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19.11.9 토 14:19
특집
[특집] 붕괴된 신화, 다시 쓰는 시의 윤리이경수 / 국어국문학과 교수
김규리 편집위원  |  dc88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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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호]
승인 2019.09.03  22:4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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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 밖으로] ‘그들만의 잔치’가 끝나고 난 뒤


이번 특집에서는 한국 사회가 마주한 ‘여성주의’의 물결이 한국 문학에게 어떤 실천적 변화를 촉구했는지 진단해보고, ‘미투 운동’ 이후 견고했던 ‘신화’를 잃은 문학계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타진해본다. 이를 위해 동시대를 경험하는 문학계 내 연구자의 고민과 성찰,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시도들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붕괴된 신화, 다시 쓰는 시의 윤리


이경수 /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 글은 고백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겠다. 문학이 좋아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으나 대학원에 가서 현대시를 전공하게 된 것은 운명 같은 ‘이끌림’ 때문이었다. 힘겨운 20대와 30대를 지나며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시를 읽고 쓰며, 시에 대한 글을 쓰던 시간 덕분이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현대시를 전공하길 잘했다는 생각과 함께 좋아하는 시와 시인들을 공부하며 나이 들 수 있다는 사실이 축복 같이 느껴졌다. 적어도 몇 년 전까지는.
  2016년 11월 고양예고 문창과 졸업생 연대 ‘탈선’의 지지문을 보면서, 그리고 2017년 내내 이어진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과 고은의 성추행을 폭로한 최영미 시인의 미투 사건을 지켜보며 내가 디디고 있던 지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아마도 그건 하나의 세계가 붕괴되는 경험이었을 것이다. ‘미투’에 어김없이 명예훼손과 무고죄 고소로 대응하는 가해자들의 민낯을 보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당시 나는 연구년을 보내고 있었는데, 다시 복귀해 강단에 서야하는 일이 처음으로 두렵다고 생각했다. 내가 자부심을 느껴온 시의 이름으로 누군가는 범죄를 저지르고, 죄의식 없이 위계에 의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곤혹스러웠다. 당장의 수업을 구성하는 실질적인 고민도 해야 했고, 이른바 문청 시절의 나를 돌아보는 자성의 시간과도 마주해야만 했다. 이 시간을 통과하지 않고는 시를 가르치며 예전 같은 모습으로 학생들 앞에 설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 고민 속에서 몇 편의 글을 써 왔다. 《서정시학》 2018년 가을호에 발표한 〈‘위드유’와 자기 갱신의 윤리〉는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에 시를 가르치는 여성 교수자로서의 고민을 드러낸 글이었다. 이 글은 그 후속편에 해당된다.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을 조심스럽게 달고 살아오다 어느새 자연스럽게 페미니스트가 돼버린 우리 세대 여성 교수자들의 고민 역시 복잡하게 갈라져 있을 것이다. 평생을 여성문학 연구에 종사해 온 연구자들도 혼란을 느끼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런 혼란을 모른 척 회피하는 태도로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할 거라는 예감이 든다. 혼란스럽다고 느끼는 나 자신을 솔직히 들여다보는 데서부터 소통은 시작될 것이다. 자본의 논리와 가장 거리가 먼 ‘시’를 쓰면서도 그것을 권력으로 사용하며 폭력을 행사해 왔던 시단의 병든 문화에 맞서, 고질적인 병폐를 해소하고 문화를 바꾸는 일에 나서지 않으면 언제든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황현산의 ‘패배를 말하는 시까지도 패배주의에 반대한다’는 시의 윤리를 되새기며, 시를 가르치고 연구하는 여성 교수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자문해 본다.


젠더의 시각으로 시문학사 다시 쓰기

  최근 나의 학문적 관심사는 한국현대시문학사를 젠더적 시각으로 다시 읽는 일에 있다. 현대소설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2018), 《#문학은_위험하다》(2019) 같은 책이 출간되며 한국현대소설의 정전을 비판적으로 다시 읽거나 젠더적 관점에서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는 글들이 쓰이고 있지만, 현대시 분야에선 아직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일찍이 산드라 길버트(S.Gilbert)와 수전 구바(S.Gubar)가 《다락방의 미친 여자》(2009)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서정시라는 장르가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보수성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통된 것 같기도 하다.
  젠더의 시각으로 시문학사를 다시 쓴다고 할 때 이 작업은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우선 기존 시문학사의 정전을 젠더적 관점으로 다시 읽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미 김수영의 〈죄와 벌〉(1963), 〈성〉(1968)을 비롯한 일부 시를 대상으로 논의가 존재해 왔고, 1980년대 ‘민중시’에 대한 젠더적 관점에서의 비판 역시 이뤄진 지 오래됐다. 다만 이런 논의들은 대개 특정 시인이나 특정 시기의 시를 중심으로 산발적인 논의에 그쳐, 시문학사 전 시기에 걸쳐 정전으로 읽혀 온 작품들과 시인들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제기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의심 없이 좋은 작품이라고 믿어 읽어 왔고, 교과서에 실어 다음 세대에게 가르치며 전수하고 확산해 왔던 시문학사의 정전들에 대해 젠더적 관점에서의 ‘다시 읽기’ 작업이 이뤄져야 할 때다.
  이어 새로운 시문학사를 서술하기 위한 중간 단계로, 여성 시문학사에 대한 서술이 필요하다. 젠더적 관점에서 기존의 정전을 비판적으로 읽은 후 시문학사를 다시 쓴다고 했을 때, 등재되는 시와 시인의 목록에 변화가 생길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 변화가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다시 읽기’ 작업과 함께 새로운 시와 시인의 발견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다소 낡은 감은 있지만 《다락방의 미친 여자》가 시도했던 작업인 에밀리 디킨슨(E.Dickinson)을 비롯한 여성 시인들에 대한 재발견이 이뤄지지 않고서는 젠더적 관점의 시문학사는 문제제기와 총론만 쓰일 뿐 각론이 쓰일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대시를 젠더적 관점으로 읽는 미학적 기준의 마련이 필요하다.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이나 《#문학은_위험하다》 같은 작업이 그 선구적 시도에도 불구하고 거칠다는 평가를 받거나, 개별 필자들의 관점 차이가 고스란히 노출돼 한 권의 책으로서의 체계는 다소 부실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를 환기할 필요가 있다. 문학의 장르 가운데 시대와 긴밀히 소통하고 당대의 현실을 비교적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소설의 경우, 앞서 언급한 책과 같은 방식의 서술이 가능하지만, 시가 대상일 경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좋은 시를 판별하는 기준 자체를 의심하고 기준을 재정립하는 작업을 선행하지 않는다면 비판을 위한 비판에 그칠 뿐 생산적인 논의에 이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 제안은 사실상 시론과 시학의 주된 개념을 비판적으로 다시 읽는 작업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시를 좋아하며 읽던 순간에도 끝내 좋아하지 못하거나 불편함을 느꼈던 시들이 있었다. 자연을 여성의 몸에 비유하는 상상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서정시들 앞에서 나는 늘 불편함을 느꼈는데, 본격적인 문제제기를 하지는 못했다. 모성성을 신비화하는 시 역시 온전히 좋아할 수 없었지만, 그 원인을 캐기보다는 좋아하는 시로 시선을 돌리는 방향을 선택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서정이라고 믿었던 것, 서정성이 발현되는 순간이라고 믿어온 것에 대해서도 다른 관점의 접근이 필요하다. 시의 화자와 어조에 대해서는 젠더적 관점에서의 문제제기가 상당 부분 이뤄졌지만, 시론을 구성하는 여러 항목들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예로, 시 언어의 특성을 설명하는 방식에서 젠더적 관점의 고려는 얼마나 있었는지 의논돼야 하며, 아이러니와 풍자라는 이름으로 여성을 대상화한 시들에 대한 문제제기도 본격적으로 다뤄져야 한다. 자연을 여성의 몸에 비유하는 관습적인 상상력에 기댄 서정시뿐만 아니라, 이른바 지적인 웃음을 유발하는 시들도 노골적으로 여성을 대상화해 왔음을 반성적으로 재고할 필요가 있다.


교수자의 고민이 강단으로 이어지기까지

  젠더 시문학사를 서술하고, 이를 위해 젠더 시학을 수립하는 일. 더 나아가 젠더 시학의 방법론 중 하나로 시의 감정에 대해 연구하는 일. 아마도 한동안 내가 주력하게 될 연구는 이러한 방향으로 수렴될 것 같다. 그것은 문청 시절 나를 불편하게 했던 자리와 마주보는 일이 될 것이고, 나를 일으켜 세우고 버티게 했던 시를 여전히 좋아하기 위해 걷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강단에서 시를 가르치는 교수자로서도 해야 할 몫이 많음을 알고 있다. 젊은 세대의 문제의식에 모두 공감하며 소통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려고 노력하며 시를 가르치는 여성 교수자로서 우리 세대가 해야 할 몫을 해 나갈 것이다. 그것이 ‘미투’에 ‘위드유’로 응답하는 시의 윤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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