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금희 / 조선대 자유전공학부 조교수

일상의 땅 위에서 탈일상의 춤을 추다 ③ 책장 위의 카니발

종교적 의식에서 유래해 현대에 이르러 정교한 상업화 과정을 거치기까지, 축제는 고유의 폭발성과 오락성으로 민중들의 유희를 담보하면서도 지배세력을 풍자하고 권력관계를 전복하는 정치적인 기능을 잃지 않았다. 바로 어제까지 노동하던 곳에서 춤을 출 수 있게 하는 민중의 축제를 살펴보는 것은 틀림없이 매력적인 문화연구 분야다. 역사와 기원부터 역동적인 변모를 겪은 오늘날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축제를 접근해봄으로써 축제의 내포적 의미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축제의 역사와 현대적 의미 ② 퀴어, 다양성, 축제 ③ 책장 위의 카니발 ④ 광장과 카니발 정치

 
 

문학 속 전복과 치유의 공간
- 《해리포터: 마법사의 돌》을 중심으로 -

박금희 / 조선대 자유전공학부 조교수


  애쉴레 음벰베(A.Mbembe)는 《죽음의 정치(Necropolitics)》(2011)에서 상호배제와 살육의 인종주의, 파시스트, 민족주의 세력의 부활과 점증하는 불평등·군비확장·증오·테러 때문에 세계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음벰베는 그 원인으로 민주주의의 가치와 권리, 자유의 파괴를 지목하며 과거 식민주의를 구동했던 욕망·감정·정서·관계·폭력의 그 어두운 면, 즉 “밤의 몸(Nocturnal Body)”을 민주사회가 어떻게 포용할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위협하는 사회악들은 근본적으로 생사여탈권을 쥔, 가진 자들의 경제적 착취에서 기인한다. 이처럼 금력을 기반으로 한 오늘날의 신제국주의 정치 체제에 대한 유쾌한 전복을 꾀하는 소설 한 편을 읽는 것은 독자 개개인의 정신·심리적 회복은 물론이거니와 올바른 현실 인식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길잡이를 제공한다.


해리포터의 모험에 내포된 사회·경제적 불평등


  조앤. K. 롤링(J.Rowling)의 《해리 포터: 마법사의 돌(이하 마법사의 돌)》(1999)은 현대 자본주의사회의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그의 깊은 통찰의 결과물이다. 그는 주인공 ‘해리 포터’와 같은 사회적 약자가 금력에 압도된 사회와 가정에서 맞닥뜨리는 부조리를 강도 높게 비판한다. 롤링의 또 다른 비판대상은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현대 영국 사회의 배타주의다. 이는 해리를 괴롭히는 ‘사촌 두들리’의 괴롭힘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이러한 똘레랑스(Torerance)의 부재는 ‘페투니아 이모’와 ‘버논 이모부’가 마법능력을 물려받은 해리를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아동학대를 일삼는 장면으로 연출됐다. 해리의 성장 과정에서 잘 나타나듯, 사회·경제적인 불평등으로 약자들이 고통 받고 있는 책 속의 ‘프리벳가 4번지’는 현대 영국 사회를 상징한다. 인간을 지칭하는 ‘머글(Muggle)’의 세계가 지닌 부조리를 비판하기 위해 롤링은 경제력이 아닌 마법 능력에 의해 개인의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마법세계를 머글세계와 병치시킨다.
  롤링은 해리의 모험은 물론이고 텍스트 속 거의 모든 에피소드를 마치 놀이나 게임처럼 그려냄으로써 남녀노소 모두 시종일관 재미있게 책을 읽을 수 있게 했다. 특히 《마법사의 돌》에서 성장소설·판타지 소설·고딕소설 등 각종 문학 장르뿐만 아니라 놀이나 게임, 축제, 스포츠 중계방송 등 다양한 대중 장르를 패러디해 독자들의 흥미를 지속시킨다. 부엉이가 해리의 편지를 배달하는 과정의 몸싸움, 숨겨진 마법 능력을 발휘해 MVP가 되는 ‘퀴디치 게임’ 등은 대중적인 놀이와 게임들에 대한 패러디의 대표적인 예다. 이는 독자의 흥미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상처의 치유, 자신감의 회복,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 함양과 같은 정치·심리적 주제를 강조한다.


책장 위에서 펼쳐지는 카니발축제


  다양한 패러디와 내재된 비판의식으로 《마법사의 돌》은 카니발축제적인 텍스트로 발돋움한다. 카니발축제는 원래 민속축제의 하나였다. 종교억압이 심했던 중세 권력자들은 민중의 불만을 해소시키기 위해 일정 기간 동안 카니발축제를 허용했다. 이 축제에서는 여러 가지 대중놀이들이 행해졌는데, “뒈져라”라고 고함치며 상대방의 촛불을 끄기도 하고, ‘폭군 짜르’를 닮은 허수아비를 만들어 실컷 욕하며 침을 뱉다가 이를 불사르는 짜르 화형식을 하기도 했다. 특히 짜르에게서 왕관을 벗겨다가 민중의 왕에게 씌워주던 탈관·제관 놀이가 축제의 대표적인 놀이다. 러시아 문예 비평가 바흐친(M.Bakhtin)은 《라블레와 그의 세계(Rabelais and His World)》(1965)에서 이러한 카니발축제를 가리켜 모든 위계질서와 특권, 규범, 금기사항이 일시정지된 채 성장과 변화, 재생이 있는 연회라고 말한다. 연회에서는 역전과 반전, 상하와 전후로의 변화, 수많은 패러디와 희화화, 외설, 코믹한 제관과 탈관이 행해진다.
  다양하고 전복적인 카니발놀이를 주도한 사람은 바로 광대다. 이들은 우스꽝스런 차림과 과장된 몸짓·언어로 광장에 모여있는 민중이 카니발놀이에 참여하도록 이끌었다. 광대 이미지는 라블레(F.Rabelais)의 해학소설 등에서 패러디되면서 문학 영역에 유입됐다. 바흐친은 셰익스피어(W.Shakespeare)의 ‘팔스타프’나 17세기 민속축제에서 활동했던 ‘광대 기욤’, 디킨즈(C.Dickens)의 ‘픽윅’ 등이 장르와 영역을 넘나들면서 그들이 속한 사회의 특성들에 따라 변형을 거듭했다고 말했다. 《마법사의 돌》에 등장하는 해리의 짝패 ‘루베우스 해그리드’는 팔스타프와 픽윅의 계보를 잇는 광대의 한 변형이다. 그는 우스꽝스러운 외모와 태평한 성품을 가져 누구나 경계심을 풀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또한 먹고 마시는 자리에서 금기시되는 부조리들을 대화 주제로 삼아 이슈화하기도 한다.
  카니발광대로서 해그리드의 진면모는 어설프기 짝이 없는 엉터리 마술로 어린 해리를 괴롭혀온 더즐리 가족을 혼내주는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해리를 호그와트에 입학시키지 않으려고 엉뚱한 말을 늘어놓는 버논을 본 해그리드는 참다못해 큰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유아용 ‘핑크색 우산’을 높이 쳐들고 엉터리 주문을 외워 두들리에게 ‘돼지 꼬리’를 만든다. 이를 그저 우스운 해프닝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는 해그리드의 마술이 마법세계를 부정해온 더즐리 부부의 외아들을 대상으로 행해졌기 때문이다.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두들리를 보며 해리는 잠시 간의 위로와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마법사의 돌》이라는 카니발세계에서 해그리드는 머글·마법사·반인반수의 인물 모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이미지의 인물로 창조된다. 해그리드는 산지기로서 머글세계와 마법세계 중간에 위치한 오두막집에 살면서 절대권력자인 ‘볼드모트’에 대한 불만을 들어주며 함께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볼드모트 체제에 반하는 이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을 만류하기도 한다. 이렇듯 우스꽝스러운 외모와 달리 해그리드는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꿰뚫어 보는 현자나 다름없는 인물이다. 해그리드의 과격한 발언들이 누구보다도 정의감에 차 있는 어린 해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 잘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발화한다는 점에서 그의 교육자적 면모가 드러난다.
  아이들이 해그리드를 ‘하인’ ‘사냥터지기’ ‘야만인’이라고 놀리는 것을 보면, 그가 사회 속에서 하층민인 것을 유추할 수 있다. 해그리드는 신분 때문에 많은 고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를 통찰해 자유롭게 비판하고 있다. 특유의 어눌한 말투로 행하는 말이나 그가 벌이고 다니는 코믹해프닝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사회에 대한 전복으로 읽을 수 있다. 이는 해그리드가 하층민으로서 균형감각까지 갖춘 지도자 격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바흐친이 《대화적 상상력》(1975)에서 말하는 “가장 위대한 인물”에 해당하는 셈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카니발정신이 필요한 이유


  롤링은 거의 모든 문학 장르와 대중 장르를 패러디해 《마법사의 돌》을 허구적 카니발세계로, 해그리드를 카니발광대로 창조했다. 이를 통해 롤링의 소설들은 독자의 내면에 유쾌한 전복을 가능케 하는 카니발정신을 심어준다. 광대로서 해그리드는 소설 텍스트를 무대로 억울한 사람들을 위로해줌으로써 상처를 딛고 스스로 정의를 위해 싸울 수 있도록 해주고, 고립된 채 체제전복을 꿈꾸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성찰해 파괴적인 전쟁은 피하도록 이끈다.
  지구촌은 현재 가진 자의 세계와 갖지 못한 자의 세계로 양분돼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족주의와 인종주의, 진영주의 등 배타적인 이념들에 매몰돼 있는 정치 현실 또한 사회 분열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사회현실 속에서 갖지 못한 사람들이 경험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정신·심리적 불안은 그 어느 시대 못지않을 것으로 사료된다. 억압받던 민중들은 광장에 함께 모여 마음껏 먹고 마시며 그동안 쌓였던 불만을 스스로 해소했다. 이렇듯 극으로 치닫던 계층적 갈등을 봉합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해주는 카니발 정치심리학은 지금 여기에서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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