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한 / 농림축산검역본부 수의연구사

인간과 바이러스 ④ 인간과 바이러스의 공존

인류와 바이러스는 오랜 세월 동안 밀고 밀리는 싸움을 지속해왔으나 신종 바이러스의 유행주기는 점점 짧아지며, 변이를 예측하기도 어려워지고 있다. 핵산과 단백질 껍질로 이뤄진 단순한 구조의 이 생명체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날만 기다리는 듯하다. 그렇다면 바이러스의 예고된 공격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이번 기획에서는 현대 과학이 밝혀낸 바이러스의 특성을 알아보고 감염의 진단과 확산의 예방을 위해 어떠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지, 그 동향을 살펴보려고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인류 역사와 바이러스 ② 바이러스의 진단과 백신개발 ③ 바이러스의 전염과 확산 예방 기술 ④ 인간과 바이러스의 공존

 

위협의 대상에서 공존의 대상으로
- 유전자 치료용 벡터, 레트로바이러스 -

 

박성한 / 농림축산검역본부 수의연구사

 

 
 

  지구 온난화 등의 환경 변화와 다양한 감염병 발생은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지속적인 증가를 보여 왔다. 또한 2000년 이후 국가 간 교역 및 이동의 증가로 인한 사스(SARS)와 조류인플루엔자(AI), 그리고 메르스(MERS) 같은 신·변종 바이러스와 지카바이러스(Zika Virus) 및 니파바이러스(Nipah Virus)의 유입 및 발생이 보고되고 있다. 국제적으로 발생했던 웨스트나일열(West Nile)·라임병(Lyme disease)·치쿤구니아열(Chikungunya)이 국내에 유입되는 등 감염병 발생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으며, 2009년 신종플루 및 2015년 메르스와 같은 감염병 대유행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신·변종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병 발생은 전파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2009년 신종플루의 경우 214개국에 발생됐으며 당시 국내 확진 환자가 약 75만 명이였는데, 확산되는 속도가 기존에 비해 4배 이상 빠른 것으로 보고됐다. 이처럼 다양한 바이러스는 인류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인류의 난치성 질병


  현대의 인류는 식습관, 비만 등 다양한 원인으로 암이 발병한다. 암의 경우 발병정도 및 전이 여부 등에 따라, 국소적인 병변일 경우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하고 전신 병변일 경우는 항암제를 이용한다. 그러나 암에 대한 치료성적은 만족스럽지 못해 많은 암 환자들이 암의 전이 및 악성 진행으로 사망에 이르고 있다. 201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암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160.1명으로 집계됐다.
  현대 의학 수준은 인간의 장기를 다른 환자에 이식할 수 있을 만큼 발달했다. 그러나 장기 이식 대기환자에 비해 공급되는 인간의 장기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많은 대기환자들이 사망에 이르는 상황이다.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의 2013년 통계 연보에 따르면, 이식 대기환자는 약 26,036명인 것에 비해, 이식건수는 총 3,795건(14.6%)만 보고되고 있다. 이처럼 부족한 장기 공급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동물의 장기나 조직 또는 세포를 이식하는 이종 간 장기이식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다양한 동물 중 특히 돼지는 짧은 임신기간, 인간장기와 비슷한 크기, 계통유전학적으로 연관성이 높은 점 등 때문에 인간장기를 대체할 수 있는 자원으로 연구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돼지장기를 이용한 이종 간 장기이식에는 초급성 거부반응, 잠재적인 병원체(Pathogen)의 전이 등 극복해야 할 문제들이 많이 존재한다.

 

바이러스를 이용한 유전자 치료


  인류는 다양한 분야에서 바이러스의 특징을 적절히 활용해 삶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 중 암 치료 및 이종 간 장기이식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에서의 유전자 치료에 바이러스를 이용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유전자 치료는 1회 투여로 체내에 장기간 지속 발현될 수 있다는 점, 인위적 조절을 통한 치료제 작용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과 유전자 재조합에 의해 환자의 유전자를 교정할 수 있다는 점 등이 종래의 치료법과 다르다.
  유전자 치료제 개발의 필수적인 요건은 치료유전자의 개발과 벡터의 선정 및 조작에 있다. 치료유전자는 실제 치료효과를 나타내는 물질 및 대상 질환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지만, 유전자 전달용 벡터 시스템의 개발이 유전자 치료의 성공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유전자 치료용 벡터 중 레트로바이러스(Retro Virus)는 몇 가지의 독특한 특징 때문에 가장 유용한 벡터로 여겨지고 있다.
  첫째, 레트로바이러스는 주로 척추동물 및 영장류에서 발견되는 RNA 바이러스로, 숙주세포 내에서 역전사 효소를 통해 viral RNA를 viral DNA로 역전사 되고, 숙주 DNA에 삽입돼 자신의 유전자를 발현한다. 이러한 특징은 숙주세포에 존재하는 유전자들의 기능은 물론 구조까지 변형시킨다. 또한 돌연변이나 재조합을 통해 염기서열이나 유전정보를 빠르게 변형시켜 외부환경에 효율적으로 대응한다. 숙주세포에 유전자를 운반할 수 있는 벡터로써 여러 종류의 세포와 생물체에 유전자를 전달하기 때문에 진화과정과 생물다양성에 큰 역할을 한다.
  둘째, 다른 바이러스성 벡터보다 비교적 큰 유전자를 삽입할 수 있으며, 높은 역가로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대상세포에 감염돼도 큰 문제가 없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장기간 안정적인 치료물질 생성이 필요한 선천성 유전질환과 암치료에 이 바이러스 벡터가 이용된다.
마지막으로 레트로바이러스는 분열하는 세포에만 감염된다. 이 특징은, 암이 지속해서 분열하는 변이된 세포이기 때문에 암세포만을 특이적으로 감염시킬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위와 같은 레트로바이러스의 다양한 특징을 이용한 벡터가 사용된 암 및 질환에 대한 치료제가 개발되고 있다. 또한 실험실 단계의 개발이지만 돼지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할 때 발생하는 초급성 거부반응을 해결한 형질전환 돼지를 생산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유전자 치료제의 임상 적용


  전 세계적으로 상용화된 유전자 치료제 중 레트로바이러스를 이용한 ‘anti-Cyclin G1’ 유전자가 탑재된 전이성 악성 종양 치료제인 ‘Rexin-G’가 있다. 레트로바이러스뿐 아니라 재조합 아데노바이러스(Adeno Virus) 기반 두경부암 치료제인 ‘Genedicine’ 및 ‘Oncorine’ 등도 바이러스를 이용한 유전자 치료제다. 2012년 기준 전 세계적으로 2,030여 건의 임상시험이 승인·진행·완료 됐으며, 그 중에서 총 67건이 현재 임상 3상 진행 중이기에 몇 년 안에 더욱 많은 유전자 치료제가 시판 허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유전자 치료제 시장은 2021년 210억 불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며, 이 중 암과 유전질환 및 심혈관 치료제가 2021년 각각 37억 불, 30억 불, 25억 불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서는 2012년까지 총 27개 품목의 유전자 치료제가 임상 승인됐으며, 현재도 꾸준히 개발·승인되고 있다. 특히 만성 육아종과 퇴행성관절염에 대해 레트로바이러스를 이용한 유전자 치료제가 개발 중이다.
  이처럼 다양한 바이러스가 인간의 삶을 지속적으로 위협하고 있지만, 레트로바이러스와 같이 바이러스만의 특징을 이용해 다양한 암과 질환의 치료제를 전달용 벡터·이종 간 장기이식용 형질전환 돼지 개발 등에 활용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지속적이고 활발한 연구를 통해 바이러스를 인간과 공존의 대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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