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성이 마비된 사회

 

  성폭력 사건과 관련된 학내 대자보 훼손행위가 연속적으로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에는 현수막이 찢겨진 채 발견됐다. 지난 5월 30일 중앙대 반성폭력반성매매 모임 반(反) 주최의 ‘중앙대학교 페미니스트 총궐기’(이하 총궐기)가 열렸다. 총궐기를 홍보하는 여러 현수막이 학내에 게시됐는데, 법학관(303관) 앞 현수막이 행사 당일에 훼손된 것을 본지가 확인했다. 또한 총궐기 참여자들에 대한 반(反)의견으로 ‘불법 촬영’이 계속돼, 행사 도중 몇 번이나 불법 촬영을 제지해야 했다. 아직도, 무분별한 혐오가 학내 곳곳을 배회하고 있다.

  혐오란 무엇인가.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싫어하고 미워함’을 의미하고 있지만, 단순한 감정의 ‘싫어함’과는 다르다.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을 넘어, ‘이질적인 것’ 혹은 ‘익숙하지 않은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다. 자신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이질적인 것이 자신(혹은 집단)의 존립에 위해를 가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대한 방어적 태세의 표현이며, 그 이질적인 것을 ‘제거’하기 위해 나타나는 행동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이러한 혐오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여성·성소수자·이주민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 정치적 이념, 지역감정 등의 영역에서도 무분별하게 표현되고 있으며, 정치적 혐오 표현 이외에도 우리의 일상 곳곳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세월호 5주기를 앞두고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가 하면, 제주 4·3사건과 5·18민주화운동 등에 대해 혐오 발언을 일삼아, 최근 ‘막말 정당’이라 불리는 모 당의 몇몇 의원들은 유가족들에게 혐오 표현을 가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이들이 상대를 비하·비난하는 언어로 혐오를 표현하는 것을 ‘표현의 자유’라는 권리로 보장하고, ‘자유’에 맡겨야만 하는가.

  마사 너스바움(M.Nussbaum)은 “혐오에 의한 범죄는 그 어떤 경우라도 정당성을 얻을 수 없으며, 법의 양형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혐오 표현은 차별적 발언이며, 폭력성을 지닌다. 그렇기에 유가족들과 피해자들에게 혐오 표현을 가하는 이들에 대한 법적 조치는 분명 필요하다.

  혐오 표현을 서슴지 않는 이들. 그들은 오히려 자신의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날까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타인에게 혐오로 표현함으로써, 자신들의 위기에 대한 두려움·공포·불안을 드러내는 것은 아닌가.

  ‘표현의 자유’라는 권리 주장 이전에, 타인의 인권을 부정하는 혐오 표현을 가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 되돌아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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