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숙 / DAAD-독일유럽연구센터 연구전담교수

[교수칼럼]

반세기의 침묵, 지각한 정의

정용숙 / DAAD-독일유럽연구센터 연구전담교수


  과거사 청산과 화해에 있어 독일은 일본의 대립 모델로 여겨진다. 독일이 과거사 청산 모범국 이미지를 완성시킨 건, 독일 정부와 기업이 설립한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 재단(EVZ)’을 통한 외국인 강제노역 배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산되지 못한 과거는 여전히 남아 있다.
  전시 국가와 군대의 성범죄 및 성 착취 문제 역시 뒤늦게 공론화됐으며 피해 배상도 이뤄지지 않았다. ‘미풍양속’ 보호와 성매매 근절을 명목으로 수용소에 격리된 여성들, 성병과 동성애로부터 병사들을 ‘보호’하겠다며 군이 직접 만들고 관리한 유곽에 동원된 점령지 여성들, 남성 수인 노동력 ‘제고’를 위해 친위대가 수용소 내에서 운영한 유곽의 성노예로 동원된 여성 수인들,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에서 독일군이 저지른 성폭력의 피해자들, 그리고 종전 후 동유럽과 독일에서 주로 소련군과 미군이 자행한 연합군 성폭력 피해자들의 이야기다.
  나치 시대는 독일 역사에서 가장 문제적인 장으로 이미 구석구석 파헤쳐 졌다고 믿어졌다. 그러나 이 문제만큼은 반세기 동안 침묵에 갇혀 있었으니 그 이유는 첫째, 성매매 여성에 대한 인습적 편견과 성적 폭력에 대한 낮은 사회적 감수성이 전후 시대에도 계속됐기 때문이다. 둘째, 주변부 피해자들에게는 나치 피해자의 법적 지위가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독은 정치범과 인종범죄 피해자, 오스트리아는 정치범의 법적 지위만을 인정했으며, 반파시즘 운동의 계승자를 자처한 동독 정부는 일체의 책임 인정을 거부했다. 마지막으로, 인종주의 성 정책의 결과인 나치 전시 성폭력은 유대인이 배제된 나치 범죄였다. 따라서 공론화를 위해 피해자 이미지를 일원화하는 홀로코스트 집단기억을 극복해야만 했다.
  이 일이 오랜 침묵을 거쳐 세상에 나온 과정은 그 자체로 이 문제가 사회적·정치적으로 다뤄져 온 방식을 말해준다. 프레모 레비(P.Levi)의 《이것이 인간인가》(1947)에서 아우슈비츠 수용소 유곽에 대한 서술이 나오지만, 이는 1990년에 이르기까지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독일 사회가 이 문제에 주목한 건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다. 조직적 강간이 전쟁무기로 사용된 구(舊) 유고슬라비아와 르완다 내전의 참상이 알려지며 전시 성폭력과 여성인권이 국제사회의 관심사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나치 국가와 군대의 성폭력 피해자를 인정하고 그들의 고통을 기억하는 작업은 크게 진전했다. 강제노역 피해 배상 집행 완료 후 새롭게 밝혀진 과거사는 독일 사회로 하여금 과거사 정리에 ‘종료’가 없음을 깨닫게 했다. 마무리된 것 같았던 나치 연구는 갱신되고 확장되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중이다. 주변부 피해자 배제의 오랜 역사는 극복되고 있지만, ‘지각(遲刻)’한 정의는 여전히 피해자 집단에게 골고루 미치지 못했다. 이 문제에 대한 공론장이 계속돼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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