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연 / 숭실대 인문과학연구소 조교수

일상의 땅 위에서 탈일상의 춤을 추다 ① 축제의 역사와 현대적 의미

종교적 의식에서 유래해 현대에 이르러 정교한 상업화 과정을 거치기까지, 축제는 고유의 폭발성과 오락성으로 민중들의 유희를 담보하면서도 지배세력을 풍자하고 권력관계를 전복하는 정치적인 기능을 잃지 않았다. 바로 어제까지 노동하던 곳에서 춤을 출 수 있게 하는 민중의 축제를 살펴보는 것은 틀림없이 매력적인 문화연구 분야다. 역사와 기원부터 역동적인 변모를 겪은 오늘날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축제를 접근해봄으로써 축제의 내포적 의미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축제의 역사와 현대적 의미 ② 퀴어, 다양성, 축제 ③ 책장 위의 카니발 ④ 광장과 카니발 정치

 

 
 
카니발의 유래와 현대적 의미
- 21세기 호모 루덴스의 축제를 생각하다


김태연 / 숭실대 인문과학연구소 조교수


  현대인들에게 축제란 무엇인가. 우리는 이미 일상에서 많은 축제를 경험한다. 문화예술과 관련된 축제, 화려한 봄의 꽃이나 가을의 단풍을 즐기는 자연 속 축제, 각 지역의 전통과 특징을 즐길 수 있는 축제나 한강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불꽃놀이 축제까지, 다양한 축제가 우리 주변에서 펼쳐진다. 이러한 축제들은 어떤 종교적 의미도 담지 않은 채 많은 사람이 함께 누리는 유희의 장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축(祝)과 제(祭)라는 두 한자가 결합한 형태인 ‘축제’라는 단어는, 한국 근대시기에 일본으로부터 유입돼 사용되기 시작했다. ‘축하하는 제사’라는 직역을 통해 우리는 축제와 종교의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다. 축제와 등가적 의미로 사용되는 스페인어·프랑스어·영어 등의 ‘페스티벌(Festival)’은 라틴어 형용사인 ‘Festus(경축하는)’와 ‘Dies(날)’가 결합된 ‘경축하는 날(Dies Festus)’에서 유래한다. 이처럼 서양 전통에서도 본래 축제는 종교적 의식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었다.


금지와 자유가 공존하는 환희의 장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기독교 문화권의 축제인 ‘카니발(Carnival)’은, 과거의 종교전통으로부터 비롯된 축제가 현대까지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단적인 예다. 성대하고 화려하게 펼쳐지는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과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카니발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문화산업으로서 적극적으로 육성된 축제의 전형이기도 하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어느 문화권이든 가면을 쓴 채 유희를 즐기는 전통은 흔히 발견된다. 먼 과거 속 카니발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교적 관습들과의 혼합이 존재하리라 추측되지만, 이와 관련된 가설은 분분하다. 현재의 카니발에서 펼쳐지는 일반적인 풍습은 부활절과 사순절 이전에 이뤄진 기독교의 카니발 전통에서 계승된다. ‘카니발’이라는 명칭은 라틴어의 ‘고기를 치워버린다(Carislevamen 등)’는 뜻에서 유래했다. 카니발이 ‘사육제(謝肉祭)’라고 불리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금육(禁肉)에서 비롯된 용어이기에, 카니발과 기독교 문화권 내 금욕전통 간의 연관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기독교인들이 금욕(禁慾)을 위해 먹는 것을 제한하는 시기가 예수의 십자가 죽음 이후 부활절 이전까지의 사순절 기간이기 때문이다.
  카니발에 해당하는 단어 중 독일어권에서 널리 쓰이는 ‘파스트나흐트(Fastnacht)’란 표현이 있다. ‘금식 (시작) 전날 밤’이라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지만, 이는 독일 남부 바이에른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파슁(Fasching)’이라는 단어와 더 긴밀한 관계가 있다. 파슁은 본래 ‘Vaschang, Vastschanc’라는 말에서 비롯됐는데, 이는 ‘금식 기간에 마시는 음료를 (컵에) 따른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금식 기간에 마시는 음료란 도수 높은 맥주를 말한다. 사순절 기간 동안 수도원의 승려들은 ‘파스트비어(Fastbier)’ ‘슈타크비어(Starkbier)’ 혹은 ‘도펠보크(Doppelbock)’라 불리던 맥주를 마시며 체력을 비축해 노동력을 보탰다. 동양의 차(茶) 전통과는 달리 서양에서는 맥주 전통이 유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식 기간을 견디기 위해 독한 술을 제조해 마셨다는 사실은, 과거보다 더 엄격하게 성(聖)과 속(俗)을 이분화하고자 하는 현대의 종교적 관점에서 볼 때 흥미롭고도 낯설게 느껴지는 지점이다.
  반복되는 일상의 틀을 탈피한 채 자유로운 풍자와 해학, 견고한 사회구조를 과감하게 전복시키는 변장과 퍼포먼스가 펼쳐지는 카니발이라는 축제가 금육·금식 전통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을 억제하는 금식을 통해 예수의 수난에 동참하겠다는 신앙적 실천이 시작되기 바로 전, 과장과 불경건함 그리고 기존 질서에서 비정상으로 간주되던 행동이 허락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카니발이라는 축제의 기쁨과 환희는 신의 고통과 수난에의 동참이라는 정반대의 지점과 맞닿아 있다. 또한 육신의 즐거움을 제한해야 하는 사순절 기간의 시작 직전에 펼쳐지는 카니발의 시기야말로 사람들로 하여금 주어진 축제의 시간을 최선을 다해 즐기도록 이끄는 동인이었을 것이다. 카니발의 매혹적인 지점은 바로 이 같은 역설에서 비롯된다.


일상과 탈일상의 문턱에서

  카니발은 로마 가톨릭의 종교적 전통이 비교적 강하게 남아있는 브라질이나 이탈리아 같은 국가에서 훨씬 성대하게 열린다. 독일의 경우에도 구교 전통이 우세한 쾰른과 마인츠의 카니발 축제가 가장 화려하고 유명하다. 하지만 현대의 기독교 문화권에서 카니발은 구교나 신교 등의 구분 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대중적 축제다. 세속화된 현대 사회에서 카니발의 종교적 의미가 이미 퇴색됐다면, 지금까지도 여전히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함께 모여 벌이는 카니발의 현대적 의미는 무엇일까.
  인류학자 빅터 터너(V.Turner)가 아놀드 반 헤넵(A.Gennep)의 ‘리미널리티(Liminali-ty)’라는 개념을 재발견해 발전시킨 통찰 속에서, 일상에서 탈일상으로 넘어가는 카니발의 경계성에 대한 현대적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문지방, 문턱이라는 뜻의 라틴어 ‘리멘(Limen)’에서 비롯된 개념인 리미널리티는 이전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 이쪽도 저쪽도 아닌 어중간한 문지방 단계인 ‘리멘 상태’를 뜻한다. 터너는 반 헤넵이 리멘 상태를 종교적·제의적 단계인 통과의례로 설명한데서 나아가 ‘리미노이드(Liminoid)’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리미널 현상이 부족사회의 종교적·제의적 진지함과 개인의 선택보다는 의무감을 반영한다면, 리미노이드 현상은 세속화된 현대사회의 유희적 성격을 반영한다. 여기서는 어떠한 의무도 없으며 참여자는 오직 자신의 선택을 따른다. 현대의 카니발이야말로 전형적인 리미노이드의 현상이라 할 수 있으며, 이 때 일시적으로 등장하는 카니발의 공동체를 터너가 말한 ‘커뮤니타스(Communitas)’로 간주할 수 있다. 공고한 기존 구조에 변증법적으로 대립되는 반구조(Anti-structure)로서의 커뮤니타스는, 이도 저도 아닌 문지방 상태에서 존재하는 동질성과 자유·평등·형제애의 공동체다.
  카니발의 참여자들은 일상의 관습과 질서를 탈피한 모습으로 변장한다. 공고한 사회적 분화와 위계질서가 무너져 기존의 틀로는 규격화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장이 펼쳐진다. 탈일상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속한 세상을 마음껏 풍자하고 조롱할 수 있다. 일상의 ‘구조’가 전복된 ‘반구조’의 시공간이 카니발이라는 축제를 통해 열리는 것이다. 모두 자발적으로 카니발을 준비하는 참여자들은 긴 행렬 속에서 흥겨운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거나, 행렬에 섞여 ‘함께 함’ 그 자체를 즐기며 조화롭게 행진해간다. 카니발에는 음악과 춤은 물론이고 희극적 퍼포먼스와 가면 및 가장 행렬, 풍부한 음식 등 다양한 축제의 양상이 총체적으로 집약돼 있다. 쾰른과 마인츠의 카니발은 정치 풍자적 축제로도 유명하다. 독일의 정치인뿐 아니라, 세계의 유명한 정치인들을 우스꽝스럽고 기괴한 모습으로 거침없이 풍자해 행렬 무대에 오른다. 각자가 원한 모습으로 변신한 참여자들이 리미노이드의 순간만큼은 편견 없이 평등한 관계를 이루는 커뮤니타스를 출현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본래 ‘유희하는 인간’이다

  축제는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 개인으로 구성된 사회 모두의 잔치다. 여기에는 일상을 탈피해 새로운 질서를 함께 만들어내고 경험하는 기쁨과 나눔이 있다. 하늘과 땅이 함께 만나는 인간의 문화는 축제를 통해 새로운 하늘과 땅의 관계로 재편되고 재현되며 공유된다. 카니발은 단순한 의례적 반복을 넘어선 인간 문화의 창조적 가능성이며, 일상을 넘어서는 개인과 사회의 새로운 상상력을 추동하는 시간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자유롭고 창조적인 축제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여유가 턱없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보게 된다. 그리고 상업적이거나 특정 종교에 한정된 수준의 축제를 넘어, 우리 모두가 커뮤니타스의 체험을 함께 일궈낼 새로운 축제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없는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현재의 한국 사회는 어떤 방식으로 축제의 역동성과 가능성을 보존하고 체현할 것인가. 과거에서 미래의 길을 창조적으로 새롭게 여는 것이야말로 본래적으로 놀이하는 우리들, ‘호모 루덴스(Homo Ludens)’의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