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0.11.11 수 11:46
기획사회
[사회] ‘성착취자-난민’과 ‘피해자-여성’이란 이분법전의령 /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조교수
이희원 편집위원  |  ryunis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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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호]
승인 2020.06.09  13: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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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인으로 쌓아올린 ‘정상’사회 ④ 난민과 ‘대한민국’ 시민
 
현대인의 삶은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아를 연출해가는 한 편의 연극과도 같다. 이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사회적 구조와 결탁해 정체성을 획득하게 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때 정체성 구성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 중 하나인 ‘낙인’은 한 개인에게 부정적인 편견을 덧입혀 그 존재를 축소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이번 기획에서는 주류 사회가 정해놓은 ‘정상’이라는 기준에 미치지 못한 자들이 수많은 ‘죄목’을 달고 타자화되는 현상과 낙인이 어떻게 설득의 힘을 가지며 유지되는지에 대해 주목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청년과 ‘근면한’ 기성세대  ② 정신질환자와 ‘안전한’ 사회 ③ 퀴어와 ‘이성애’ 남성 ④ 난민과 ‘대한민국’ 시민
 
   
 

‘성착취자-난민’과 ‘피해자-여성’이란 이분법


전의령 /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조교수
 
  2018년 여름, 한국의 인터넷과 SNS 공간을 뜨겁게 달군 이슈는 같은 해 봄부터 제주도에 들어온 500여 명의 예멘 난민 수용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었다. 이 논란은 곧 난민 대 국민, 난민 인권 대 여성 인권, 또는 혐오 대 안전이라는 그럴듯한 구도를 낳았고, 국민 안전과 여성 인권을 향한 요구들 속에서 예멘 난민은 받아들여지면 안 되는 집단으로 간주됐다. 이 분위기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난민법과 무사증 폐지 요구에 70만 명이 넘는 인원이 동참하고 난민 수용 반대를 요구하는 집회가 서울과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조직되면서 과열됐다.
  2018년의 난민 반대 요구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여성과 청년의 참여가 가시적이었다는 점이다. 이는 난민 반대 요구가 집회는 물론, 그동안 반(反)다문화를 외쳐온 인터넷 커뮤니티들을 넘어 출산·육아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수많은 ‘맘카페’들과 페미니즘의 대중화 이후 온라인상에 형성된 페미니즘 커뮤니티들을 가로질러 표출됐다는 점에서 방증 된다. 맘카페에서는 ‘여성’과 엄마, 특히 ‘딸 가진 엄마’로서 느끼는 난민에 대한 불안이 반복적으로 올라왔으며, 페미니즘 커뮤니티에서는 여성 할례와 조혼풍습으로 상징되는 이슬람권 문화의 낮은 여성 인권이 예멘 난민을 받아들여선 안 되는 이유로 지적됐다. 맘카페에서 페미니즘 커뮤니티에 이르기까지 난민 반대의 공통된 동력으로 작용한 것은 난민이 잠재적 성범죄자·성 착취자라는 인식이었으며, 이는 동시에 그 피해자로서의 한국 여성을 가정한다.
 

반(反)다문화의 가부장적 상상력과 ‘여성’의 물화


  여기서 우리는 ‘성범죄자로서 난민’과 ‘그 희생양으로서 한국 여성’이란 이분법이 2018년에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닌 훨씬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중후반 이후 국가의 다문화 정책이 등장한 이래 이주노동자·난민·조선족 등의 타자는 종종 성범죄자의 얼굴로 재현되며, 위의 이분법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급성장해 온 반다문화·반이주민 담론에서 반복적으로 동원돼 왔다. 실제로 2008년의 양주 여중생 살인사건을 기점으로 진화해 온 인터넷 반다문화 담론에서 이 이분법은, 국가의 다문화·이주노동 정책하에서 이주민이 새로운 특권층이자 착취자가 됐고 자국민은 그 속에서 고통받는 희생양이자 피해자가 됐다고 보는, 반다문화의 전도된 피해의식을 구성하며, 반다문화가 어떤 젠더화된 정치적 상상력 안에서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이주민·소수자를 성적으로 폭력적인 존재로 표지하고, 이를 기반으로 자국민·다수자의 전도된 피해 의식과 인종적·계급적·젠더적 불안에 호소하는 것은 비단 한국의 반다문화에 국한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트럼프(D.Trump)는 히스패닉계 이민자들을 공공연히 ‘나쁜 남자’ 또는 ‘강간범’으로 칭하는데, 이는 미국의 사회·경제적 변화 속에서 소외감을 느껴온 백인 남성 노동자계층의 피해 의식과 성적 무력감을 자극하고 그들의 반이민적·배외주의적 감수성을 부추긴다. 이보다 100여 년 앞선 20세기 초 미국 애틀랜타에서는 부유한 유대인이었던 레오 프랭크(L.Frank)가 메리 페이건(M.Phagan)이라는 젊은 백인 여공을 강간·살해했다는 혐의를 받은 후 이에 크게 분노한 백인 남성 노동자들에 의해 집단린치 및 살해되는 사건이 있었다. 여기서 백인 남성 노동자의 계급적·인종적·가부장적 불안은 ‘강한 남성성의 과시’ 즉, 집단린치를 통해 손상된 자아를 회복하려 한다.
  한국의 반다문화에서 ‘성범죄자 이주민 남성’과 ‘그 희생양인 한국 여성’이라는 이분법은 사실상 ‘남성’으로 각각 가정된 한국인과 외국인, 또는 자국민과 이주민 사이의 전도된 권력 관계를 표상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반다문화의 계급적·인종적·가부장적 피해의식 속에서 ‘이주민 남성에 의해 겁탈당하는 한국인 여성’이라는 상(像)은 새로운 착취자, 가해자로서 이주민에 의해 취약해진 국가를 가리키는, 하나의 기호가 된다. 반다문화에서 취약해진 국가, ‘겁탈당하는 한국여성’이라는 이 문제적 상황은 강한 가부장적 국가를 호출하며, 이는 종종 이주민에 대한 강력한 규제 또는 이주민 추방 요구로 표출돼 왔다.
  반다문화의 젠더적 상상력 속에서 ‘여성’은 그 스스로 자율적 경험의 주체이기보다는 사적·성적 존재로 물화(物化)돼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와 같은 여성의 물화는 ‘여성’ 또는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진행된 2018년의 난민 반대 담론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강화되는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어 맘카페를 통해 울려 퍼진 난민 반대 목소리에서 ‘엄마의 이름’으로 의미화된 불안은 ‘어머니-여성’이라는 가부장제적·사적 여성 범주의 자연화로 인해 발화되며, 여성의 안전과 인권을 위협하는 잠재적 성범죄자로서의 예멘난민상(像)을 반복적으로 동원한 페미니스트 발화에서 ‘(한국) 여성’은 ‘난민 남성’이라는 추가된 성적 공포의 대상으로 물화돼 있다.
  한마디로 ‘여성의 것’으로 성별화된 난민에 대한 불안 또는 이를 기반으로 추동된 난민 반대 담론은 반다문화의 가부장적 상상력을 해체하는 대신 강화한다. ‘어머니’라는 정체화를 기반으로 한 안전 요구는 여성의 역할과 영역으로 제한된 바로 그 위치에서 난민 반대를 외치고, 그럼으로써 가부장적 국가의 복원이라는 반다문화적 욕망을 완성시킨다. 또한 성 착취자 남성과 피해자 여성으로 본질화된 젠더 이분법에 강하게 의존하는 여성 안전 담론은 성적 존재로 물화된 여성 범주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 반다문화의 젠더적 상상력과 의도치 않게 중첩된다.
 

극단적 본질화를 넘어서


  최근 강남역 살인사건에서 N번방 문제에 이르기까지 여성이 경험하는 성폭력과 성 착취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늘고 있으며, 그 속에서 많은 청년 세대 여성들이 페미니즘 정치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 안전과 여성 인권에 대한 요구가 성과 젠더, 피해와 가해, 더 나아가 주체와 타자의 ‘극단적 본질화’에 고착될 때, 그 요구는 여성 안전의 이름하에 ‘여성’을 본질화·물화하는 난민 반대의 역설을 반복한다.
  ‘피해자’ 또는 ‘피억압자’로서 여성이라는 단일한 상에 몰두하는 것은 다양한 여성들의 투쟁을 무화(無化)할 뿐만 아니라, 타자를 공존 불가능한 대상으로 규정하고 격리하는 우익적 기획으로 나아간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지금 필요한 것은 성폭력 또는 젠더 기반 폭력을 무화하지 않으면서 주체와 타자의 본질화에 저항하는 페미니즘 정치, 그리고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내는 사회적 불안이 극단주의와 분리주의로 향하는 것에 저항하는 연대의 대항 정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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