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예륜 / 서울대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연구보조원

일상의 땅 위에서 탈일상의 춤을 추다 ② 퀴어, 다양성, 축제

종교적 의식에서 유래해 현대에 이르러 정교한 상업화 과정을 거치기까지, 축제는 고유의 폭발성과 오락성으로 민중들의 유희를 담보하면서도 지배세력을 풍자하고 권력관계를 전복하는 정치적인 기능을 잃지 않았다. 바로 어제까지 노동하던 곳에서 춤을 출 수 있게 하는 민중의 축제를 살펴보는 것은 틀림없이 매력적인 문화연구 분야다. 역사와 기원부터 역동적인 변모를 겪은 오늘날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축제를 접근해봄으로써 축제의 내포적 의미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축제의 역사와 현대적 의미 ② 퀴어, 다양성, 축제 ③ 책장 위의 카니발 ④ 광장과 카니발 정치

 

 
 


퀴어 축제의 공간과 감정, 그리고 지방 도시


홍예륜 / 서울대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연구보조원

 

  퀴어 축제는 주류 사회를 도발하고 기존 체제에 저항한다는 점에서 다른 축제들과 사뭇 다르다. 퀴어 축제는 ‘퀴어’라는 비가시화된 존재를 공적으로 드러내는 공간이자 하나의 운동 전략이다. 몇 시간, 길어봐야 며칠 정도 지속되는 축제를 위해 퀴어와 앨라이(Ally)들은 ‘굳이’ 혼잡한 도심지의 도로와 공원, 광장으로 나온다. 가시화 전략의 한 형태로서 축제는 두 가지 효과를 지닌다. 먼저 축제가 가진 유희성이 이벤트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춘다. 퀴어 축제는 통상 부스 운영과 공연, 퍼레이드로 구성되며, 축제의 정치적 메시지는 굿즈와 공연으로 포장돼 참가자들과 외부에서 이를 관찰하는 대중들에게 전달된다. 다음으로 퀴어 축제는 공적으로 다뤄지는 것이 터부시되던 ‘퀴어함’을 공공 공간에 직접 침투해 전시하고 실천함으로써,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 사이의 경계를 교란한다. 동성 연인 간의 입맞춤이나 화려한 차림의 드랙(Drag)은 “동성애는 집에서 해라”라고 외치는 혐오 집회자들과 이들을 방조하는 이성애 중심적, 성별 이분법적 사회에 대한 도전이 된다.
  한국의 퀴어 축제가 각 도시의 가장 대표적인 장소를 주 무대로 선정하는 이유는 퀴어 축제의 파급력 때문이다. 축제의 가시화 전략을 통해 대중들의 이목을 끌고 이슈를 낳으며, 성 소수자의 존재와 그들의 인권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도록 만든다. 성별 이분법과 이성애 중심주의가 강력하게 작동하는 한국에서는 성 소수자의 인권이 정치인 또는 공직자에 대한 사상검증 소재로 소비된다. 이런 사회는 퀴어의 커밍아웃을 막을 뿐만 아니라, 비퀴어로 하여금 자신의 주변에 퀴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기 어렵게 만든다. 축제는 유희적인 방식으로 침묵과 무관심에 균열을 만들어 낸다.
퀴어 축제는 그 자신이 지닌 사회 운동으로서의 성격 때문에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일반적으로 축제는 놀이에 기반한 흥겨운 이벤트지만, 퀴어 축제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훨씬 더 복합적이며 역설적이다. 자신의 정체성과 지향성을 온전히 드러낸 축제 참가자들은 인정과 지지를 받음으로써 강한 유대감과 해방의 희열을 공유한다. 한편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보호해주지 않는 사회와 국가에 스스로 변화를 요구하면서 울분을 토하기도 한다. 뒤섞인 감정은 자신들의 존재를 반대하고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더 극적으로 표출된다. 퀴어 축제가 개최되는 공간 역시 역설적이다. 퀴어 축제의 공간은 평소 허용되지 않은 실천에 일시적인 해방을 선사하지만, 동시에 실체를 가진 혐오와 직접 대면하도록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퀴어 축제날, 광장과 도로를 한껏 메운 사람들이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울고 웃는 것은 고립감의 해소와 연대감, 그리고 나와 우리의 행동으로 인해 변화할 미래에 대한 기대 때문일 것이다.

주변부의 새로운 반격

  2017년 이후 한국의 퀴어 운동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지점 중 하나는 지방 도시에 퀴어 축제가 확산된 것이다. 2000년 서울에서 한국 최초로 퀴어 축제가 시작된 이후, 서울 밖에서는 2009년에 대구가 첫걸음을 뗐다. 한국에서 정치·문화적으로 가장 보수적인 도시로 손꼽히는 대구를 시작으로 2017년 제주와 부산이, 그리고 2018년에는 전주와 인천, 광주가 합류했다. 전국 각 도시의 퀴어 축제 조직위를 연결하는 ‘전국퀴어문화축제 연대체’가 같은 해에 출범했으며, 서울과 대구를 오가던 퀴어 버스는 봄부터 가을까지 매월 전국을 달린다. 이에 따라 서울퀴어문화축제는 19년간 사용해온 ‘퀴어문화축제(Korean Queer Cultural Festival)’라는 명칭을 ‘서울퀴어문화축제(Seoul Queer Cultural Festival)’로 바꿨다.
  퀴어 이론가인 할버스탐(J.Halberstam)과 헤링(S.Herring)은 퀴어 담론의 ‘대도시 규범성(Metronormativity)’을 지적한다. 대도시 규범성은 성 소수자들이 대도시에서의 삶을 선망하고 고향으로부터 대도시로 이주를 감행하는 현상을 일종의 ‘규범성’으로 설명하는 개념이다. 이 현상은 대도시가 사회적 소수자에게 제공하는 포용력과 익명성에 대한 기대로 인해 나타난다. 규범성은 ‘도시-촌락(Urban-Rural)’ 이분법에 기반을 두고 있다. 촌락은 작은 인구 규모와 동질성으로 인해 다양성이 인정받기 어렵고, 전통적인 이성애-정상 가족 질서가 강하게 작동하는 곳이다. 이에 지리적·섹슈얼리티적으로 이중 차별을 받는 촌락 지역의 퀴어들은 상대적으로 익명성이 보장되며, 퀴어 공동체와 소비문화가 발달한 대도시로의 이주를 꿈꾼다. 대도시가 흡수한 성 소수자 집단은 퀴어 운동의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지방의 중소도시 또는 시골 지역에서는 퀴어와 이들의 인권이 공론화되는 것은 대도시에 비해 더 어려워진다.
  서울을 제외한 여타 지역은 우리의 대화와 생각, 상상 속에서 자주 지워진다. 문화를 향유하고 교육을 받고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서 서울에 ‘올라가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 된다. 서울에서 열리는 퀴어 축제가 ‘퀴어문화축제’라는 이름을 오랜 기간 점했던 것은 서울이 우리의 의식 속에서 점하고 있는 확고한 위치성 때문이다. 지방 도시에서 새로운 움직임의 가능성을 꿈꾸더라도, 운동을 끌어낼 자원의 부족함과 좁은 지역사회에서의 아웃팅 위험으로 인해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돌아서는 경우가 많다. 지방 도시에서 퀴어임을 드러내고 사는 것은 아는 이의 얼굴을 한 혐오를 마주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방의 척박한 환경은 지방의 퀴어들이 서울을 꿈꾸도록 만들었지만, 동시에 떠나지 않는 사람들에게 퀴어 축제를 비롯한 새로운 운동 욕구를 가지게 했다. 이들은 지역 퀴어 축제의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연대의 범위를 퀴어 정치 밖으로 넓혀 지역 주민으로서 가지고 있는 개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한다. 지방 도시의 퀴어 축제에는 각 정당의 지부와 노동·장애·여성·이주민 등 넓은 영역에 걸친 지역 시민단체들이 축제 조직위와 함께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를 통해 퀴어 축제는 지역 시민사회의 커다란 행사이자 결집의 장이 된다.

정치 참여의 플랫폼으로서 퀴어 축제

  지방 도시의 퀴어 축제는 해당 도시에서 퀴어로 상징되는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공론화한다. 퀴어 축제가 출범하기 이전에, 지방 도시에서는 성 소수자 인권이 정치적 의제로 확장된 사례를 찾기 힘들었다. ‘게이바’로 대표되는 성인 남성 동성애자 중심의 커뮤니티나 지역 기반 단체 등이 활동했던 때도 있었으나 확장성이나 지속성이 부족했다. 반면 지방 도시에서 퀴어 축제는 퀴어 인권을 의제화하고 이를 이끌어나갈 새로운 세력을 재생산하는 인큐베이터로 기능한다.
  지방 도시의 퀴어 축제가 갖는 또 다른 의의는 축제가 공공 영역의 행위자, 즉 지방 정부· 경찰·법원을 퀴어 정치의 장으로 직접 호출하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해외사례를 살펴보면, 오키나와처럼 지방 정부가 지지 연설을 하거나 삿포로나 호주의 여러 도시처럼 재정적 지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보수적인 종교 세력의 영향력으로 인해 한국에서는 국가 또는 지방 정부로부터 직접적인 지원과 지지를 이끌어내기 힘들다. 그럼에도 축제와 집회에 필요한 공간 사용권을 공공 영역으로부터 승인받아야 한다는 제도 때문에, 지방 정부와 경찰은 퀴어 축제 개최 과정에 필연적으로 개입하게 된다. 공공 영역과의 협상 및 조정 과정은 퀴어들에게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 공공과 직접 상대하는 경험, 나아가 공간을 확보함으로써 협상에서 승리하는 경험, 제도적으로 보호받는 경험을 준다.
  퀴어 축제의 지역적 확산은 퀴어 정치의 주요한 주체로 고려되지 않았던 지방 도시의 성 소수자 및 청소년과 지역 시민단체·지방 정부·법원·경찰을 퀴어 축제라는 정치적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해 마련된 테이블에 앉혔다. 이는 근 몇 년간 여러 도시에서 퀴어 축제를 무사히 개최하는 것으로 소정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여전히 퀴어들에게 보장돼야 할 공간은 위협받고 있다. 2019년 올해, 해운대구청은 끝내 부산퀴어문화축제를 위한 구남로 광장 사용을 불허했다. 이는 많은 이들에게 좌절감을 심어주는 사건이었지만 퀴어와 다양성, 공공성이라는 주제를 논의할 기회가 될 것이다. 퀴어들이 만든 ‘균열’은 한국 사회에 크고 작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 긍정적인 변화가 지속돼 퀴어 축제에 더 이상의 슬픔과 분노는 없길, 그리하여 모든 이들이 축제를 온전히 즐길 수 있길 바란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