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으로 시대 읽기]

현실보다 현실적인

  몇 해 전 여름, 어느 미술관에서 ‘노숙자’를 주제로 한 기획전시가 개최됐다. 전시장 외벽에는 노숙자의 영문 표기인 ‘홈리스(Homeless)’가 크게 전사된 현수막이 걸렸다. 전시 관람을 마치고 이 현수막을 촬영하던 중, 현수막 아래 담장 안쪽에 누워 있는 어떤 이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현실의 노숙자(露宿者)였다. 각국의 이름난 작가들이 노숙자에 대해 고뇌한 결과물들을 보기 좋게 배치한 쾌적한 미술관, 그리고 그 바깥에 그늘도 없이, 다만 홈리스라는 커다란 글자 아래 잠든 노숙자. 이 목격은 어쩌면 설계된 퍼포먼스였을 수도 있겠지만, 피곤한 듯 자세를 바꾸는 그와 그의 위로 펼쳐진 현수막의 글자를 보며 생각했다. ‘전시가 이보다 더 깊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을까’.

  전시된 ‘현실’이 아닌, 존재하는 ‘현실’이 주는 무게를 깨닫는 순간. 바로 직전까지도 가치 있다고 여겼던 의미들이 단번에 초라하게 역전되는 이 경험은, 노순택 작가의 작품들이 드러내는 지시를 ‘현실적으로’ 읽어내는 과정에서 또다시 반복됐다. 사진은 한순간-기계적으로 채집되는 단면이지만, 그가 설계하고 포착해 낸 장면에는 흥미를 끄는 사진적 사실 이면 어딘가에 비틀어진 대한민국의 현실이 담겨있다. 그는 특히 자본과 착취의 현장에서, 분단의 지점에서, 애국을 외치는 군중과 훈련 중인 군인들로부터 국가의 역할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발견하게 한다. 이것이 그의 사진이 ‘현실’보다 ‘현실적’인 이유다.

정보람 편집위원 | boram2009@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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