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수 / 청년정치크루 대표

‘전시’의 대상에서 ‘전복’의 주체로 ① 청년 정치, 그 의미에 대하여

현재 대한민국 정치권에선 ‘청년’이라는 두 글자가 다시금 ‘소환’되고 있다. 그러나 선거철이면 일부 청년들의 목소리를 전면에 내걸고 ‘청년 중심 정치’라는 이미지만을 취할 뿐, 정작 청년이라는 존재 그 자체는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는 청년세대를 대변할 수 있는 담론 및 언어의 부재, 타자화된 청년의 위치, 몰이해가 빚어낸 부정적 낙인 등과 맞물려 심화하고 있는 양상을 보인다. 그렇기에 청년 정치의 개념을 확립하는 것에서부터 실질적 변화를 향한 노력까지, 더욱더 적극적이고 꾸준하게 해당 이슈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청년 정치, 그 의미에 대하여 ② ‘386세대’와 ‘2030세대’의 현주소 ③ 청년 정치의 첫 걸음, 18세 선거권 ④ 청년의 일상 속 ‘정치학교’
 

 
 
정치권 청년들의 역할 찾기

이동수 / 청년정치크루 대표
 
 
  2016년 5월 30일 임기를 시작한 제20대 국회의 당선일 기준 평균연령은 55.5세로 역대 국회 중 가장 높다. 게다가 당선자 중 20대는 0명, 30대는 3명밖에 없다는 사실은 많은 언론으로부터 지탄받았다. 평균연령과 2030 당선자 수는 제20대 국회를 비판할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레퍼토리가 됐다. 하지만 여기에는 일종의 착시가 있다. 지금의 국회가 역대 국회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국민의 기대수명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1948년 대한민국의 기틀을 잡은 제헌국회의 평균연령은 47.1세로 언뜻 보면 젊어 보이지만 이 당시 국민들의 평균 기대수명은 46.8세에 불과했다. 국민이 쉰 살도 못 살던 시절과 팔순은 거뜬히 넘기는 시대는 분명 다른 만큼, 지금의 국회가 특별히 나이 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람들이 제20대 국회를 ‘늙은 국회’, ‘일 안 하는 국회’로 인식하는 것은 꼭 나이 때문이 아니다. 사실 입법만 놓고 보면 제법 많은 일을 하기도 했다. 제20대 국회의 법안 발의 건수는 2020년 2월 20일 기준 24,841건으로 역대 어느 국회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그럼에도 제20대 국회가 최악의 국회로 평가받는 것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굵직한 현안들을 해결하는 데에는 형편없었던 반면, 선거법 개정처럼 본인의 밥그릇이 걸린 문제에는 사활을 걸고 싸우는 구태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현역 정치인들에 대한 불만은 자연스레 아직 수면 위로 오르지 않은 미래세대, 청년들에 대한 기대로 옮겨갔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지금처럼 청년이 많이 회자된 적은 별로 없었다. ‘헬조선’과 ‘열정페이’ 등 청년 담론이 불꽃같이 일었던 2016년에도 총선 때에는 새누리당 내 계파 간 갈등이나 중도정당과 같은 이슈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오늘날 국민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은 정치의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치권에서 청년들이 수행하는 역할이 변하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청년들은 정책과 의제를 개발하는 주체이기보다는 조직을 동원하고 이미지로 소비되는 객체로 머물러 있다.
 
‘잘 팔리는’ 청년 정치
 
  정치권이 청년들에게 부여하는 가장 주된 임무는 ‘조직’이다. 이벤트마다 인원을 동원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식이다. 과거에는 때때로 돌격대장으로서 상대방에게 위협을 가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52년 1월 자신이 제안한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이 찬성 19표, 반대 143표, 기권 1표라는 처참한 성적으로 부결되자 청년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대한청년단을 비롯해 백골단, 땃벌떼, 민중자결단 등 이름만 들어도 사나운 청년단체들은 군중대회를 열어 “민의를 배신한 국회를 소환하자”고 압박을 가했다. 민주화 이후인 1990년대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요즘은 볼 수 없는 후보자들의 합동연설회에 청년들이 대대적으로 동원돼 북과 꽹과리를 요란하게 치며 세를 과시하는가 하면 때론 각목과 쇠파이프로 폭력을 행사했다.
  이제 폭력행위는 사라졌지만 그들을 인원 동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여전하다. 정치인들은 선거철이 되면 젊은이들과 소통한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청년간담회를 우후죽순으로 여는데,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간담회에서 오고 간 내용이 아닌 참석한 청년의 수가 된다. 그렇기에 선거가 치열할수록 각 캠프는 청년당원에게 “친구들을 경선인단으로 모집해 달라” “여럿이 지지 선언을 해 달라”고 끊임없이 요청을 한다. 정치권에서 활동하는 청년단체들 역시 이런 현실에서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회원 수를 부풀리는 일이 허다하다.
  청년은 젊음의 상징으로서 정치권에 소비되기도 한다. 청년이 상징하는 여러 가치, 예컨대 도전과 혁신 등을 낡은 정치의 외형에 이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재영입은 대표적 사례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은 앞다퉈 청년들을 영입했다. 그러나 이들이 국회의원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지난 총선에서도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숱한 영입 청년 중 금배지를 단 사람은 단 두 명에 불과했고 대다수는 공천조차 받지 못했다.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청년 이미지 소비는 극에 달한다. 청년들은 유세차 앞에서 율동을 추고 각종 이벤트의 전면에 배치되지만 정작 정책과 메시지 같이 중요한 역할에선 설 자리가 거의 없다. 그래서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보좌진으로 합류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구시대의 막차, 새 시대의 첫차

  오늘날 청년 정치에 대한 열망과 불만이 표출되는 것은 국회의원들의 나이 때문이 아니다. 사실 제20대 국회가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합리적으로 자원을 배분하는 정치 본연의 기능에 충실했다면 지금처럼 청년정치인을 찾는 목소리는 적었을 것이다. 반대로 제21대 국회에 청년들이 대거 진출하더라도 지금이랑 별반 다를 것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낡은 국회는 변하지 않았다고 여겨질 것이다. 단순히 청년들이 한다고 청년 정치라고 할 수는 없다.
  청년정치란 결국 청년다운 정치를 의미한다. ‘청년’이라는 단어가 함의하는 가치들을 실현하는 것, 기성세대와는 다른 모습으로 대한민국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비전과 신뢰를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무작정 구시대와 단절하거나 절연하자는 것이 아니다. 낡은 가치들을 극복하고 새로운 가치의 장을 열어야 한다는 의미다.
  수십 년째 반복되고 있는 산업화 대 민주화의 구도가 그렇다. 오늘날 우리 정치가 친박과 비박, 친문과 비문의 갈등을 거듭하는 것은 여전히 박정희와 김대중, 노무현으로 상징되는 과거 가치들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가치의 효용성이 사라진 상태에서 정치를 해야 하다 보니 패거리 정치만 낳았다. 특히 부동산과 모빌리티, 젠더갈등, 신재생에너지 등의 의제들이 국회에서 삐걱댄 것은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기존 가치의 틀이 더는 우리가 일상에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방증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가 성장하면서 국민의 열망과 이해관계도 복잡다단해졌다. 이제는 진보와 보수 두 진영이 전통적으로 가졌던 접근방식으로는 우리가 당면한 과제들을 풀어낼 수 없다. 그리고 다원화된 사회의 현안들을 해결하기 위해선 다양한 접근이 요구된다. 필자는 그 일을 청년들이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태생부터 이룩된 산업화와 민주화의 기반 위에 다양성을 체득하며 성장했기 때문이다.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청년들에게는 산업화 대 민주화로 이분화된 정치를 극복해야 할 임무가 주어졌다. 구시대의 막차를 타느냐, 새 시대의 첫차를 이끌어 가느냐는 청년들의 몫이다. 조직과 이미지로만 소비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우리 시대 새로운 의제를 발굴하고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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