증을 신성한 병으로 여겼다. 신이 특별히 점지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병이라고 믿은 것이다. ‘신성병’을 가졌다고 알려진 대표적 인물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로마 공화정 시대 군인 정치가인 카이사르가 있다. 학자들은 이들이 실제 뇌전증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자신이 비범한 존재임을 과시하기 위해 신성병임을 주장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이처럼 뇌전증은 환자 입장에서는 예측이 어려운 불편한 질병일 뿐이지만 시대에 따라 신성병이라는 ‘왕관’을 쓰기도 하고, 지랄병이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

 

 
 

HIV와 결핵의 두려움 사이에서

 

  현대 사회 낙인이 가장 심한 질병은 여전히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다. HIV가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나 수혈 같은 형태로 감염된다는 사실은 상식이 됐지만, HIV 감염인과 식사를 하지 않으려 하거나 같은 공간에 있는 것 자체를 꺼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심지어 병원에서 HIV 감염자에 대한 수술은 물론 일상적 치료를 거부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HIV 감염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병원에서 감염자라는 것이 확인된 후 예약돼 있던 수술을 기피·거부당한 경험이 26.4%였다. 물론 수술 과정에서 주사기에 의한 감염 가능성 등을 배제할 수 없으나, 이는 HIV뿐만 아니라 다른 질병에서도 마찬가지다.
  좀 더 구체적으로 현실을 살펴보면, AIDS(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 후천성면역결핍증)는 불치병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이미 치료제가 개발된 지 오래다. 또한 AIDS는 고혈압과 같이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약을 복용하면 생명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 ‘만성질환’으로 분류된다. AIDS를 일으키는 HIV의 감염자는 한국에서 연간 800명이 채 안 되며 그로 인한 사망자는 약 100여 명 정도다. 이에 비해 결핵은 연간 약 3만 5천 명이 걸리고, 매년 약 3천 명이 사망한다. 게다가 한국은 OECD 국가 중 확고부동한 결핵 발생률 1위 국가다. 그럼에도 AIDS를 둘러싼 공포는 결핵에 비할 수 없을 만큼 깊다. 남성 동성애자들의 질병이라는 잘못된 명명과 동성애 혐오가 만들어낸 질병 이미지 때문이다. 감염자와 사망자 숫자만으로 질병의 위중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지만 사회가 느끼는 공포가 감염과 죽음에 근거한다고 할 때, 공포가 질병의 위협 정도에 비례하는 것은 아님을 확인 할 수 있다.
  그렇다면 AIDS보다 사망자가 많은 결핵은 공포에 떨어야 할 질병일까. 결핵은 공기 중의 결핵균이 폐에 들어갔을 때 감염되는 호흡기 감염성 질환이다. 그러나 결핵균에 감염된 모든 사람에게서 결핵이 발병하는 것은 아니다. 결핵균에 감염된 사람 중 약 5~10%에게만 결핵이 발병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복 결핵 감염상태를 유지한다. 잠복 결핵 감염상태에서는 타인에게 결핵균을 감염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가난하고 게으른 사람의 질병이라거나, 다른 사람을 무조건 감염시키는 질병이라는 낙인 때문에 결핵을 숨기고 치료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결핵 환자임이 밝혀진 뒤 원치 않는 퇴사를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의사로부터 감염성이 없다는 진단을 받고 직장생활을 계속하려 했지만, 함께 같은 사무실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 짧은 대화도 꺼리는 사람들 속에서 자신이 곧 결핵균으로 취급당하는 것 같다고 토로하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 물론 취업이 안 되거나, 일방적으로 해고당하는 경우도 있다. 오죽하면 결핵예방법에 “사업주 또는 고용주는 비전염성 결핵 환자에 대하여 결핵 환자라는 이유만으로 취업을 제한할 수 없다”고 규정해뒀을까. 이러한 상황 때문에 결핵 환자들은 결국 질병을 숨긴다. 그리고 낙인으로부터 질병을 숨기느라 치료 시기를 놓치게 된다. 이런 현실은 한국이 영양과 위생 상태가 높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OECD 국가 중에서 결핵 발생 1위를 유지하게 한다.
  앞서 보았듯 HIV부터 결핵에 이르기까지 차별과 낙인은 질병의 사회적 예방을 어렵게 하는 결정적 기제다. 그러나 우리가 코로나19 정국에서도 보고 있듯이, 사회는 아직 변화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19 정국에서 여러 번 보도됐던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팀이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을 조사한 내용을 보면, 감염보다 더 두려운 것으로 주위의 비난을 꼽았다. ‘상황별 두려움’을 묻는 질문에는 리커트 5점 척도 기준으로 ‘내가 확진자가 됐을 때 주변으로부터 비난, 추가 피해를 받는 것이 두렵다’라는 항목이 3.52점으로 제일 높았고 ‘무증상 감염되는 것’이 3.17점, ‘주변에 증상이 의심되는데도 자가신고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두렵다’가 3.10점이었다. 질병의 고통은 바이러스에 의한 통증보다 사회적 관계에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질병권이 보장되는 사회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 눈부시게 발전한 의료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질병과 건강으로부터 더 자유로운 시대를 살게 됐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의료와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몸에서 질병과 죽음을 완전히 삭제시킬 수는 없다. 그리고 질병과 죽음이 완전히 삭제되는 것이 더 좋은 일도 아니다. 질병에 대한 차별과 낙인이 많은 사회일수록, 질병에 대한 두려움도 깊어진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여전히 국민건강보험 보장률이 64% 수준으로 상당히 낮고, 전반적 사회 안전망이 턱없이 허술하다. 여전히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미끄러지는 주요 이유 중 하나가 의료비 때문이라는 점을 떠올려 보면, 질병에 대한 두려움과 건강염려증 ‘환자’의 증가는 필연일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질병에 걸리지 않는 삶이 아니다. 질병권(疾病權)이 보장되는 사회, 잘 아플 수 있는 사회다. 우리는, 사회는 최소한 두 가지를 빠르게 변화시켜야 한다. 국민건강보험 보장률을 OECD 평균인 80%로 끌어 올림으로서 경제적 이유로 치료를 포기하는 현실을 줄이고, 상병수당 도입으로 아플 때 노동을 멈추고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제도의 변화는 시민의 힘으로 견인해 내는 것이지만,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게 있다. 삶과 질병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차별과 혐오로 전환하는 일을 멈추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에게 잘 아플 수 있는 환경이 돼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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