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운옥 / 고려대 사학과 강사

스포츠와 정치 ④ 스포츠와 몸의 정치학

스포츠는 우리를 열광케 하고, 열광은 대중을 부른다. 때문에 정치는 스포츠를 도구로 활용하고자 시도한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팀’과 ‘상대팀’을 나누며, 경쟁과 규칙의 소용돌이 속에 위치한다. 스스로 애국주의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월드컵을 보며 왜 자국을 응원하게 되는가.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 경기지만, 그 안에 내포된 다층적인 정치적 역학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메가 스포츠 이벤트를 통한 스포츠 외교 ② 민족주의 대 초국가주의 - 현대 스포츠의 논쟁 ③ 카탈루냐의 염원 - 정치적 갈등과 스포츠에의 열정 ④ 스포츠와 몸의 정치학


변주되는 인종주의와 스포츠 역사

염운옥 / 고려대 사학과 강사

 

■ 2010 도브사 광고
■ 2010 도브사 광고

  2010년 도브(Dove)사는 흑인·혼혈·백인 여성 3명을 나란히 세우고 살결과 체격을 비교하는 광고를 제작했다. 해당 광고에선 피부색이 옅어질수록 살결이 고와지고 몸매도 날씬해진다. 2017년에도 도브사는 자사의 비누를 사용한 흑인 여성이 갈색 티셔츠를 벗으니 백인으로 변신하는 광고를 내보내, 거센 항의를 받았다. 이러한 도브 광고는 19세기 말 피어스(Pears)사의 악명높은 비누 광고를 연상시키는데, 당시 피어스사는 피어스 비누로 흑인 아이를 씻기면 몸이 하얘진다는 컨셉의 광고를 제작했다. 비누는 한낱 상품이 아니라 순수와 청결을 숭배하는 근대 문명의 상징이다. 몸은 하얗게 씻기지만 검은 얼굴은 그대로 둬 흑인의 열등한 지능은 비누로도 어쩔 수 없다는 암시도 잊지 않았다. 도브 광고는 결코 돌발적 사건이 아니다. 백인과 청결한 몸, 우월한 몸을 연결하고 흑인을 열등한 몸으로 낙인찍는 인종주의 역사 위에 서 있는 것이다.

■ 피어스사 비누 광고
■ 피어스사 비누 광고


열등한 인종, 우월한 육체

  2007년 제작된 인텔(Intel)사 광고에서는 사무실에 백인 남성이 서 있고, 그 주위에 여섯 명의 흑인 육상 선수가 단거리 경주 출발 자세를 취한다. 백인은 지식 노동자인 사무직으로, 흑인은 운동선수로 묘사된 것이다. 그러나 흑인은 노예를, 백인은 그들의 주인을 연상시킨다는 비난이 빗발치며 논란이 커졌고, 인텔사는 결국 해당 광고에 대한 사과문을 냈다. 다른 한편, 인텔사의 광고는 또 다른 함의를 내포하는데, 그것은 ‘흑인의 육체적 우월함’이다. 인종주의에 관한 강의에서 해당 광고를 보고 한 학생이 질문을 던졌다. “노예를 연상시키는 구도는 문제지만, 인텔 컴퓨터의 빠른 정보처리 능력을 흑인 선수의 뛰어난 달리기 능력에 비유한 것은 아닐까요? 흑인들의 운동능력이 뛰어난 건 사실이잖아요? 이건 능력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나요?”

■ 인텔사 광고
■ 인텔사 광고

  인텔사의 광고가 단편적으로는 흑인의 육체적 능력을 칭송한 듯 보이나, 이 역시 낙인과 차별로 귀결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괴물스런 육체, 결함을 가진 정신, 특정 인종이나 민족·종교에 속한다는 사실은 현대 사회에서 낙인으로 취급되는 속성을 지닌다. 낙인이 언제나 배척의 척도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과 같이 신체적·정신적 불편함으로 인해 주목과 관심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관심의 대상은 장애인의 인격 전체가 아니라 그의 인격에서 ‘돌출된’ 부분이다. ‘장애를 극복한 인간 승리’라는 찬양도, 인격이 아닌 장애만이 부각되도록 함으로써 그 차별적 기제를 내포한다. 흑인은 뛰어난 신체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 역시 마찬가지다. 뛰어난 육체적 능력은 육상선수 개인의 것이 아닌 그가 속한 인종 전체로 확대되고, 운동능력만으로 흑인을 평가하게 만든다. 흑인은 육체적 능력이 뛰어나다는 스테레오타입은 얼핏 긍정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지적 열등함을 다르게 변주한 것에 불과하다. 그 변주 속에 개인의 인격이 설 자리는 없어진다. 더 무서운 것은 육체적 능력에 대한 상찬은 곧, 육체는 뛰어나지만 지성은 열등하다는 평가로 미끄러져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유대인은 머리가 좋고 지식인에 적합하다는 스테레오타입이 육체적 허약함과 약삭빠름이라는 편견을 다르게 변주한 것에 불과하듯이. 미국이나 유럽에서 아시아계 이민자가 ‘모범적 소수자’라는 평가를 듣는 것도 마찬가지다. 적응을 잘하는 이민자 이미지는 온순하고 순응적인 아시아인이라는 스테레오타입과 겹쳐진다.


흑인 스포츠 스타와 남은 과제들

  흑인이 백인에 비해 육체적으로 운동능력이 뛰어난지 아닌지는 여전히 논쟁거리다. 하지만 여기서 기억해야만 하는 사실은, 이런 인종적 정체성은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지 고정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의 잭 존슨(J.Johnson)은 흑인 최초로 프로 복싱 헤비급 세계 챔피언에 오른 인물이다. 남북전쟁 이후 해방된 흑인들은 차별이 여전한 남부를 떠나 북부로 이주했다. 이에 북부 도시에서는 허물어지는 흑백 경계에 대한 백인의 위기의식이 고조돼, “분리하지만 평등하다(Separate but Equal)”는 유명한 문구를 내건 짐 크로(J.Crow) 체제가 고착됐다. 인종주의가 강화된 곳은 흑인과 백인이 일자리와 주거지를 놓고 경쟁하게 된 북부 도시였다. ‘흑인은 두뇌가 작고 신경계통이 발달하지 않아 지적 능력과 자제력이 발달되지 못했다’는 흑인의 열등성에 관한 인종주의 담론은 20세기 초 복싱 같은 스포츠 분야에서도 재생산됐다. 지적·신체적으로 열등한 흑인은 고도의 투지와 용기를 발휘할 수 없기 때문에 훌륭한 복서가 될 수 없었다.

■ 잭 존슨
■ 잭 존슨

  복싱은 흑인 선수를 배제하지 않은 반면, 사이클이나 경마와 같은 경기는 흑인 선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흑백이 공존하는 것처럼 보였던 복싱에서도 링 위의 흑인선수는 관중의 조롱과 야유를 들어야 했고, 경제적 착취에 시달렸다. 무엇보다도 흑인이 매니저나 프로모터가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잭 존슨처럼 ‘우월한 백인종’을 때려눕히는 흑인 복서가 인기를 누리며 흥행을 견인하고 챔피언에 등극하자 열등성 담론은 우월성 담론으로 탈바꿈했다. 흑인은 특유의 타고난 리듬감과 뛰어난 육체적 능력으로 복싱에 적합한 몸을 지녔다는 정반대의 인종담론이 탄생한 것이다. 새롭게 등장한 인종담론에 따르면 헤비급 챔피언 존슨은 ‘흑인이기 때문에’ 헤비급 챔피언이 된 것이었다. 개인의 탁월함과 노력은 그의 성공을 설명하는데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검둥이’라는 사실 만이 중요했다. 존슨의 성공 요인은 노예제의 역사 속에서 재해석됐다. 존슨의 신체적 장점은 수 세기 동안 ‘니그로 인종’에게 부과됐던 육체노동에 의해 형성됐다는 것이다. 흑인 복서의 뛰어남은 온전히 인정될 수 없었기에, 그의 성취는 그가 속한 인종의 역사적 경험으로 돌려졌다. 존슨의 성공은 노예노동을 견디며 단련된 몸으로 환원됐고, 그가 챔피언의 지위까지 오르는데 필요했을 고도로 계산된 훈련과 창의적 전술, 피나는 노력은 효과적으로 은폐됐다.

  흑인이라는 인종 범주 역시도 불완전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한 방울 법칙(One Drop Rule)’은 오늘날까지도 미국에서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인종 분류법이다. ‘한 방울’이라도 ‘흑인의 피’가 섞여 있으면 ‘흑인’이라는 법칙이다. 골프선수 타이거 우즈(T.Woods)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혈통은 “8분의 1 백인, 8분의 1 원주민, 4분의 1 흑인, 4분의 1 태국인, 4분의 1 중국인”이라고 소개했으나 언론은 그를 ‘흑인’ 골퍼라는 납작한 단어로 환원했다. ‘흑인은 운동능력이 뛰어나다’가 칭찬이 될 수 있을까. 이는 결국 노예제와 한 방울 법칙의 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차별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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