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원 / 국어국문학과 강사

 

노희경 작가론의 중간점검, 왜 아직도 노희경인가


김강원 / 국어국문학과 강사

  스타 작가는 ‘한국 TV 드라마’라는 장르에서 그 자체로 고유한 위상을 지니고 있다. 여타의 영상 서사물과 비교했을 때, 작가의 글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될 수 있다는 점은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한류를 계기로 한국 TV 드라마 산업에 자본이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자본이 TV 미디어의 시스템을 압도했다. 이로 인해 기존의 기획과 협업방식을 기반으로 한 ‘작가파워’는 점차 감소하는 추세로 접어들었다. 그 결과, 2010년 후반 무렵을 기점으로 작가들의 세대교체가 대폭 이뤄졌다.
  노희경은 작가의 필력에 의지하던 2000년대 이전의 TV 드라마 시대를 거쳐, 자본과 유착된 작금의 TV 드라마 시대에 이르기까지 살아남은 거의 유일한 작가라고 봐도 무방하다. 노희경이 〈거짓말〉(1998)과 〈꽃보다 아름다워〉(2004)를 발표하던 시절의 TV 드라마 작가들을 회상해 보라. 현재 그들의 작품 활동과 노희경의 작(作)을 비교해 본다면, 이는 쉽게 설득력을 가진다. 한류와 종편, 케이블 방송은 물론 웹드라마에 이르기까지 플랫폼 환경이 급속도로 변화했고 그 변화의 핵심 기저로 콘텐츠 산업이 공고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시대에 노희경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강성애의 논문은 이러한 의문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다.
  강성애는 해답을 찾기 위해 노희경의 후기작이라 할 수 있는 최근의 작품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물론 이 논문은 ‘후기 드라마’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아직 왕성한 활동을 하는 작가이기에 적절한 표현인지 의문을 남긴다. 필자 역시 〈노희경의 TV 드라마에 나타난 모성 담론: 모성을 통한 가족 연대 의식을 중심으로〉(2006)라는 석사 논문을 통해 노희경의 작품들을 연구한 바 있다. 강성애는 해당 논문 외에도 노희경에 대한 일련의 연구를 전반기 작품의 결과물로 보며, 최근의 작품들은 세계관이나 작법의 면에서 변화를 보인다고 주장한다.
  강성애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 있어 보인다. 물론 넓게 본다면 노희경은 초기작부터 유지해온 공동체에 대한 지향을 이어오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그 방식이 ‘그래도 가족’을 기반했던 것에서 한결 자유로워진 모습이다. 강성애는 이를 “타자지향성”과 “공동체 의식”으로 명명하고 있다. 문제는 본 논문에서 명명하는 ‘타자’나 ‘공동체’에 대한 개념이 매우 소박한 방식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타자’나 ‘공동체’에 대한 개념은 상식의 측면을 넘어 다양한 영역에서 소환되고 있으며, 개인화가 심화될수록 이러한 개념에 대한 요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가 결국 혼자 사는 청춘들이 같이 어울리는 그림을 지향하는 포맷으로 변화하듯이, 사회의 소외와 고독의 현실이 심화될수록 드라마는 ‘같이’의 삶을 더 강하게 욕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막연히 이론가들의 영역에서 ‘공동체’나 ‘타자지향’이라는 표피적 설명을 작품에 적용한다면, 그 해석은 선험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오히려 이 논문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절대적 내재성’을 〈괜찮아, 사랑이야〉의 ‘재열’ 캐릭터나 〈굿바이 솔로〉의 ‘영숙’에게 적용한 부분이다. 또한 아감벤(G.Agamben)의 ‘벌거벗은 생명’ 이론에 근거한 분석들 역시 강성애 특유의 재치있는 시선으로 풀어낸다. 아쉬운 점은 해당 개념들을 보다 심층적으로 적용시키지 못하고 언급하는 정도로 대부분 넘기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개념들을 전면에 내세워 이를 중심으로 논문의 흐름을 끌고 나갔다면, 논문만의 독자적인 시선을 한층 선명하게 확보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작품들을 소재 중심으로 묶어 논의하다 보니, 챕터 안에서 작품들이 지나치게 혼재돼 논문의 골자를 약화시키기 때문에 더욱 명료한 논점에 따라 정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질환을 가진 주인공들의 사랑을 이야기하며, 노인들의 삶을 노욕(老慾)으로 모욕하지 않고 담담히 그려내는 노희경의 후기작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은 중요하다. 때문에 시기적으로 분명한 변곡점을 보이는 작가론의 측면에서 이 논문의 가치는 매우 유의미하다. 방송국과 경찰서에서 연애하는 주인공을 넘어 삶의 현장에서 사랑하고 고민하고 부딪히는 인물들이 재현되는 작품들은 ‘일상성’이라는 TV의 매체성을 담보해야만 한다. 이것이 TV 드라마 특유의 드라마투르기(Dramaturgy)이자 노희경이 아직도 유효한 ‘TV/드라마/작가’인 이유다.
  강성애의 주장처럼, 노희경은 드라마 작가로서 개인사에 거리를 두고 극적 인물과 공간을 새로이 구축해나가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이는 작가로서의 성장일 뿐만 아니라, 연륜이 쌓인 작가가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효한 의미를 지닌다. 앞으로도 노희경의 드라마를 보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지속적으로 요구될 것이다. 강성애의 노희경 작가론은 최종적 결과물이 아닌 중간점검인 동시에 이후 작가와 작품을 해석하는 일종의 방향키로서 그 의미를 충분히 획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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