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환 / 영산대학교 법학과 교수

여기, 지금, 우리의 이야기 ① 지배에서 공존으로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기후변화’와 ‘자원고갈’은 작금의 지구 생태계를 대표하는 단어들이다. 이 단어들은 무한하게 생산하고 무한하게 소비하는 경제 체제가 구르고 굴러 전 인류의 생존을 서서히 위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위협은 불공평하게 배분돼 누군가에게는 견딜 수 없이 무거운 무게로 다가오지만 방패를 준비한 누군가에게는 그 무게가 미약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환경 이슈가 더 이상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일상의 위협으로 다가온 지금, 우리에게 어떤 고민이 필요한지 찾아가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지배에서 공존으로 ② 기후변화와 환경 불평등 ③ 채식의 세계 ④ 새로운 가능성, 생태배당

 
 

협력적 법치주의 시대로의 진입


박규환 / 영산대학교 법학과 교수

   우리는 윤리가 자본에서 분리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소외계층의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은 자본과 연결된 엘리트계층의 도덕성에 의존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대안이 없어 보인다. 윤리가 자본에서 분리되는 과정은 매우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진행됐고 앞으로도 진행될 것이다.
자원고갈과 기후변화라는 심각한 범지구적 위기가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상황에 변화를 주는 외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정된 자원을 선점하기 위한 ‘투쟁’의 관계가 한정된 자원을 보존하기 위한 ‘협력’의 관계로 변하고 있다.


법치주의의 구조변동

   18세기와 19세기의 전환기에 법치국가 이념이 새로운 시대의 사상으로 나타났고 이는 봉건 지배체제에 대한 시민계급의 투쟁 결과로 탄생한 것이다. 이를 ‘시민적 자유주의적 법치국가’라고 한다. 개인의 복리가 핵심 가치가 된 이 시대에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야기된 사회의 구조적 변화가 봉건적 토지 소유제도의 틀 아래 형성됐던 각종 법률의 변화를 강제했다.
   하지만 20세기에 이르러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통해 모두의 삶이 윤택해진다는 약속이 틀렸다는 것이 곳곳에서 확인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국가적 과제 수행이 강조되며 법치국가 내용에 ‘사회적 법치국가’ 원리가 도입된다. 이 시대에는 개인의 자유를 단지 국가가 침해하지 않으면 된다는 수준을 넘어 개개인이 자유를 실현할 수 있도록 국가가 적극적으로 그러한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는 의무가 강조된다.
   21세기에 진입하면서부터는 정보혁명을 통해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더욱 견고히 하게 됐는데 특히 불평등의 영역에서 이제는 국민 개개인 각자가 무엇이, 왜 그리고 어디서 불평등이 발생하고 있는지를 손쉽고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됐다. 또한 광범위한 영역에서 국가 행위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제고됐고 사회통합을 위한 개인 상호 간, 국가와 국민 상호 간, 국가와 국가 간의 ‘공존을 위한 협력’을 보장해 줄 소통방식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됐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는 발전된 형태의 21세기형 법치주의의 개념과 내용을 요구하고 있다.


생태적 법치국가(Okologischer Rechtsstaat)

   법치국가 이론을 발전시킨 독일에서는 사회적 법치국가에 이어 새로운 시대상을 반영한 소위 ‘생태적 법치국가’의 도입이 가능한지에 대해 논의가 이미 시작됐다. ‘생태적 법치국가’와 관련해 법리적 시사점을 주는 것으로는 1994년 독일 헌법 제20a조의 도입과정에서 동조가 규정한 ‘자연적 생활기반’의 해석을 두고 벌어진 논쟁을 들 수 있다. ‘자연적 생활기반’이 인간의 생물학적 삶의 기반만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자연에게도 동등하게 적용되는지, 유사한 헌법적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이는 그동안에 이뤄진 헌법해석이 인간을 중심으로 그 헌법적 가치의 편익을 판단해 온 관행에 중대한 수정을 가져오는 것이기에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됐다. 결국 독일 공동헌법위원회는 동 규정의 문구 ‘자연적 생활기반’이 시대변화에 맞춰 유동적 해석이 가능하도록 하는 개방적 태도를 견지하게 했다.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는 생태적 관점

   우리 헌법은 환경권을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독일의 학자들이 독일 헌법해석을 통해 주관적 권리를 부여해 헌법의 개입을 도모하려는 시도와는 달리 주관적 권리성이 선재 되고 있다는 점에서 구조적 차이를 보인다. 다만 지금까지의 대다수 국내 논의들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거나 우위에 있다는 사상에 기초한 ‘환경’개념으로 파악돼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과 공존한다는 생태주의 사상이나 독일의 관련 헌법적 논의들과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우리 헌법의 구조가 환경권을 이미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수한 상황에서 예외적으로 환경권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심사기준으로 윈터(G. Winter) 교수의 ‘생태적 비례원칙’을 도입하는 것은 독일보다 헌법 이론적으로 더 용이하다.
   일반적 비례원칙이 개인의 권리 보호를 위해 환경침해 수단에 제한을 가하는 구조라면, 생태적 비례원칙은 환경보호의 관점에서 공동체의 이익이나 개인의 권리가 제한되는 구조다. 전자가 환경정책의 영역에서 공동체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라면 후자는 환경보호 자체를 위한 도구가 된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자연을 바라보는 근본적 토대의 차이에서 비롯되는데 전자는 ‘인간을 지배자’로 보면서 ‘자연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후자는 ‘자연을 하나의 순환체’로 보면서 ‘인간이 그 속에서 생존한다’는 사상을 토대로 하고 있다. 전통적 환경법 체계가 공동체의 목적에 대한 정당성을 엄격하게 심사하지 않는 반면, 생태적 비례원칙에서는 공동체의 목적을 엄격하게 심사한다. 따라서 전자에 따르면 자연의 이용을 위한 방법을 평가하지만, 후자는 자연의 이용 자체가 정당한가를 판단한다.
   일반적 비례원칙에서는 달성하려는 공동체의 목적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지만, 생태적 비례원칙하에서는 ‘목적을 정당화시키는 의무’에 의해 공동체의 목적이 제한된다. 즉 목적을 정당화하는 근거에 자연자원고갈에 대한 관점에서 평가된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 예를 들어 자연자원을 사용해 산출물을 얻는 경우 단순히 인간의 소비나 수요가 근거로 제시되거나, 애완으로 키우기 위해 희귀종을 포획하는 것은 비례원칙의 첫 번째 심사단계인 ‘목적의 정당성’을 충족시킬 수 없다. 두 번째 심사단계에서는 ‘목적을 실현하는 방법의 적절성’을 평가한다. 예를 들면 수력발전을 위한 댐을 건설하는 경우 저수량이 지속적으로 충분히 유지될 수 없다면 불필요한 공사를 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세 번째로는 자연자원을 더 적게 침해하는 ‘대체수단의 가능성’이 있는지를 평가하며 이는 생태적 비례원칙이 가지는 중요하고 실용적인 내용이 된다. 마지막으로 위의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된다고 해도 그러한 방법이나 행위가 목적달성으로 인한 이익보다 더 큰 부정적 영향을 초래한다면 이 방법은 배척돼야 한다.


협력의 패러다임으로

   생태적 개념을 헌법에 도입한다는 것은 동물에게 권리 주체성을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와는 맥이 다른 더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한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지배 내지 우위의 개념을 버리고 전체로서의 자연에 속하는, 자연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인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패러다임의 전환은 변화된 헌법구조에 기인한 헌법해석을 가져온다. 독일은 현재 큰 시대적 흐름 중 하나인 생태주의 사상을 헌법 가치로 서서히 반영하고 있다. 이는 결국 헌법 가치의 판단구조가 단순히 인간중심에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라는 좀 더 정교한 구조로 변화해갈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변화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는 ‘생태적 법치국가’ 개념의 논의를 가능케 하고 있다. 18세기와 19세기의 시민적 자유주의적 법치국가와 20세기의 사회적 법치국가가 변화하는 21세기에서는 ‘생태적 법치국가’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제러미 리프킨(J.Rifkin)은 1차, 2차 산업혁명기의 권력이 국가 단위, 정부 주도, 중앙집권형이었다면 에너지망에 대한 인터넷 스마트그리드 시스템이나 3D 프린터와 같은 수공업적 하이테크 도구(High-Tech Self-Providing)들이 등장한 소위 3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분산적이고 협업적인 수평적 권력 구조를 형성해 빠른 속도로 ‘산업 시대’가 ‘협업 시대’로 전환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구조적으로 지역 단위의 필요와 생태 현상을 고려한 소량생산이 가능해지면 지역, 국가, 대륙 간의 협력이 중요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은 자연에 의존하던 단계에서 자연을 지배하고 관리하는 단계를 넘어 이제는 보편적 생명공동체인 자연의 일부로 자연과 동행하는 단계에 와 있다. 그렇기에 과학은 자연 위에 군림하면서 독립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협력하면서 자연에 참여하는 것을 중요시할 것이라고 한다. 산업자본주의를 작동시킨 주요 장려개념인 ‘만인의 무한경쟁’은 이제 ‘만인의 무한협력’에게 그 자리를 내주고 있다. 급변하는 세계 질서는 어떠한 형식으로든지 법치국가의 구조변화를 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화두는 이제 ‘경쟁’이 아닌 ‘협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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