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광우 / 예술학과 박사과정

[원우 작품소개] 

나, 우리, 인체, 회전


한광우 / 예술학과 박사과정

 
 

■ 다양한 형태의 움직임 중 회전을 택한 이유는
  회전은 다양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움직임으로, 이로부터 만들어지는 원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 절대자 혹은 진리를 상징했다. 또한 동양사상 천원지방(天圓地方)에서도 하늘은 원의 형태로 등장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원은 하늘, 완전함, 불멸 등을 의미하는 신성한 도형으로 사용된 것이다. 그리고 21세기에 작가로 살아가는 나에게 원은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전통적이지만 새로운 도형으로 변모한다. 살아있는 것은 움직인다는 명제하에 우리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인생이라는 한정적인 시간은 그 사유를 되묻게 만든다. 또한 매일이 반복되는 듯한 삶의 모습은 마치 쳇바퀴를 도는 것과도 같기에 회전, 즉 원의 정의는 시의성을 갖고 재탄생하게 된다.
 
 
 

■ 원기둥, 원뿔, 구를 기반으로 인체를 구현한 듯한 모양이 나타난다
  회전운동으로 만들 수 있는 기본적인 입체 도형에는 원기둥, 원뿔, 구가 있다. 살아있는 존재들의 반복적인 삶을 ‘회전’이라는 움직임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작업은 세 가지 입체 도형에 색다른 의미를 덧입히는 방향으로 구체화된다. 우선 원기둥은 한 곳에 서 있는 모습과 함께 보통 무언가를 받치는 역할을 맡는다. 이를 통해 한 자리에서 우두커니 무게를 짊어진 채 억압 속에 서 있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원뿔은 세워놓거나 옆으로 눕힐 수도 있지만 그 위로는 어떤 것도 올려놓을 수 없다. 옆으로 눕힌 채 원뿔을 굴리는 과정은 한정된 공간 속에서 둥그렇게 움직일 수 있는 작은 해방으로서 한정된 자유를 가진 사람의 모습을 뜻한다. 마지막으로 구는 어느 방향으로도 굴러갈 수 있는, 완전한 자유를 의미한다. 어떠한 속박도 없는 자의 모습을 예측할 수 없는 신비로움과 함께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세 가지 형태는 서로 다른 상황 속에 사는 각기 다른 이일 수 있지만,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선택하는 자신의 모습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작가로서 작업의 시작은 ‘나에 대한 관심’이었다. 학부 시절 졸업 전시를 위해 기성옷의 사이즈와도 같이 ‘나’를 배제한 채 만들어진 것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의 생각과 신체를 반영한 기물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때 우리의 생각과 감정이 상황에 따라 돌변하듯이 작품도 해체와 조작을 할 수 있도록 본드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 정돈된 사유는 한 종류의 블록만으로 끼워 만든, 비완성(非完成)성을 추구하는 작품연작으로 발전했다. 이후 유학 생활 중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벌어지는 정신적인 혼란과 교감들은 블록의 형태를 점차 인체의 모습으로 변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블록 하나하나가 끼워지는 모습들에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의미하는 언어를 부여했다. ‘나’를 찾던 여정은 ‘타인’의 모습을 구현함으로써 그 안에서 나를 표현하는 방향으로 확장된 것이다.

■ 작품 제작 과정은
  종종 검은 인파 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누군가의 모습이 보일 때가 있다. 그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가벼운 인상을 스케치하고 이후 종이 위에 그때의 감정을 기록한다. 작품을 제작할 때 대부분의 시간을 작품 제작의 사전 과정에 사용하며 해당 과정에서 잊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바로 서정성이다. 종이 위에 연필을 사용하거나 이를 수채화로 덧칠하는 이유도 바로 이 점 때문이다. 정확한 컴퓨터 프로그램이 구현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과 함께 손으로 낳은 선들은 작품을 서정적인 매체로 진화시킨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실제로 전시될 작품이 만들어지는 시간은 한 작품이 탄생하는 전체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보통 한 작품에 4~5일 정도의 시간이 걸리며 비교적 짧은 이 시간은 가루였던 석고가 물과 섞여 점점 단단해지면서 마무리된다.

 정리 이희원 편집위원 | ryunis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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