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수 / 청년정치크루 대표

‘전시’의 대상에서 ‘전복’의 주체로 ④ 청년의 일상 속 ‘정치학교’
 
현재 대한민국 정치권에선 ‘청년’이라는 두 글자가 다시금 ‘소환’되고 있다. 그러나 선거철이면 일부 청년들의 목소리를 전면에 내걸고 ‘청년 중심 정치’라는 이미지만을 취할 뿐, 정작 청년이라는 존재 그 자체는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는 청년세대를 대변할 수 있는 담론 및 언어의 부재, 타자화된 청년의 위치, 몰이해가 빚어낸 부정적 낙인 등과 맞물려 심화하고 있는 양상을 보인다. 그렇기에 청년 정치의 개념을 확립하는 것에서부터 실질적 변화를 향한 노력까지, 적극적이고 꾸준하게 해당 이슈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청년 정치, 그 의미에 대하여  ② ‘386세대’와 ‘2030세대’의 현주소  ③ 청년 정치의 첫 걸음, 18세 ④ 청년의 일상 속 ‘정치학교’
 
 
 

최고의 정치학교는 우리의 일상

이동수 / 청년정치크루 대표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미래통합당은 ‘청년경선’을 실시했다. 지역구 11곳을 청년벨트로 설정하고 해당 지역구에서는 만 45세 미만 청년들끼리 경선을 치르도록 한다는 식이었다. 그리고 여기엔 ‘퓨처메이커’, 즉 보수정당의 미래이자 대한민국의 미래를 뜻한다는 거창한 이름이 붙었다. 사실 퓨처메이커는 처음부터 타지역 경선에서 탈락한 청년들을 ‘재활용한다’는 비판이 일었지만, 청년들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준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었다. 40대도 청년이냐는 비판 역시 우리나라 거대 정당들이 대체로 당헌∙당규상 만 45세까지를 청년으로 규정하는 것에 비춰보면 무리는 아니었다. 이 정도만 해도 장족의 발전인 셈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청년벨트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청년들 대신 중∙장년들이 공천을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당 지도부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후보등록 직전 경선을 통과한 청년들의 공천을 취소하고 5~60대들로 그 자리를 채워 넣었다. 청년들은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지난 총선에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공천을 진행한 것은 비단 미래통합당 만의 문제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정의당을 비롯해 그들의 위성 정당들까지 성급하게 인재 영입 및 공천을 진행했고 그로 인한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제21대 총선만큼 공천을 발표했다가 취소하는 일이 빈발했던 총선도 보기 드물다. 이것은 우리나라 정당들이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하기는커녕 제대로 검증할 기회조차 미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정당은 대외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개인의 스토리나 정체성에 주목하게 된다. 정책역량은 뒷전으로 밀리는 것이다. 청년 당사자 역시 정치권에서 역량을 쌓기 위한 노력보다는 화제를 만들거나 이슈에 편승해 인지도를 높이는 전략을 채택한다. 결국 이벤트성 인재 영입은 그 당시의 화제성만 놓고 보면 이득일지 몰라도 대한민국 전체 흐름에 놓고 보면 큰 불행이 된다. 개인의 기구한 스토리는 국회의원이 갖춰야 할 자질과 비례하지 않는다. 정당이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래가 없는 생색내기용 청년학교


  우리나라 역시 각 정당이 상설이든 비상설이든 청년정치학교를 운영했거나 현재 운영 중이다. 포맷도 대동소이하다. 기간은 대체로 3개월에서 6개월, 내용은 각 정당에서 대중성이 있다고 평가받는 의원이나 해당 정당과 관계를 맺고 있는 학자 혹은 언론인 등의 강연으로 채워진다. 하지만 보통 그 강연은 정치인으로서의 역량과 자질을 고양하기보다는 당이 추진하는 주요 정책의 당위성을 설파하는 식으로 흘러간다. 여권의 정치학교라면 왜 소득주도성장이 필요하고 탈원전이 필요한지, 보수 야당의 정치학교라면 왜 대한민국이 위기에 놓여있는지 등을 청년들에게 들려주는 식이다. 종편 시사평론가의 주장과 다를 바 없는 강의를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들어야 하니 청년들이 외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과거 바른정당에서 청년정치학교를 만들며 청년들에게 입법과 감사 과정의 전반에 대해 훈련한 적이 있지만, 이는 정치권의 흔한 사례라고 보기 어렵다.
  오늘날 우리나라 정당들의 청년정치학교는 교육보다는 조직이나 홍보의 기능에 초점이 기울어져 있다. 당이 구색을 갖추기 위해 청년정치학교를 열면, 청년위원회나 대학생위원회 구성원들에게는 인원모집의 의무가 주어진다. 그렇기에 대개 각 정당의 정치학교는 청년위원회, 대학생위원회 소속 청년들이나 그들의 지인들로 구성된다. 이 행사에서 마주친 얼굴을 저 행사에서도 보게 되는, 웃기면서도 슬픈 일들이 청년정치학교에서 반복되고 있다. 청년정치학교가 형식적으로 운영되다 보니 당내 청년들의 반응 역시 무미건조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청년정치학교는 친분과 인맥으로 명맥을 유지할 뿐 콘텐츠가 가진 효용으로서는 매력을 드러내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정치에 꿈이 있는 청년은 이곳에서 역량을 쌓을 생각을 하기보다는 유력 정치인과 친분을 쌓아 공천을 받는 전략을 택한다. 이와 같이 사사로운 인맥에 의한 인재 영입 및 공천의 폐해를 우리는 지난 선거에서 숱하게 볼 수 있었다.
 

일상/정치를 분리하는 공직선거법


  청년 정치에 관해서 가장 귀감이 되는 국가를 꼽으라면 단연 독일일 것이다. 독일 내에서 10대 때 당 활동을 시작해 20대에 의회에 진출하고 결국 총리가 됐다는 스토리는 지금까지도 종종 뉴스를 통해 접할 수 있다. 꼭 총리가 아니더라도 독일에서 20대에 연방의회 의원이 되는 건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이는 독일의 정당이 유난히 인재양성을 잘해서라기보단 그만큼 제도가 잘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선거제도다.
  독일은 세계적으로 미국과 더불어 선거제도가 가장 자유로운 나라에 속한다. 우리나라처럼 선거기간을 2주로 정해놓고 그 기간에만 선거운동을 하게 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심지어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지지를 호소하는 선거 유세도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독일 정당의 청년들은 지역사회 의제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지역에서 역량을 선보이고 입지를 다지는 것이 곧 선거운동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렇게 일상 속에서 꾸준히 정치에 관련된 실험을 수행하며 경험치를 높여나간다. 독일 청년들에게 일상은 정치훈련의 장이자 선거운동의 장이 되는 셈이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선거제도는 일본과 더불어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일상과 정치를 철저히 분리하는 게 특징이다. 공직선거법상 선거운동은 정해진 기간과 사람만이, 정해진 방식으로, 정해진 장소에서만 할 수 있다. 특히 사전 선거운동을 금지함으로써 청년들의 정치 활동을 크게 제약한다. 자칫하면 모든 것이 공직선거법에 저촉되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나라 청년들은 평소 정치적 경험과 역량을 쌓을 기회가 거의 없다. 그저 얼마 되지도 않는 선거운동 기간에 명함을 나눠주고 현수막을 내걸 뿐이다. 아니면 유력 정치인에게 잘 보여 비례대표나 지방의원 한자리라도 받는 길을 택한다.
  언제나 정당이 앞장서서 인재를 양성하고, 정치학교를 제대로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가장 좋은 정치학교는 바로 우리의 일상이다. 주변 이웃들이 처한 어려움을 우리의 손으로 하나둘 해결해 나갈 때, 우리는 비로소 미래를 짊어질 자격이 있는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 따라서 정치인을 양성하는 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많은 예산을 투입해 청년정치학교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청년들이 정치적 현안을 해결해 나가는 데에 걸림돌이 되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우리 청년들은 스스로 잘해나갈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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