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재 / LAB 2050 대표

 하이바이! 노동! ③ 기본소득과 플랫폼 노동

21세기 이후 우리의 삶에서 플랫폼 노동이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됐을 때 자본주의는 어떤 방식으로 플랫폼 노동과 결합하는가. 일하는 시간을 자유롭게 만들고 최소한의 노동요건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플랫폼 노동의 신화는 ‘과로와 지원체계 부족’이라는 단점에 부딪혔다. 그러나 변동하는 자본의 세계를 읽고 기본소득과 플랫폼노동조합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패러다임을 상상해야 한다. 플랫폼과 정보들의 범람 속에서, 이번 기획은 기존에 개별화된 노동자들이 ‘우리’라는 연대를 통해 새로운 대안을 찾을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플랫폼 자본주의 ② 새로운 ‘일’의 세계 ③ 기본소득과 플랫폼 노동 ④ 연대, 그리고 노동조합

 

플랫폼 노동, 자유노동, 그리고 기본소득


이원재 / LAB 2050 대표

   코로나19는 식당에 가서 낯선 이들과 가까이 앉는 일마저 꺼려지게 만들었다. 그로 인해 배달 앱에 접속해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늘면서 플랫폼 노동 형태를 띈 시장이 활성화됐고 플랫폼 경제의 확산에는 가속도가 붙고 있다. 이는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사람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판매하는 형태의 경제로, 이때 ‘고용주와의 근로계약’은 사라지게 된다. 과연 우리의 노동, 삶은 어떤 방향으로 바뀔까. 변화의 폭과 속도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있지만, 변화의 방향은 잡혔다. 산업혁명 이후 우리를 지배하던 노동 방식이 퇴조하기 시작하고, 새로운 노동 방식이 출현 및 확산되고 있다. 노동자가 특정한 자본과 일종의 ‘종속 계약’을 맺는 대신 자본이 국가와 협업해 그 노동자의 삶 전반을 책임지며 보호한다는 묵계가 깨지고 있다. 노동자는 일자리가 아니라 일 단위, 그 자체로 자본을 만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근로계약을 맺지 않아 전통적인 노동 보호 장치에서 벗어나는 반면, 전통적인 종속 노동과 대비되는 근로 형태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플랫폼 노동’이라 흔히 불리는 그 노동의 형태를 ‘자유노동’이라는 정의로 소개하고 싶다.

 

 
 

더 이상 ‘종속’만이 노동이 아니다

 

   자유노동은 고용주에게 종속되지 않는 계약 형태를 취하기에, 일하는 방식에 대한 높은 자율성과 통제권을 갖고 서비스나 상품을 제공해 소득을 얻는다. 이는 임시적 계약을 통해 수행되는 새로운 형태의 ‘일’로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노동 3권, 사회보험 등 전통적 노동 보호 장치가 부분적으로만 적용되거나 아예 적용되지 않는다. 동시에 작업지시와 감독이 없으며 결과만으로 평가받는 형태의 노동이기도 하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적으로 정의된 ‘노동’은 고용주에 대한 높은 종속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종속돼 있어야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고 휴가나 임금보장, 단체협상 등의 권리가 주어지고 결정권이 작더라도 경영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종속된 노동자는 지시받는 대신 보호도 받는다는 개념인 셈이다. 자유노동은 이런 전통적인 일자리와 ‘종속성’의 문제에서 핵심적으로 구별된다. 자유노동 종사자에게는 고용주가 없다. 계약 대상만 있을 뿐이다. 일의 과정을 통제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일하되 성과를 내놓으면 된다. 물론 출퇴근 시간이나 정년도 없다. 과거에도 자본주의 체제에 이런 노동 형태가 부수적으로 존재하긴 했지만 최근, 자유노동이 더 주목받는 이유는 플랫폼 경제 확산과 함께 주된 노동 형태 중 하나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수요자와 공급자, 서로가 원한다

 
   이런 형태의 노동은 긱 노동(Gig Work), 독립 노동(Independent Work), 크라우드 노동(Crowd Work) 등의 용어로 각각 달리 정의되고 있다. 모두 플랫폼 경제와 함께 확산된 노동 형태다. 플랫폼 노동, 혹은 자유 노동이 최근 빠르게 확산된 것은 디지털 기술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우버, 업워크, 태스크래빗, 아마존 메커니컬 터크 같은 주문형 작업 플랫폼은 플랫폼 경제 성장의 주역이었다.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일을 업무 단위로 조각내어 주문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됐고, 인터넷은 국경을 넘어 이를 유연하게 이동 가능하게 했다. 이를 통해 한 국가 안에서 고용계약을 맺고 노동법과 사회보험 등의 보호를 받으며 행하던 전통적 노동 개념은 빠르게 깨지기 시작했다.
   디지털 기술뿐 아니라 기업조직의 변화도 자유노동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한다. 생산기술의 변화로 노동 수요자인 기업은 점점 더 ‘균열 일터’로 변화하고 있다. 대규모 고용을 통해 생산의 대부분을 기업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해 거래 비용을 최소화하는 대기업 체제는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계약직 고용과 외주 하청화로 노동을 외부화하다가, 이제는 플랫폼을 통해 노동을 확보하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채택하는 데에 이르렀다. 기업이 점점 더 자유노동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면서 수요 쪽 필요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공급 쪽의 변화도 있다. 노동 공급자인 개인들은 기업조직의 위계 구조 아래 일하는 대신 독립적·자율적으로 일하고 유연한 삶을 선호하고 있다. 특히 밀레니엄 세대 그 이후일수록 자유를 추구하는 경향은 더 강하다.

 

볼링장의 킹핀, 기본소득제

 
   자유노동은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다. 다양한 사회보험으로부터 배제돼 있다는 점과 고용계약을 맺지 않고 일하기 때문에 아직 사회적 인정체계가 없다는 점에서 노동자들은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두 가지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소득의 불안정성이다. 고용계약에 맞춰 일정한 금액을 주로 매달 지급받는 종속 노동과 달리, 자유 노동은 시장 상황에 따라 수입이 들쭉날쭉하다. 이런 고용계약 관계에서는 대부분 고객과 단기 계약을 맺으며 초단기 노무를 제공하고, 길어도 1년 미만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일거리와 소득이 한꺼번에 몰릴 때도, 아예 없을 때도 있다.
   따라서 이런 자유 노동 종사자들의 삶이 안정되려면 기본소득제가 실행돼야 한다. 기본소득제는 모든 개인에게 조건 없는 소득을 지급하는 제도다. 이는 조건 없이 주어지는 소득이기 때문에 자유 노동의 소득 불안정성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일감이 없어 소득이 적을 때는 기본소득을 근로소득에 더해 소득을 보충하다가, 일감이 늘어 소득이 높을 때는 세금을 더 내서 기본소득의 재원을 제공한다. 기본소득제가 불안정해진 소득을 안정화 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모두가 그렇겠지만 소득이 안정적이지 않다면 시장에서 버틸 수 없게 되고 투자하고 성장할 여유도 찾기 힘들다. 만약 국가로부터 보장된 소득이 있다면 조금 더 장기적인 관점의 투자가 가능하고, 글로벌 플랫폼에서 더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돼 국가 전체 소득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소득으로 직접 연결되진 않지만 사회에 가치를 더해주는 문화 예술 활동이나 비영리 활동, 돌봄 활동 등도 적극적으로 펼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기본소득제도는 ’자유‘와 안정’이 중요한 키워드임과 동시에 볼링장의 킹핀과도 같다. 이 핀을 넘어뜨리지 않고 다른 일을 도모하기는 매우 어렵다. 기본소득제는 ‘불안정한 노동’이 돼버린 플랫폼 노동에서 그 불안정성을 걷어내고, 일의 의미와 성과를 더 높일 수 있는 자유노동으로의 진화를 가능케 하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제도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