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대학원생 인권문제

인권센터, 원총 그리고 원우에게


  작년 11월 대학원생 제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수사를 받은 경희대학교 A 교수가 이달 3일 검찰에 구속됐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현재 본 사건은 경희대 학생지원센터 성평등상담실이 접수받아 조사하고 있으며 그 결과에 따라 징계 여부 등이 결정될 예정이다. 본교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대자보와 본지를 통해 공론화돼 실질적으로 징계가 내려진 바 있다.
  2019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실시한 ‘대학 내 폭력 및 인권침해 실태와 개선 방안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미투 운동을 기점으로 2019년까지 공론화된 인권침해 피해 사례는 19건이다. 전국 대학원생 노동조합 김동민 인권위원장은 “이공계열에서의 인권침해는 비일비재한 일이며 이웃 연구진이나 타 학교를 봐도 ‘이 정도면 낫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의견을 전했다. 또한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이 인권침해라고 인식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인 현실을 토로했다. 실제 이공계 대학원생 처우 개선을 위한 설문조사에서도 대학원생 62%가 하루 평균 근무시간 10시간이 넘지만 29%는 공식적인 휴가를 쓰지 못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가장 기본적인 노동권조차 침해받는 대학원생의 현실을 방증한다.


억눌리는 목소리


  지난해 4월 본교 인권센터가 실시한 인권실태 조사에서 대학원생의 참여율은 석사 324명, 박사 52명으로 약 8%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는 본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와 2018년 서울대학교 인권실태조사 역시 응답률은 각각 5.76%, 2.25%에 그쳤다. 응답률이 모집단을 대표하기엔 너무나 그 수치가 낮은 본 사례들은 대학원생의 인권 문제가 인식되는 것조차 어렵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한편, 최근 한국 공공 관리연구원은 전국 단위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권 조사(이하 ‘2019 전국 인권조사’)를 실시했다. 해당 조사엔 대학원생 총 637명이 참여했는데, 그중 인권침해 발생 원인 1위는 ‘문제 제기가 어려운 교수, 본부 등의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분위기’로 나타났다. 이는 곧 문제를 말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학생들의 문제 제기를 가로막는다는 의미다. 이에 공론화하지 않고 혼자 혹은 지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만 해소했다는 사람들에 한해 그 이유를 물었더니 51.2%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침묵을 강요하는 엄숙한 분위기에 문제해결에 대한 신뢰도 저하가 문제 제기를 어렵게 하고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본지 또한 학내 구성원들의 활발한 소통이 이뤄지는 ‘김박사넷’ ‘청룡광장’ ‘에브리타임’의 웹사이트를 통해 약 2주간 인권침해 피해사례를 제보받았지만 그 어떤 응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대학가와 국회의 움직임


  이러한 악순환을 끊고 수면 아래 묻혀있던 목소리를 끌어내기 위한 움직임이 최근 대학가와 국회에 나타나고 있다. 서울대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 대학원생 게시판에 각 연구실의 비리를 폭로하는 글이 2018년 이후 지속적으로 올라왔고, 2019년 7월엔 서울대 일부 대학원생들이 갑질 교수들을 비판하고 대책을 요구하는 공개 시위를 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익명성을 기반으로 교수와 연구실을 평가하는 대학원생 커뮤니티인 김박사넷에서 대학원생들은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현실을 토로해왔다. 이에 2019년 서울대 교수 A 씨는 명예훼손 등을 문제 삼아 김박사넷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해당 정보가 “대학원 연구환경에 관한 정보로서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며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어 ‘블락’ 처리되는 게시글에 대해서는 “정보통신 방법에 따르면 요청에 따라 정보를 삭제할 경우 이를 공시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익명의 ‘목소리’마저 틀어 막으려했던 한 대학교수의 시도는 물거품이 됐다. 대학원생이 키보드를 두드리면서라도 소통창구를 만들어가는 것에 사법부는 손을 들어줌으로써 그 필요성을 인정한 것이다.
  이러한 인권침해 사례는 전국적 단위의 커뮤니티를 넘어서 제도적으로도 가시화되고 있다. 국회에서는 대학원생 인권침해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한 고등교육법 개정안 ‘대학인권센터 설치 의무화법’ 통과 촉구 관련 기자회견이 열렸다. 또한 교원의 징계 시효를 최대 7년으로 늘리자는 법 개정안 역시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 대학 내 각종 인권 문제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음에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문적인 전담기구가 부재해 적절한 대응이 이뤄지지 못한다는 지적이 만들어낸 변화였다.

 

원총과 인권센터의 역할

 

  2019 전국 인권조사에선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피해자 보호 및 권리 지원 강화(26.5%) ▲학과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15.2%) ▲학교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문제의식 공유와 공론화 분위기(15.6%)’라는 답변이 절반을 차지했다. 이는 실질적으로 피해자 편에서 적극적인 공론장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대학원 총학생회(이하 '원총')의 역할이 중요함을 나타낸다. 원총이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낸 사례로는 서울대가 있다. 2019년 서울대 원총은 인권센터에 성추행 및 부적절한 행동 등으로 신고된 B 교수에 내려진 처벌 ‘정직 3개월’이 부당하다는 피해자의 도움 요청에 적극적으로 응했고, 그 결과 B 교수는 학교에서 해임됐다. 서울대 원총 인권센터 운영위원 이우창은 “학내 인권센터 기구는 아직 만들어지는 중”이라며 “피해자들이 법적 해결 과정에 낯선 경우가 많기 때문에 원우들의 권익을 적극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카이스트 대학원 총학생회가 주최한 연구환경 실태조사는 원우들에게 맞춤형 질문을 제공함으로써 높은 응답률을 끌어낸 우수 선례로 평가할 수 있다. 설문 문항은 ▲교수/연구실 선후배 및 동료와의 관계에서의 불만 원인 ▲지도교수의 사적인 업무 동원 여부 ▲휴가 사용 ▲출근 및 결석/조퇴 ▲연구수당/연구실 공동자금에 대한 인지 여부 등이 있었다. 이는 형식적인 권리장전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제 대학원생의 삶을 잘 반영한 문항들이며, 매년 2~30%를 기록하는 참여율은 절대적으로 높다고 할 수 없지만 타 조사에 비하면 월등한 수준이다.
  본교에서 원우들의 인권실태조사를 도맡고 실질적으로 사건을 신고할 수 있는 곳은 인권센터다. 2012년 전국 대학 중 서울대와 함께 처음으로 설립된 본교의 인권센터에선 매년 연차보고서를 내고 있으며 조사된 인권실태와 내용을 해당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게끔 조치 중이다. 하지만 본교의 설문 문항은 대학원생이 침해받고 있는 인권실태에 대해 실질적으로 답할 수 있는 맞춤형 질문이 아닌 포괄적인 형태로 이뤄져 있었고, 심지어 이는 학부생 질문지와 동일했다. 현재 인권실태조사의 질문은 크게 인권보장 수준과 차별 및 인권침해, 대학 내 성희롱과 성폭력 경험으로 나뉜다. 그러나 연구 및 학습 영역에서의 자율성 침해, 연구 프로젝트와 관련된 노동권 침해, 부당한 논문 저자표시 및 도용행위 등과 같이 대학원이라는 특수한 곳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인권침해에 관한 세부 문항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에 인권센터는 “실태 조사 항목을 세분화시키는 데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으며 그 근거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선 유의미한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때 “유의미한 데이터”는 인권실태조사의 높은 응답률에 따른 결과와 신고된 원우들의 실제 피해 사례가 될 수 있다. 인권센터는 신고가 두려운 학생들을 위해 그 문턱을 낮춰야 하고 이를 위해 대학원생의 인권침해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함께해야 가능합니다


  ‘소년이 잘못하면 소년원을 가고 대학생이 잘못하면 대학원을 간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으려면 대학원생을 시키면 된다’와 같은 대학원생들의 자조적인 밈(Meme)은 계속 유행 중이다. 대학원생을 향한 이미지가 ‘오갈 데 없이 불쌍한 존재’로 치부될 만큼, 대학원은 모든 면에서 문제 인식 및 해결이 느린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침묵과 체념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해당 문제를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며 그만큼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인권센터는 그 이름과 설립 목적에 걸맞게 인권침해 사건이 발생하는 원인에 대한 근본적인 구조를 파악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보편성에 안주하지 않고 대학원의 특수한 실정에 적합한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원우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원총은 적극적으로 피해자 보호에 앞장서야 하며 나아가 보여주기식이 아닌, 원내 공동체적 인식개선 및 화합을 도모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변화를 위한 노력에 모두가 걸음을 같이해, 인간의 가장 기본적 권리인 인권의 당위성이 모두에게 인식되고 대학원이 기피의 대상이 아닌 누구에게나 권할 수 있는 학문의 장으로 거듭날 수 있길 기대해본다.


최진원 편집위원 | jinwon3741@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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