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순 / 이화여대 디자인학부 겸임교수

그림책의 재발견 ④ 멀티미디어 시대와 그림책

과거 그림책은 교훈적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읽기를 연습시키기 위한 도구로 여겨졌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그림책은 문자텍스트와 시각텍스트가 결합한 예술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아동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영감을 주는 그림책은 독자들에게 미감(美感)에 의한 즐거움은 물론이거니와 깊은 사색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번 기획에서는 그림책의 구성, 표현기법에 관한 지식과 텍스트 분석을 통해 그림책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그림책을 제대로 읽는 기쁨과 즐거움을 느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그림책 이해하기 ② 포스트모더니즘과 그림책 ③ 그림책의 새로운 흐름 ④ 멀티미디어 시대와 그림책

 

‘살아있는 그림책’과 대화하기
- 인터랙티브 그림책과 크로스 미디어 -

 

문영순 / 이화여대 디자인학부 겸임교수

 

  21세기를 살아가는 인류는 한 가지 정보를 한 가지 미디어로만 접하는 시대를 넘어 다양한 미디어로 체험하는 ‘크로스 미디어(Cross Media)’ 시대에 살고 있다. 크로스 미디어는 일관된 메시지를 온·오프라인 내 다양한 매체 간의 결합으로 전달하는 기법을 의미한다. ‘크로스 미디어 프로덕션(Cross Media Production)’으로 제작되는 그림책에서는 글과 그림뿐 아니라, 이야기와 컴퓨터 시스템의 인터랙션(Interaction)이 만들어내는 통합적인 스토리텔링이 요구된다. 이때, 인터랙션은 단순히 스마트 미디어 기술 중 하나가 아닌, 멀티미디어의 활용이 가능한 ‘인터랙티브 그림책(Interactive Picture Book)’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핵심요소다. 대부분의 인터랙션은 글을 강화·확장하는 기능을 하며, 스토리와 상관없이 그림을 통해 하나의 놀이성(Playfulness)을 가지는 포스트모더니즘 그림책의 성격을 띠도록 한다.
  크로스 미디어 프로덕션 그림책의 예로, 문봇 스튜디오(Moonbot Studio)의 《모리스 레스모어의 환상적인 날아다니는 책》(2012)을 들 수 있다. 이 그림책의 스토리는 종이 그림책·앱 그림책·애니메이션의 세 가지 미디어 형식에 맞게 제작됐다. 특히 그림 텍스트는 컴퓨터상에서 3D 디지털 이미지로 개발됐기 때문에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로 변환되기 적합했다. 각 그림책의 형식을 살펴보면, 먼저 종이 그림책은 3D로 그려진 디지털 이미지를 종이에 프린트하기 위해, 디지털 편집 툴로 종이 그림책의 형식에 따라 편집됐다. 여기에 ‘증강현실 기법’을 적용해, 종이 그림책의 특정 이미지를 스마트 미디어로 읽히면 ‘모션 그래픽(Motion Graphic)’이 증강되도록 했다. 앱 그림책에서는 글과 그림을 분리해 하단 ‘텍스트 박스’에 글을 넣고 그림과 분리된 공간에 배치시켰다. 이를 통해 그림이 레이아웃 된 공간에서는 좀 더 자유롭게 인터랙션을 구사할 수 있어, 캐릭터들이 움직이는 하나의 연극 무대가 연상될 수 있다.

 

▲《모리스 레스모어의 환상적인 날아다니는 책》(2012)
▲《모리스 레스모어의 환상적인 날아다니는 책》(2012)

인터랙티브 그림책의 상호작용


  어떤 미디어를 통해 그림책이 제작되든, 그 미디어만이 가지는 특별한 형식이 있다. 세계미술용어사전에 따르면 형식은 예술작품의 외부적 측면, 즉 내용이 표현되는 구조, 요소들과 그 요소들 서로가 가진 관계의 전체성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림책의 스토리는 기본적으로 글과 그림이 조직화돼 만들어진 형식에 의해 해석된다. 노들먼(P.Nodelman)은 《그림책론》(2011)에서 “그림책의 글과 그림은 서로 규정하고 확장하기 때문에 각자 따로 존재할 때처럼 한쪽만으로 완결되지 않는다”고 논했다. 나아가 인터랙티브 그림책에서는 글과 그림에 인터랙션이 더해졌기 때문에 종이 그림책과 다른 독특한 서사 기법을 필요로 한다.
  인터랙티브 그림책은 컴퓨터 시스템과의 상호작용에 따라 ‘내비게이션 상호작용’과 ‘스토리 상호작용의 구조’로 나눌 수 있다. 니콜라예바(M.Nikolajeva)와 스콧(C.Scott)에 의하면, 그림책은 판형·표지·면지·표제지·뒤표지와 같은 주변 텍스트(Paratext)로 구성되며, 이러한 주변 텍스트 또한 그림책의 서사에 영향을 미친다. 이때 내비게이션 상호작용이 주변 텍스트에 해당된다. 내비게이션 상호작용의 형식은 홈페이지의 섬네일(Thumb Nail) 및 목차, ‘책 읽기 시작’과 같은 메뉴 등이 있으며, 본문 페이지의 ‘페이지 넘기기’ ‘홈 바로가기’ 등도 이에 포함된다.
  스토리 상호작용의 구조를 알기 위해, 상호작용에 의한 서사를 다섯 가지 층위로 설명한 라이언(M.Ryan)의 논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에 따르면 첫 번째 층위는 ‘주변적 상호작용’으로, 상호작용이 스토리나 담화 층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두 번째 층위는 ‘담화 층위에 영향을 주는 상호작용’이며, 웹의 하이퍼텍스트 구조가 대표적이다. 세 번째 층위는 ‘주어진 스토리에 변수를 생성하는 상호작용’이다. 네 번째 층위는 ‘실시간 이야기 생성형’으로, 시스템과 사용자가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며 스토리를 만든다. 다섯 번째 층위는 ‘메타-상호작용’으로, 사용자가 개발의 영역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첫 번째 층위에는 종이 그림책을 재현해 놓은 형태로, 페이지를 넘길 수 있는 내비게이션이나 삽화에 간단한 움직임이 있는 정도의 인터랙션이 포함된다. 두 번째 층위는 인터랙션이 이야기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이야기를 규정하고 확장하기 때문에 담화 층위에 영향을 준다. 세 번째 층위부터는 독자가 스토리를 창작하는 데 관여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림책 작가의 이야기가 변형되지 않고 종이 그림책을 인터랙티브 특성에 맞게 크로스 미디어로 제작할 수 있는 형식은 두 번째 층위라고 할 수 있다.


크로스 미디어 프로덕션의 참여 구조


  인터랙티브 그림책은 ‘3분기 구조’와 ‘2분기 구조’로 나눠 볼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인터랙티브 그림책에서 그림을 그리는 방식과 하이퍼텍스트 프로그래밍의 기본 구조가 되며, 또한 독자의 참여적인 구조가 된다. 3분기 구조 중 1분기는 ‘기본 스테이지(Basic Stage)’로, 배우가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것과 같은 구조다. 2분기는 ‘참여 스테이지(Engagement Stage)’로, 1분기 애니메이션이 멈추고 캐릭터들이 제스처와 말풍선 등으로 독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구조다. 독자는 2분기에서 캐릭터와 2인칭 참여를 할 수 있고, 배경 오브젝트와 1·2인칭 참여를 할 수 있다. 3분기 ‘표현 스테이지(Presentation Stage)’는 2분기 독자 참여에 대한 상호작용 결과를 나타낸다.
  3분기 구조에서는, 1분기에서 글에 대한 내레이션이 재생될 수 있는 정도의 일정 시간 동안 인터랙션을 할 수 없도록 구조화한다. 이는 아동 독자가 글과 그림을 집중해서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한편 2분기 구조에서는, 1분기에서 곧바로 캐릭터나 배경 오브젝트와 상호작용을 할 수 있어 독자는 좀 더 자유롭게 그림책을 읽어나갈 수 있고 인터랙션의 결과를 2분기에서 볼 수 있다. 작가는 종이 그림책을 인터랙티브 그림책으로 제작하기 위한 크로스 미디어 프로덕션에서, 3분기와 2분기의 참여적인 구조에 따라 문학표현의 형식을 효과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인터랙티브 그림책이 ‘문학성을 띠고 있는지’ 혹은 ‘게임과 같은 중독성을 불러일으키는지’에 대한 논의는 분분하다. 이런 점이 문제로 대두되는 이유는 미디어의 특성에 맞는 문학적 표현을 연구하기보다는, 흥미 위주의 인터랙티브 기술에 초점을 맞춰 그림책을 개발하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미디어 이론가인 마샬 맥루한(M.Mcluhan)은 “매체의 가치는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 말했다. 어느 때보다도 인터랙티브 그림책의 문학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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