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19.11.9 토 14:19
특집
[노동] 노동의 새로운 시계를 만들려면강수돌 /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교수
한재영 편집위원  |  yodream9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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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호]
승인 2019.09.03  23: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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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일하는 당신에게 ① 장시간 노동체제의 기원과 역사

한국 사회의 노동자는 OECD 평균보다 약 35일 더 일한다. 하지만 노동의 대가인 노동소득분배율은 평균치에 한참 못 미친다. 이는 한국이 전형적인 ‘저임금-장시간’ 노동사회임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오래 일할 것을 강요받는가. 본 지면에서는 한국 사회의 ‘장시간 노동체제’를 다각도로 분석해 우리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본다. 나아가 장시간 노동체제라는 신화가 만들어낸 예속상태를 해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장시간 노동체제의 기원과 역사 ② 우리가 시간을 견디는 동안 ③ 노동시간 단축과 그 너머의 것들 ④ 노동의 시간 민주화 상상하기

 

   
 
노동의 새로운 시계를 만들려면

강수돌 /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교수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이 우리 삶의 전반을 규정짓는다. 과연 한국의 노동자들은 어떤 노동 조건 하에 살아가고 있는가. 한국은 OECD 회원국 가운데 멕시코 다음으로 가장 긴 노동시간을 자랑한다. 우리는 잘살기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일하기 위해 사는 셈이다. 왜 우리는 장시간 노동을 당연시하며 살게 됐는가. 장시간 노동체제로부터의 해방을 꾀하려면 우선 그 기원과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선 후기 농촌 사회에서의 노동은 오늘날의 노동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두레’나 ‘품앗이’로 상징되는 협동 노동이 일상인 데 반해 노동력의 상품화는 매우 낯선 일이었다. 노동시간 역시 동녘이 훤해지면 일을 시작하고, 어둑해지면 일을 그만뒀다. 노동하면서도 노래를 부르며 함께 웃기도 했다. 이런 조선 후기 노동의 모습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들에게 ‘게으른 코리언’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한국 사회가 격동의 구조변동을 겪은 후, ‘게으른 코리언’인 노동자들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1960년대의 각종 문헌에 등장하는 ‘부지런한 코리언’은 당시 한국의 ‘저임금-장시간-무권리’ 노동을 지적한다. 1970년 11월 전태일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며 자기 몸을 불살랐다. 이후로도 한국 사회는 수많은 전태일을 만들어냈다. 시간이 흘러 1987년 여름, 한국의 노동자들은 거리로 나와 ‘노동자대투쟁’을 외쳤고, 이후 1995년 11월 오늘의 민주노총이 탄생했다. 그리고 1997년 말, ‘민주노조운동’이라는 변수에 대한 국내외 자본의 대응 전략인 ‘IMF 체제’가 시작됐다.


자본의 재구조화 전략과 노동의 분배 투쟁

  IMF 이후, 오늘날 우리 사회는 ‘신자유주의 노동체제’ 하에 놓여있다. 신자유주의 노동체제는 대외적으로 개방화를, 대내적으로 탈규제화·민영화·유연화를 추구하는 전략으로써 자본 증식을 위한 무한 자유를 긍정한다. 문제는 이러한 노동체제에 대항하는 민주노조의 진영조차 자본의 독재 자체를 근절하기보다 ‘국익’이나 ‘경제 위기’ 프레임에 갇힌 채 ‘분배’의 몫인 고용·임금을 늘리는 데 주력해왔다는 사실이다. 그 기저에는 자신의 삶과 정체성을 노동과 ‘동일시’하는 집단 심리가 깔려있다.
  또한 지금껏 우리 사회는 노동대중에게 경제 활성화라는 명목으로 끊임없는 희생을 요구해왔으며, 나아가 노동대중들 역시 인간적인 노동조건을 보장받는다면 그들 스스로 경제를 위해 노동하기를 자처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희생을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일자리’와 ‘임금’만큼은 결코 양보할 수 없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노동자는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 노동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자리를 제공하는 자본 자체를 거부할 수 없게 되고, 오히려 자본에게 일자리를 구걸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2017년 출범한 현 정부는 노동시간 단축 작업에 주력했고, 2018년 7월부터 ‘주 40시간제’를 실시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언론이 이를 가리켜 통상적으로 ‘주 52시간’이라고 말하듯, 한국 사회에서 12시간 초과된 근로시간은 큰 일이 아니다. 문제는 실제 노동자들에게도 규정 근로시간 외의 초과된 노동시간이 결코 낯설지 않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자본이 주는 일자리가 없는 삶을 한 번이라도 꿈꿀 수 있을까.


‘근면 신화’ 이면의 집단 트라우마

  오늘날 우리가 장시간 노동체제에 순응하는 기저엔 개인적이면서도 동시에 집단적인 두려움이 깔려있다. 경제 위기와 망국에 대한 두려움, 절대적인 입시의 존재와 그로부터 실패해 탈락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사회가 정한 테두리 바깥으로 밀려나 배제당하는 두려움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이러한 두려움은 ‘집단 트라우마’에서 기인한다. 해당 트라우마의 기원은 일제의 침략에서 비롯된 약소국의 서러움, 한국전쟁 이후의 미군정, 그 후 시작된 개발 독재 등 폭력적 근대화 과정 속에 있다. 또한 이에 저항하던 대다수의 민중조차 거듭된 패배와 좌절 끝에 두려움에 떨며 생존전략의 일환으로 폭력 앞에 순종하는 법을 배웠다. 더불어 사회화 과정이란, 결국 자본-물신성의 체제 아래 적절히 ‘적응’해 나가는 과정이나 다름없다.
  그 결과 오늘날의 우리는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쓰러진 사람에게마저 ‘정말 성실했던 분’이라며 칭찬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처럼 폭력적 근대화 및 사회화 과정에서 근면 성실 신화가 한국 사회의 바람직한 에토스(Ethos)로 뿌리내리게 된 것이다.


장시간 노동체제로부터의 탈출구

  장시간 노동체제로부터의 해방은 ‘노동시간 단축’의 제도적 실천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물론 견고한 사회복지 체제를 갖춘다면, 우리의 집단 두려움이 얼마간 해소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매우 일시적이다. 따라서 집단 트라우마 및 두려움의 근원적 해소를 위해서는 현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안젤름 야페(A.Jappe)가 《The Writing on the Wall》(2017)에서 강조했듯 ‘노동-상품-화폐 물신주의’를 벗어난 삶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구성할 것인지, 그 대안들에 대해서도 사회 구성원 모두가 끊임없이 소통해 나가야 한다.
한 사회의 유행어는 사회구성원들이 결여한 것과 원하는 바를 동시에 말해준다. 최근 유행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과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한국 사회의 대다수가 일과 삶의 균형이 무너진 채로 살아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이를 추구한다 해도,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오지 않을 것이다. 결국 워라밸과 소확행 모두 자본의 자기증식 메커니즘에 불과한 노동-상품-화폐 물신성에 갇힌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를 가리켜 곧잘 ‘역동적’이라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요동치는 물결을 맞이했다. 문제는 역동의 반작용이다. 매해 높아지는 자살률, 자정을 잃은 사회, 고공농성을 해야만 들리는 부당함 등 한국 사회의 고통 역시 역동적이다. 그렇기에 우리를 역동의 반작용으로 밀어내는 이 굴레들로부터의 해방을 상상하고, 실천해야만 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 사회의 비정상적인 노동 시계를 멈추고, 진정한 의미의 ‘역동적’인 시간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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