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광명(光名)의 시대, 광명(光明)의 역설

 

  최근 모 손해보험회사의 TV 광고가 대중들에게 우호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1분 남짓한 이야기 속 주인공 남녀가 우발적 사고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동안, 카메라는 실제 사고 피해를 입은 노점 상인으로 시점을 이동한다. “모두가 주인공을 볼 때 우리는 당신을 봅니다” 광고는 보험회사가 주목하는 주인공이 손해를 입은 상인을 비롯한 고객임을 암시하는 문구로 마무리된다. 본 광고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누군가의 ‘배경’쯤으로 자신을 여겨온 이들의 인정욕구를 충족시킴으로써 주목 받은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지난 10월 28일부터 11월 3일을 ‘서울청년주간’으로 지정하고, ‘시선이 만나다’라는 슬로건으로 정부와 청년, 청년과 청년 사이 교류의 장을 마련했다. 특히 주말 양일간 ‘서울청년학회’를 개최해, 청년 관점에서의 연구를 고민하는 신진 연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세대 간 불평등’과 ‘청년정치’ 등에 관한 의견을 공유했다. 서울시가 청년 활동을 지원하고자 마련한 ‘무중력지대’를 비롯해 서울 곳곳에서 오직 청년들을 위한 한 주를 마련했다는 점은, 현 사회가 청년 세대에게 얼마나 많은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지 보여준다. 수도의 핀조명이 비추는 자리에서 청년들의 숨통은 일부나마 트일 수 있었으리라.
  청년은 한국의 생애주기에서 통상적으로 가장 ‘주인공’이자, 조명받는 세대다. 자신을 ‘섬네일(Thum bnail)’ 한 장으로 편집해 전시하는 것에 익숙한 이들은 관성적으로 ‘광명(光名)’을 좇고 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다름 아닌 스타이며, 많은 이들이 스타가 되길 열망한다. 이쯤에서 ‘광명’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분명한 것은, 강렬한 핀조명은 필연적으로 언뜻 ‘무(無)의 세계’로 보이는 암막을 배경으로 한다는 것이다.
  〈한겨레〉는 지난 2일 토요판 커버스토리에서 “대학 안 간 젊은이”들이 청년 정책의 사각지대에 위치함을 지적했다. 기사에 따르면, 대학 밖 20대는 ‘대학생’ 혹은 ‘취업준비생’에 비해 국가 주도의 장학금과 대출, 주거 지원책 등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대학생’을 20대의 전체로 보고 비대학생은 잠재적인 “고급 인력”이 아니라고 간주하는, 차별적이고 계급적인 시선에 기반한 것이라 분석된다. 소수를 주인공으로 여기며, 일부에 제한된 스포트라이트가 놓치는 무수한 ‘배경’들이 존재함을 잊지 않아야 한다.
  한줄기의 광명(光明)에 혹자는 인생이 독무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신의 가장 빛나던 순간에도 누군가는 함께였다. 발 디딜 틈 없이 비좁은 땅에서 개인의 독무대가 존재할 수 있을까. 한정된 광명의 체제를 벗어나야만 곁에 선 이와 마주할 수 있다. 공동체 모두의 불안과 고독은 덜고 평안과 성취를 공유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한 이유다. 다만, 외로워 먼저 간 이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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