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근 /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낙인으로 쌓아올린 ‘정상’사회 ② 정신질환자와 ‘안전한’ 사회
 
현대인의 삶은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아를 연출해가는 한 편의 연극과도 같다. 이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사회적 구조와 결탁해 정체성을 획득하게 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때 정체성 구성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 중 하나인 ‘낙인’은 한 개인에게 부정적인 편견을 덧입혀 그 존재를 축소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이번 기획에서는 주류 사회가 정해놓은 ‘정상’이라는 기준에 미치지 못한 자들이 수많은 ‘죄목’을 달고 타자화되는 현상과 낙인이 어떻게 설득의 힘을 가지며 유지되는지에 대해 주목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청년과 ‘근면한’ 기성세대  ② 정신질환자와 ‘안전한’ 사회 ③ 퀴어와 ‘이성애’ 남성 ④ 난민과 ‘대한민국’ 시민
 

편견으로 점철된 안전지대


김문근 /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사회구성원들은 그들의 행동이 향하는 모든 대상에게 특정한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고 이에 근거해 조화로운 공존을 이룩하려 한다 . 따라서 한 사람을 배제하는 현상 이면에는 언제나 그 사람이 가치 없는 존재,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존재라는 의미가 작용한다. 이런 인식은 그 대상자들이 보유한 ‘비정상적’ 속성에 의해 정당화되는 경향이 있다. 특정한 사람이나 집단에 부정적 편견이 덧씌워지면 사회구성원들은 그들을 차별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것이 일종의 행동규범이 되는 것이다. 부모는 어린 자녀를 양육하면서 이런 편견을 자연스럽게 자녀 세대로 전수하기까지 한다.
 
 
 
불안과 함께 지운 존재

  ‘위험하다’ ‘비이성적이다’ ‘무능력하다’ 등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에게 부여되는 사회적 의미는 편견으로 집약돼 널리 유통된다. 이처럼 늘 과도한 일반화의 오류가 개입되기 쉽지만 사람들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정신질환자에게 이러한 편견은 사회적 표식으로 각인돼 있어 쉽게 해소되지 않고 있다. 2019년 초에 있었던 일부 정신질환자에 의한 폭력 사건들은 ‘정신질환자는 위험하다’라는 대중의 인식을 강화했을 개연성이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정신질환자는 그러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며 지역사회에서 재활을 통해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미디어에서 한두 명의 정신질환자를 폭력적으로 재현할 때 사회는 정신질환자 전체를 심각한 사회적 위협요인으로 간주할 뿐, 정작 그들의 삶에는 무관심으로 대응한다. 그래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상당히 경직되고 보수화돼 이들에 대한 사회적 감시와 통제를 강조하기도 한다.
  위험이 사회 도처에 깔린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건강이나 안전이 걸린 문제에 대해 배타적이고 이기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 사회심리학의 공포관리이론(Terror Management Theory)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과 관련된 자극에 노출될 경우 보수적으로 변하며 타인들, 특히 사회의 규범을 어긴 일탈자들을 더 가혹하게 처벌하기 원하는 경향이 있다. 정신질환자를 향한 편견이 지속되는 이유는 그들이 비이성적이고 위험한 행동을 할 수 있어 사회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이들을 통제해야 한다는 신념이 은밀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특정 집단에 대해 극도의 편견을 내보이는 사람은 요즘 자신이 느끼는 불안감에 대해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사회가 ‘합의한’ 차별

  정신질환자에 대한 낙인은 단지 시민들의 인식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편견이 견고한 제도로서 존재하는 한, 단순히 인식을 개선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1995년에 제정된 정신보건법은 ‘정신질환자’가 스스로 치료를 선택할 수 없는 상태에서 법정대리인의 신청에 따라 정신건강의학전문의의 진단하에 비자발적 입원이 가능하도록 했다. 물론 스스로 치료를 판단할 수 없거나 즉각적으로 자신이나 타인을 해할 위험이 있어 비자발적 입원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이런 제도가 전적으로 잘못됐다 할 수는 없다. 다만 여전히 자기 의사를 표명할 수 있고, 치료에 관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에게도 사회적 통제성이 깃든 이 제도가 악용된다는 것이 문제다.
  푸코(M.Foucault)가 사회를 규율하는 권력과 지식의 결탁 관계를 폭로할 때 정신의학을 표적으로 삼았던 이유는 정신의학이 갖는 독특성과 관련 있다. 푸코에 따르면 지배계급에는 안전한 사회를 위한 내치(Police)가 중요했다. 여기서 정신의학은 일탈적인 사람들을 분류·처방·관리·통제하는 방안을 진단과 치료라는 이름으로 제시했기 때문에 상호 결탁이 이뤄질 수 있었다. 1960년대 반정신의학운동을 이끌었던 사즈(T.Szasz)의 ‘정신질환은 만들어진 신화다’라는 주장은 지나친 면이 있다. 하지만 그만큼 정신의학은 인간의 비정상적 행동을 분류하는 기능이 있어 사회통제를 위해 쉽게 오용될 여지가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 정신건강복지법을 연구하는 진보적 연구자들, 정신장애인당사자단체 등이 비자발적 입원제도에 대해 인권 옹호의 관점에서 견제를 하는 것은, 정신의학적 접근의 부작용을 막아내기 위한 노력이다. 제도에 내재된 편견과 차별은 또다시 시민들의 의식을 정당화하기도 하므로 비판적 성찰을 통한 개선이 요구된다.
 
모두를 갉아먹는 배제의 원리

  한편 우리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이 지니는 폐해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수정된 낙인 이론(Modified Labelling Theory)에 따르면 우리는 사회화 과정에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을 학습하게 되는데, 정신질환을 진단받게 되면 이 편견이 자기에게도 작용한다. 무엇보다 타인들이 자신을 차별하고, 가치를 낮게 볼 것이라는 편견의 틀로 본인을 바라보기 때문에 사회적 관계에서 스스로 소외시키고 정신질환자임을 들키지 않으려 한다. 그 결과 취업 등 사회참여에 심한 손상이 일어나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은 그들의 삶에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이들은 주변의 많은 사람이 포용적인 태도를 보여도 몇몇 반응으로부터 편견이나 차별의 징후를 발견하면 급격히 위축된다. 일례로 지역사회에서 오랫동안 운영되던 그룹홈이 정신질환자가 거주하는 시설임이 알려지면, 이웃 주민들은 그들을 주도면밀하게 관찰하고 사소한 일상적 행위까지 문제 삼아 민원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런 반응을 접했을때, 주거시설을 운영하는 전문가나 그곳에 거주하는 정신질환자들에게 이웃은 더이상 정겨운 이웃일 수 없다. 평범한 이웃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지극히 소박한 소망은 한순간에 위태로워진다.
  우리가 스스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내려놓는 것은 그들을 위함과 동시에 나 자신과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 국민의 평생 정신질환 유병률은 23.1%로 자신이나 가족 중 누구라도 정신질환으로부터 자유롭다 단언할 수 없다.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치명적인 이유는 우리가 스스로 편견이 어떤 것인지 직관적으로 알고 있으며 우리 주위 사람들을 구별해 배제하는 인지적 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정신질환이 생길 경우 본인 역시 철저하게 사회로부터 버림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즉각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덫에 자신이 걸리는 것과 같아 그 고통은 더욱더 쓰라릴 수밖에 없다. 누구라도 정신건강 문제에 노출된 현대사회에서, 혹 정신질환이 있더라도 배제 대신 포용을 기대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내는 과제는 결국 우리의 노력에 달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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