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19.10.1 화 22:53
기획학술
[중앙아카데미아] '우리가 사는 세상'의 연대 가능성강성애 / 국어국문학과 박사
장소정 편집위원  |  sojeong2468@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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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4호]
승인 2019.10.01  22: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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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카데미아: 『노희경 TV 드라마에 나타난 타자지향성과 공동체 의식 연구』 강성애 著 (2019, 국어국문학과 박사논문)

본 지면은 학위 논문을 통해 중앙대 대학원에서 어떤 연구 성과가 있는지 소개하고, 다양한 학과의 관점을 교류하고자 기획됐다. 이번호에서는 국어국문학과 강성애의 박사 논문 『노희경 TV 드라마에 나타난 타자지향성과 공동체 의식 연구』를 통해 노희경의 후기 TV 드라마가 현대 사회문제에 제공하는 시사점을 탐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출처:tvN 공식홈페이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연대 가능성


강성애 / 국어국문학과 박사

  지난 20년 동안 약 20여 개의 작품을 집필해온 노희경은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TV 드라마 작가 중 한 명이다. 초창기의 노희경은 불우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사실적으로 반영한 가족 이야기를 통해 삶에 대한 성찰을 꾀하여, 많은 시청자와 연구자들에게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200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노희경은 자신의 삶에서 타인의 삶으로 시선을 돌린다. 이러한 변화는 노희경의 드라마가 가족 범위를 넘어서 다른 공동체와 사회 전반을 그리도록 했다.

가족, 그 이상의 공동체

노희경 후기 드라마의 변화는 노희경 개인의 단독 변화가 아닌 문화 텍스트의 흐름과 함께 하고 있기에 더욱 주목을 요한다. 영화 분야의 경우, 2003년을 시작으로 새롭게 확장된 가족 개념 속에서 대안적 가족 공동체를 그리는 작품들이 등장했다. TV 드라마 또한 하숙집이나 특정 마을을 배경으로 공동체가 부각된 작품들이 나타났다. 가족을 넘어선 공동체가 중심이 되는 문화 콘텐츠들이 급증하고 있는 현상은 새로운 공동체를 향한 한국 사회의 욕망과 관심의 정도를 나타낸다.
공동체 의식이 드러난다고 해도 이는 후경에 머물 뿐, 결국 전경에 나타나는 것은 젊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인 TV 드라마들 속에서 노희경의 후기 드라마는 독보적인 위치를 점한다. 노희경은 다수의 등장인물이 거의 동등한 비중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다중(多重) 서사 방식’을 적극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공동체가 그 자체로 주인공이 되어 드라마의 전경에 위치하게 했다. 7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하는 〈굿바이 솔로〉(2006)를 시작으로 다수의 드라마에서 혈연으로 엮여 있지 않은 주인공들이 함께 일상생활을 공유하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이를 통해 인물들 간의 상호 관계나 이들이 공유하는 심적 현상이 극의 전면에 배치된다.
본 논문은 노희경의 2000년대 후반 이후의 작품 중 타자지향성과 공동체 의식을 전면화시킨 작품들이 한국 드라마 역사 내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밝히고자 했다. 이에 〈굿바이 솔로〉(2006), 〈괜찮아, 사랑이야〉(2014), 〈유행가가 되리〉(2005), 〈디어 마이 프렌즈(이하 디마프)〉(2016), 〈그들이 사는 세상〉(2008), 〈라이브〉(2018)를 지젝(S.Zizek)과 장 뤽 낭시(J.Nancy), 마사 누스바움(M.Nussbaum)의 이론을 호명하면서 분석했다.

‘부대끼는 삶’에 대한 보고

본 논문이 다루는 각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모두 마음의 상처를 갖고 있다. 몇몇 인물들에게는 그것이 정신 질환으로 발현되기도 하고, 혹은 돌발적인 행동이나 고집 등으로 나타난다. 지젝은 억압된 감정이 ‘증상’을 통해 나타난다고 말하며, 우리가 사랑해야 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웃)은 모두 사랑하기 힘든 증상을 가진 사람들이라 주장한다. 노희경 후기 드라마 주인공들이 가진 심리적 상처는 지젝이 말한 바와 같이 그들의 삶에 증상으로 나타났고, 증상은 그들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장애물로 작용해 사람들에게 소외당하고 배척받게 했다.
서사가 진행됨에 따라, 드라마의 주요 인물들은 자신에게 증상을 가져다준 사건과 그로 인해 생긴 마음의 상처를 용기 내어 다른 사람들에게 ‘고백’하는 시점에 이르게 된다. 고백이라는 행위를 통해 이들은 타자에게로 나아가고, 이로 인해 공동체가 형성된다. 이는 노희경 드라마에 나타난 타자지향성의 한 단면이다. 장 뤽 낭시는 스스로를 절대적이고 최고라고 생각하는 존재가 가진 ‘절대적 내재성’을 비판했다. 이때 유한성, 즉 인간이 가진 한계의 중요성에 관해 주장하며 ‘편위(Clinamen)’에 대해 설명했다. ‘편위’는 타자로 인해 정체성을 확립하거나 문제를 해결 받는 것을 의미하며, 타자에게 관심이 있거나 기울어져 있는 것을 포함한다. 즉 ‘타자’라는 존재를 통해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는 것이다. 노희경의 후기 드라마에서 낯선 타자였던 사람들끼리 공동체를 형성해나가는 데 있어, 인물이 가진 유한성과 한계가 핵심 동인으로 작용한다. 노희경은 한계를 가진 이들이 공동체로 들어가 문제를 해결 받으면서 비로소 온전해지는 과정을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

 

   
출처: tvN 공식홈페이지

함께 살아가는 치유의 공간

  노희경은 후기 드라마에서 상대방의 아픔을 보고 자신의 아픔에 직면하는 인물들을 그렸다. 의사는 환자를 보고 자신의 아픔을 발견하며, 경찰은 피해자를 보고 자신의 과거 상처를 떠올린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연민과 공감, 동정이 생겨나고 의사-환자의 구분과 경찰-피해자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노희경은 노인과 젊은이의 경계 역시 모호하게 그려내는데, 이와 같은 정체성의 불분명함은 인물이 고정된 특성에 매몰되지 않게끔 만든다. 이러한 인물들로 이뤄진 공동체 역시 절대적인 정체성에 머물지 않기에 절대적 내재성이 주는 폭력에서 벗어나 타인에게 열려있게 된다.
  루소(J.Rousseau)는 상대방이 처한 아픔이나 고통이 언제든지 나의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인간은 사회적 존재가 되며 이로써 공동체가 형성된다고 말한다. 누스바움은 루소의 시각에 동의하면서, 모든 인간에겐 잠재적 취약함이 있다고 보고 그중 하나로 감정을 들었다. 특히 상대방의 취약함을 볼 때 도울 수 있는 힘 역시 ‘연민’이라는 감정에서 나온다고 봤다. 노희경의 인물들은 누스바움이 강조했던 ‘연민’을 통해 상대방을 사랑하고 이해하며 살아간다. 〈괜찮아, 사랑이야〉의 셰어하우스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연민과 돌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이를 통해 해당 공간은 ‘치유의 공간’이 된다.
  정리하자면 노희경의 후기 드라마는 절대적 내재성에 함몰돼 있지 않고 타자에게 열려 있는 인물과 공동체를 통해 유한성을 가진 단수적 존재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연민이나 공감, 자유와 희망과 같은 감정을 중심으로 공동체 형성의 과정을 세밀하게 그리면서 타자와 성숙한 연대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타자에 대한 윤리적 태도를 중심으로 사건들을 배열하고 플롯을 구성한 노희경의 드라마는 사회 갈등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문화 텍스트라 할 수 있다.

해피엔딩이 만드는 사각지대

  동시에 노희경 후기 드라마들은 여러 한계점도 가진다. 노희경은 초창기에 소외된 자, 특히 가난한 자들에 주목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었고 이는 노희경이 가진 장점 중 하나였다. 그러나 후기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은 대부분 부유한 계층으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인물의 특징 변화로 인해 노희경은 자신이 가진 큰 미덕 하나를 잃게 됐다. 연설조의 교조주의적 태도가 종종 장황한 대사를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나 미적 결함을 보이는 점 또한 분명히 지적할 부분이다.
  커다란 갈등 구조를 피하면서 인간사를 쉽게 보려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도 문제라 볼 수 있다. 해피엔딩에 얽매이지 않으며 독자적인 노선을 걸어왔던 노희경이 후기 드라마에서는 사건을 성급하게 처리하면서 작위적인 해피엔딩을 그려냈다. 이와 같은 사건 처리 방식과 드라마의 엔딩 방식에서는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을 찾아보기 어렵다. 분명 전기 드라마와는 달리 작가 본인의 삶을 재료로 삼지 않고, 만들어낸 이야기를 담고 있어 드라마의 사회화가 진행된다는데 의의가 있다. 하지만 노희경이 세상을 방관자적 관찰자 시점으로 바라보고 있어 온전한 사회화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노희경은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작가다. 앞으로 노희경이 설교적인 태도를 버리고, 해피엔딩이라는 갈등 봉합 방식에 대한 유혹에서 벗어난다면 더욱 좋은 드라마들을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특히 다중 서사 방식을 통해 공동체 자체를 주제로 삼은 드라마들은 개인-집단 이기주의를 벗어나고 편견에서 자유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실마리를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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