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기획의도] 만들어진 평화, 지워지는 존재

 

(준비물은 침묵) 오늘도 참 평화로운 하루다!


   ‘이름이 뭐예요’로 시작하던 노래가 문득 생각난다. 중얼거리던 그 노래가 익숙하게 다가온 이유는 ‘이름’이 뭐냐고 묻는 일상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이 아닐까. 낯선 사람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나는 그의 이름을 묻고 반대로 나의 이름을 그에게 알려주면서 서로를 알아간다. 어떤 이름을 알려줄 것인지는 나의 선택이다. 우리에겐 수많은 신분과 수많은 이름이 준비돼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는 선택하지 않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고, 그마저도 채택되지 않으면 아예 불리지 않기도 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던 시의 한 구절처럼 호명에 의해 우리는 그 누군가가 된다. 끝없는 인식의 암흑 속에서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는 아주 작은 촛불을 켜 그의 존재를 탐구하는 일인 셈이다. 그러나 모두가 이름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식 속에 자리 잡지 못한, 혹은 의도적으로 그 인식에서 지워져 버린 존재들에게는 흔하디흔한 ‘이름’조차 부여되지 않는다. 이름이 없다고 해서 그 존재마저도 없는 것은 아닐텐데 말이다.

 
 

선거는 정말 넓어졌나

   지난해 12월 27일, 만 18세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오는 21대 총선에서 2002년 4월 16일생까지의 청소년들이 투표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전체 유권자 중 1.1%에 불과하지만, 청소년이 유권자로 참여한다는 점에서 많은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각에서는 젊은 세대가 정치에 관심이 없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으나 실상 만 19세 유권자의 총선투표율은 18대에서 33.2%, 19대에서 47.2%, 20대에서 53.6%를 기록했다. 더 이상 ‘청년은 정치에 관심 없다’는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시대다.
   법제처 법령용어사례집에 따르면 선거권은 “선거인단의 구성원으로서의 국민이 각종의 공무원을 선출하는 권리”고 피선거권은 “선거에서 당선인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의미한다. 18세 선거권이 확대된 것과는 달리 청년에게 주어진 피선거권의 자리는 좁았다. 만 18세와 만 19세의 세계가 다르고 또 그 안에서도 다층적인 개개인이 존재하지만 이를 대변할 수 있는 창구는 미비하다. 나이는 개인이 가진 특성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나이로 인해 무수히 많은 성질들이 대변되지 못하는 것이다. 늘 자리를 차지하던 정치인이, 늘 정치를 하던 세대가 이 판을 이어나가는 것은 꽤 자연스럽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정치의 주체를 새롭게 인식하려는 시도가 부족한 것은 아닐지 꽤나 우려스러운 현실이다.


평화로운 하루가 아니라 온전한 하루

   2020년도 상반기 대학원신문 특별호는 평화로운 하루가 되기 위해 이름을 잃고 지워졌던 존재들을 불러본다. 특집 기고문에는 ‘성소수자 대학원생/신진연구자 네트워크’의 글을 담았다. 기존 학문계가 그어놓은 경계 위의 어딘가를 끝없이 항해하며 위치를 찾아가는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특집 정치 지면에서는 선거철을 앞두고 소환된 ‘청년’이 기성세대에게 소비되는 양상을 살펴보고 그동안 정치의 영역에서 지워진 행위자들, 의제에 주목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특집사회 지면을 빌어 기성세대의 근면성실한 삶이 청년 세대에게 투영되는 방식으로서의 ‘나태함’이라는 낙인을 살펴본다. 특집 인터뷰에서는 문화연구를 진행하는 신진연구자의 인터뷰를 통해 다층화된 청년 세대가 갈등구조 안에서 부딪히고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음을 전한다. 특집 예술 면에서는 정형화된 ‘아름다움’을 의심하고 아름답다고 불리지 못한 ‘불온한’ 아름다움을 조명해 미의식의 역사와 미적체험으로서의 가능성을 살펴본다. 또한 특집 생태 면을 통해 헌법의 기본권에서 논의되지 못한 자연이 법적인 측면에서 주체로 성립되기 위해 어떤 논의가 필요한지 살펴본다.


‘소란’을 위해

   본지는 특별호를 통해 평화가 아니라 ‘소란’을 택했다. 평화를 위해 침묵을 강요받았던 이름 중 몇몇 이름뿐일지라도 그 존재를 알리고자 했다. 개개인이 그 자체로 오롯이 존재하는 세상은 어느 날 자연스럽게 찾아올 미래가 아니라 우리가 부르고 손짓해야 찾아올 미래이기 때문이다. 이번 상반기 특별호에서는 칸칸이 구획된 보관함에 반듯하게 정렬하는 것 대신 먼지가 풀풀 날리도록 어수선하게 소동을 일으킬 계획이다. 칸 안에 딱 맞도록 스스로를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부수고 넘나들어보자. 정확하게 딱 정리해 만든 ‘평화’ 대신 존재들이 지워지지 않는 세상을 바라본다. 우리의 소란이 소음이라고 귀를 막아버리지 말고 경청해주시길.

 

장소정 편집위원 | sojeong2468@cau.ac.kr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