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19.11.9 토 14:19
기획정치
[정치] 정치 균열의 젠더, 젠더 정치의 이반이진옥 /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
한재영 편집위원  |  yodream9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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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호]
승인 2019.11.06  00: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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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어를 입력하세요, 여성정치 ③ 정치적 존재로서의 여성

혹자는 이제 막 ‘젠더 정치’가 시작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변동하는 한국 사회 곳곳에는 언제나 정치적 존재로서의 여성이 있었다. 본 지면에서는 그간 지배 논리의 언어에 의해 ‘단절’되고, ‘분절’돼 왔던 정치적 주체로서의 여성을 온전하게 말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오랜 시간 ‘남성의 얼굴’을 한 민주주의에 금을 긋고, 마침내 이를 무너뜨리고, 전복을 가능케 하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본고에서는 의미 전달에서의 오용을 막고자 영어 단어의 대문자 표기를 제한했음을 밝혀둠.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여성, 정치를 다시 읽다 ② 한국정치의 여성주의 테제 ③ 정치적 존재로서의 여성 ④ 정체성 정치, 그 이상으로

 

   
 

정치 균열의 젠더, 젠더 정치의 이반

이진옥 /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

 

  정치적 존재로서 여성은 다양한 모습으로 언제나 현현(顯現)했다. 독립운동가로서, 근대화의 주역으로서, 노동운동의 개척자로서, 민주화 운동의 참여자로서 한국 정치사의 모든 장면에서 여성은 그곳에 있었다. 그러나 여성은 잊히거나, 소거되거나, 선별돼 소환된다. 탈성화(de-sexed) 방식으로 쓰인 역사는 남성을 규범으로 상정하고 여성은 성적 존재로서 타자화해 왔다.

 

규범화된 남성과 성별화된 여성의 젠더 정치

  2018년 3월 12일 경향신문에 실린 〈젠더 정치의 등장〉이라는 제목의 칼럼은 이러한 젠더의 구도를 정확하게 반영한다. 칼럼에서는 평창 동계올림픽 아이스하키 단일팀의 한반도기 공동 입장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20대가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이례적인 현상을 분석한다. 해당 필자는 이 현상이 20대 여성이 이끈 반전의 결과라며, 이를 한국 사회의 “젠더 정치의 등장”이라고 명명한다. 이는 여성을 지속적으로 역사 외부에 위치시킨 남성 학자의 관행이다.
  젠더 정치의 관점에서 보자면, 모든 정치는 성화된 몸(sexed body)에 의해 체화된 권력(embodied power)으로 작동한다.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이 세운 나라에서조차 여성은 시민에서 배제되고 오히려 예속된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동원된 성차(sexual difference)의 발명이 바로 근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나타난 젠더 정치의 첫 장면이다. 젠더 정치학은 남성언어경제의 권력을 일차적으로 문제 삼는다. 이는 남성을 정치의 기본값(default)으로 상정하면서 남성 몸에 의해 체화된 정치 권력은 보편적인 것으로 상상하게 하는 반면, 정치적 존재로서 여성은 타자화시켜 이질적인 예외 경우로 기준에서 끊임없이 누락시키는 인식의 틀로써 작동한다. 이로써 여성의 역사는 항상 ‘단절’되고, 여성은 매번 정치 무대에서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 평가받으며, 정치적 주체로서 여성은 ‘분절’된다.
  정치적 존재로서 여성을 이질적 타자로 가시화하는 젠더 정치 관점에서도, 남성의 언어경제에서 여성은 쉽게 잊히거나 그들의 방식으로 조형된다. 일례로 2008년 촛불 시위를 이끌었던 가시적인 주체가 여성이었다는 사실은 ‘젠더 정치의 등장’이라는 명명 하에서 남성 지식 권위자에 의해 쉽게 생략됐다. 그러나 그 사실의 오류가 남성 지식의 권위를 손상시키지는 않는다. 더 나아가 당시 촛불 집회 참가자의 70%는 여성이었으며, 이 여성들은 ‘촛불 소녀’ ‘하이힐 부대’ ‘유모차 부대’라고 명명됐다. 이러한 방식의 여성 호명은 여성에 대한 성적 고정관념을 투사하고, 여성 집합을 나이 어린 소녀, 외모 꾸미는 젊은 여성, 아이 키우는 엄마 등으로 분절화한다. 이러한 분리선은 정치적 존재로서의 여성을 젠더 스테레오타입을 담지한 성적 존재로 환원시킨다.

 

젠더 정치의 역전과 정치 균열(political cleavage)의 젠더

  고전적인 정치학에서 젠더를 정치의 변수로 이해하는 방식의 개념에서 보더라도, 여성이 보수적인 정당에 투표하던 경향이 우세하고 남성은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당에 투표하는 성별화된 투표 행태가 이제는 반대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을 일컫는 ‘성별 역전 현상(gender-reversed)’의 젠더 정치 역시 지금 막 등장한 것은 아니다.
  일례로 2014년 시행된 6.4지방선거 직후 방송 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서울시장 선거에서 20대 남성은 65.3%, 여성은 74.4%가 당시 김진표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으며, 이러한 투표 행위에서 20대의 젠더 격차는 더욱더 명징해지고 있다. 19대 대선에서 방송 3사가 공동 심층 설문조사로 진행한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에서는 문재인 당선인이 과반 지지를 얻지 못했고, 심상정 정의당 후보에 대한 20대 여성과 남성의 편차는 16.3% 대 8.0%로 약 2배에 가까운 차이가 나타났다.
  특히 20대 총선에서 20대 여성 유권자 투표율의 급격한 상승은 더불어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소속 여성 후보를 대거 당선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18대 총선에서 24.1%의 투표율을 나타냈던 20대 전반대의 여성 유권자는 19대 총선에서 40.4%로 급격히 상승했고, 다시 20대 총선에서는 54.2%로 상승했다.
테러방지법 도입에 반대하는 전략으로 차용된 필리버스터의 흥행은 20대 여성 유권자들이 여성 의원들의 존재에 주목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더불어민주당은 수도권에만 25명의 여성 후보를 공천했고 이들은 남성 후보보다 2.4배 높은 득표율을 보였다. 그중 68%인 17명의 여성 후보가 당선되며, 당시 예측과 달리 더불어민주당의 선전을 가져와 탄핵을 가능하게 한 국회의 구도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다수의 정치학자들에게 젠더 변수는 여론조사의 항목으로조차 포함되는 경우가 드물다. 뿐만 아니라 페미니스트 운동은 정치 현상의 분석 대상조차 되지 않으며, 난해하고 의아한 사회적 현상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1기가 끝나가는 시점의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20대 남성 29.4%, 60대 남성 34.9%를 포함해 모든 연령대별 남녀 계층 중에서 가장 낮게 나타나면서, 언론과 정치권은 부화뇌동하기 시작했다. 이것을 호기로 삼아 바른미래당의 하태경 의원과 이준석 최고위원은 “워마드 척결”이라는 구호를 내세워 “청년의 정당”으로 거듭나겠다고 나섰다. 한편 청와대 내부는 ‘반(反)페미니즘’ 표방으로 대응하고, 더불어민주당 역시 여성 의제에 대한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처럼 20대 남성의 목소리를 반(反)페미니즘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문제 해결보다는 20대 남성을 달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청년의 정치적 주체성을 더욱더 훼손하는 것에 불과하다.

 

반동의 역습, 그리고 페미니즘의 반격

  19대 총선 전, ‘나는 꼼수다(나꼼수)’의 ‘비키니-코피 사건’에서 “우리는 치어리더가 되지 않겠다”는 집단적 선언은 진보 정치에 파열음을 낸 ‘미투 운동’의 예시적 사건이자 기존의 젠더 관계에 변혁을 예고한 페미니스트 정치의 서막이었다. 또한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외쳤던 광장에서 벌어진 일련의 ‘여성혐오’ 논쟁이야말로 남성이 표준화된 정치에서 이질적 존재인 여성 대통령이 어떻게 ‘여성화’되는지 드러내는 젠더 정치의 집약적 장면들이었다. 이에 “여성혐오와 민주주의는 같이 갈 수 없다”고 외쳤던 페미니스트 세력은 미투 운동의 인프라인 동시에 촛불혁명 이후의 대한민국 정치체가 모색해야 할 민주주의의 모양새에 근본적인 틀을 제공했다.
  팔루디(S.Faludi)는 《백래쉬(Backlash)》(2017)에서 1970년대 미국 여성운동의 성장 이후 1980년대 레이건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페미니즘 물결에 대한 거센 반격을 언론과 대중문화 분석으로 상세히 추적했다. 그는 1980년대 ‘보수 청년’의 등장과 투표 성향에서 남녀 태도의 차이가 주요한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의 양상으로 나타남을 지적한다. 이는 20대 남성의 정치적 보수화를 추동할 것이라는 점을 예측하나 동시에 20대 여성이 보수적 반동에 브레이크를 제동하는 주체일 것임을 역설적으로 시사한다.
오늘날 한국 정치에서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7%다. 여전히 소수자 집단에 머무는 여성대표성은 민주주의의 결핍 원인이자 결과다. 이러한 여성대표성의 과소는 정치 무대에서 여성의 징표화(scalp)를 낳고, 정치 혐오를 여성 대표자의 몸에 투사하는 효과를 발한다. 여성혐오의 정동은 정치 불신을 표상하는 매개가 되며, 나아가 여성 할당제를 부정하는 여론의 강력한 근거로 작동하는 딜레마다.
  그러나 페미니즘 의제는 정치개혁의 동력이다. 또한 페미니스트 의식화는 정치 참여의 동기를 부여하는 역설을 낳으며,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입법가가 될 권리와 그 절박한 필요성을 주장하는 근거가 된다. 여성 정치와 페미니즘 정치 사이에 놓인 이 역설은 정치적 존재로서 여성이 남성 권력과 협상하고, 타협하고, 전복하기 위해 필요한 ‘진동의 추’다. 이 진동추를 보다 거세게 움직여야만, 다가올 2020년 제21대 총선이 달라질 세상을 가능하게 할 중대한 역사적 사건으로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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