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옥선 / 동서대 영어학과 교수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여성정치 ① 여성, 정치를 다시 읽다

그리스·로마시대부터 이어져 온 선거와 투표는 긴 역사를 지녔지만, 그 시간 속에서 여성은 ‘지워진 존재’였다. 자유와 평등을 노래하던 근대 시민혁명의 시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성에게도 시민의 자격인 참정권이 보장된 것은,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본 지면에서는 정치적 존재로서의 여성을 가능하게 했던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가봄으로써, 여성정치의 지형도를 살피고 여성정치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고자 한다. ‘강옥선, <역사적 관점에서 본 여성의 시민권>, 《동서비교문학저널》 2019년 여름호’를 바탕으로 쓰였음을 밝혀둠.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여성, 정치를 다시 읽다 ② 한국정치의 여성주의 테제 ③ 정치적 존재로서의 여성 ④ 정체성 정치, 그 이상으로

 

 
 
오래된 부재의 역사, 여성 시민권

강옥선 / 동서대 영어학과 교수


  현대 서구 문명의 뿌리인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는 민주 정치 공동체였다. 아테네에서 인류 최초의 투표가 이뤄졌다는 점과 시민 광장 ‘아고라(Agora)’의 존재가 이를 방증한다. 시민이 투표로 국가의 주요한 정책을 결정하고, 토론이 끝없이 이어지던 아고라의 도시인 아테네. 이처럼 아테네는 민주적인 정치 공간이었지만, 이곳에서도 배제된 이들이 존재했다. 바로 여성이다. 아테네의 여성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었다. 이로부터 2천 년이 지난 18세기 유럽에서도 여전히 여성의 시민권은 보장되지 않았다.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세계를 주창하던 계몽의 시대로 이행했지만, 재산권과 투표권을 가진 백인 남성만이 시민으로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후 역사의 긴 시간이 흐른 뒤에서야 여성은 비로소 투표권을 쟁취할 수 있었다.
  오늘날 ‘모든 인간은 정치적 주체이며, 따라서 정치적 자유권인 참정권을 지녔다’는 명제를 모두 참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아주 오랫동안 이 명제는 인류의 절반인 여성들에게 일종의 가설에 불과했다. 여성은 왜 오랜 시간 정치적 주체로 인식되지 못한 채, 정치공간의 주변부에 머물기를 강요받았는가. 왜 지금도 이 강요는 계속되는 것인가.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부당한 가설에 맞서 투쟁한 여성들의 역사와 기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장 오래된 악습, 여성 배제

  인류역사에서 ‘여성의 시민권’이라는 화두는 프랑스 혁명에서 비롯해 18세기 말의 문예 비평사에서 주로 부각되고 있지만, 그 원류는 아테네 민주사회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테네’라는 도시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아테네(Athenae)의 수호신은 아테나(Athena)이며 파르테논 신전 역시 그에게 바쳐진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테네에서 정치적 의미의 여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늘날 정치의 초석이라 불리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정치학》은 시민과 국가의 정의에 대해 서술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국가는 같은 곳에 살고 있는 이들로 구성된 단순한 공동체가 아니다. 아울러 상호 간에 부당행위를 방지하고 교역을 촉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존재하는 것 또한 아니다. 《정치학》 제13권 제9장에 명시돼있듯, “국가는 그 구성원의 가족들과 씨족들이 완전하고 자족적으로 살 수 있게 해주기 위한 공동체다.” 이러한 국가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필수조건인 시민 역시 같은 장소에 거주하고, 동일한 법적 권리를 지녔다 해서 모두 시민으로 인정받는 건 아니었다. 아테네는 현실 세계인 국가 공동체에서의 사회·정치적 역할을 중시해, 별도의 조건을 충족해야만 시민이 될 수 있었다. 우선 아테네 구성원 가운데 재산의 소유자만이 공무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고, 이를 통해 시민이 될 자격을 부여받았다(《세계인권사상사》, 2005). 즉 재산에 따라 부여되는 의결권과 재판권을 시민의 자격으로 둔 것이다. 이처럼 도시 국가에서 현실의 정치 활동과 자족적인 삶을 시민의 역할로 제시한 점, 시민자격이 재산권과 같은 개인의 활동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은 근대 유럽의 시민사회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아테네의 민주정체(民主政體)에서 여성이 정치적 영역에서 배제됐던 이유 역시 《정치학》 제1권 제12장에서 엿볼 수 있다. 《정치학》에서는 “자연에 배치되는 예외적인 경우 말고는, 남성이 여성보다 본성적으로 지배하는 데 적합”하기 때문에, 남성의 여성 지배 역시 당연시한다. 이에 대한 근거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적 측면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한 존재임을 주장한다. 이처럼 남성에게 여성에 대한 일방적인 권위를 부여해야 한다는 논리는 치자와 피치자를 구분하는 전형적인 이분법적 사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정치사에서 가장 오래된 관습으로 자리 잡았다. 최초의 민주정체였던 아테네에서부터 여성을 억압하는 이분법의 논리가 지속적으로 이어져온 것이다.


분리된 영역, 분실된 자유와 평등

  서구 정치사에서 여성의 시민권에 대한 논의는 아테네의 민주 공동체 이후, 2천여 년이 흐른 1789년 프랑스 혁명에서 점화되기 시작했다. 그 시기의 유럽은 격동적인 변화를 몸소 겪고 있었다. 중산층의 출현과 더불어 이성에 의한 합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낡은 현존질서를 철폐해 모든 이들이 자유와 평등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주창하는 ‘계몽주의’가 도래한 것이다. 이를 발판삼아 민주주의 체제는 제도적인 틀을 갖춰 나가기 시작했고,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에서 말하는 세계가 가까워지는 듯 했다. 그러나 근대 시민혁명의 문서 속, 그 어디에도 여성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프랑스 혁명은 여성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반으로 성공했지만, 혁명 이후 여성에게 돌아온 것은 ‘가정으로의 회귀’였다. 모두의 자유와 평등을 노래한 시대에도 여전히 정치를 포함한 공적 영역은 남성의 전유물이었고, 여성에게 허락된 것은 가내영역 뿐이었다. 아테네 정치 공동체와 프랑스 혁명의 주된 목소리는 ‘만민 평등’과 ‘행복의 가치’였으나, 이는 결코 여성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것들이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의 《정치학》에서부터 시작된 전통이 인류 역사 속에서 하나의 관습적인 전통으로 내려온 것이다.
  작가이자 여성 운동가였던 올랭프 드 구주(O.Gouge)는 1781년, 여성의 재산권과 투표권을 주장하는 ‘여성과 여성시민의 권리선언’을 선포한다. 구주의 선언문은 여성 역시 정치적 주체임을 주창하는 동시에 혁명적 투쟁을 알리는 시작이었다. 즉 여성이 단두대에 설 수 있다면 연단에도 설 수 있어야 함을 주장한 것이다. 구주의 처형 이후 오래된 관습을 타파하고자하는 여성들의 저항과 투쟁은 계속됐고, 프랑스에서 보통선거가 도입된 지 거의 100년 뒤인 1946년에서야 여성의 투표권이 인정됐다. 이처럼 여성은 역사 속에서 긴 시간동안 정치적 주체로 인정받지 못했고, 이 모든 배제와 억압은 여성 시민권 투쟁의 역사에 오롯이 남아있다.


‘여성 정치’, 역사서의 첫 장

  여성의 시민권은 오늘날의 페미니스트들과 연구자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논의 대상이다. 그동안의 서구 정치사에서 ‘정치적’이라는 의미는 여성다움과 여성의 육체로 재현되는 모든 것을 배제했다. 공적이고 정치적인 영역은 모두 남성의 것이었으며, 여성은 남성이 지배하는 정치세계의 사적인 토대를 마련하는 주변부적인 존재였다. 이러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은 결코 양립할 수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가정생활에 기반을 두는 일부 역할만을 여성에게 인정했을 뿐, 공적인 정치 활동에서는 여성을 제외시켰던 관습이 쉽게 전복될 수 없었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도시 국가가 여성의 교육을 망각한다면, 도시 내부에 불안전성이 생길 것이라고 여겼다. ‘여성의 권리 옹호’를 주장했던 울스턴크래프트(M.Wollstonecraft) 역시 “여성을 합리적 존재 그리고 자유로운 시민들로 만들어라. 그들은 훌륭한 아내와 어진 어머니가 될 것이다. 이는 물론 남성이 남편과 아버지와 남편으로서의 의무를 다할 때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성관습의 혁명을 주장하던 울스턴크래프트조차도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이분법적 논리에 근거한 관습적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이 같은 ‘분리된 영역(Separate Sphere)’(《British Women in The Nineteenth Century》, 2001)에 대한 갈등은 이를 다룬 19세기 영국의 많은 작품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여성주의 비평가들은 19세기 여성작가들의 텍스트와 사회활동을 분석하면서 성별에 따른 ‘분리된 영역’에 이의를 제기했다. 또한 여성의 사회문화적 활동을 수면 위로 드러내는 작업 역시 시도했다. 이처럼 여성을 정치적으로 배제한 서구의 정치사상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서 시작됐으며, 이 물줄기는 프랑스 혁명 후 폭발적인 변화의 흐름을 맞이하면서 정치·문화의 다양한 영역에서 파열음을 내기 시작한다. 최근 메어리 린든 쉐인리(M.Shanley)를 위시한 여성학자들은 플라톤(Plato)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장 자크 루소(J.Rousseau) 등의 사상을 ‘여성의 시민권’으로 비춰 재조명해 보는 작업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특히 역사를 관통해 오며, 과거부터 지금까지 여성과 남성의 역할에 대한 관습이자 악습으로 작동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분법적인 논리를 새롭게 읽어내는 시도들에 주목하고 있다.
  오랜 시간 배제당하고 억압받던 여성의 역사를 ‘시민권’으로 조망하는 것은 지속돼야 하는 작업이다. 이를 통해 오랜 세월 정치공간의 주변부에 머물기를 강요받았던 여성들이 자신의 정치적 주체성을 되찾는 역사뿐만 아니라 과거와 오늘날 여성정치를 잇는 지형도의 첫 페이지 역시 함께 펼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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