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새로운 틀을 위한 합리적 과거 인식

  ■ ‘행위자의 비합리성’과 이에 따른 ‘사후적 결과로의 치중’을 지적한 점이 흥미롭다

  현재 한국 자본주의의 핵심 문제와 대안에 관한 논의는 1997년 경제위기의 발생 및 위기의 신속한 극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신자유주의 입장에선 국가나 정부의 시장 개입 확대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 반면, 국가주의 입장에선 그것의 축소를 더 문제시한다. 이러한 이항대립 구도는 전자가 ‘보수’를, 후자가 ‘진보’를 대표한다는 생각과 결부돼 현재까지도 매우 뿌리 깊은 대중 정서로 자리 잡는다. 이러한 기존의 통념을 ‘행위자의 비합리성’으로 정리했다. 극과 극의 주장처럼 보이지만 국가의 시장 개입 강화 혹은 약화로 1997년과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는 주장의 이면에는 당시 국가 정책 결정자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는 전제를 공유한다.

  일부 ‘행위자들의 비합리성’ 논리는 국가 정책에만 국한되지 않고 매우 광범위한데, 가장 대표적인 부문이 바로 기업이다. 1997년 경제위기에 대한 대다수 사회과학 논의들은 당시 재벌들의 과잉투자가 자기 파멸을 이끈 것처럼 묘사한다. 그 핵심 원인은 ‘전문 경영 지식이 없는 재벌 총수의 비합리적 결정’이다. 그렇지만 1970년대부터 지속된 총수 독단에 의한 과잉투자와 정경유착을 1997년 위기의 원인으로 상정할 수는 없다. 많은 한국 기업들은 내수보다 수출 전망에 기반해, 설비 과잉화 여부는 다소 외생적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볼 때 1997년 분석에서 중요한 것은 과잉투자 그 자체보다는 과잉투자로 이르는 과정에서 당시 사람들이 어떤 판단을 했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더 근본적으론 대중적 인식의 근원에 선형적 진보관이 있기 때문에, 예전 사람들이 현재보다 덜 합리적이었을 것이라고 쉽게 전제하는 것 같다. 따라서 본 논문을 통해 ‘과연 지금 사람들은 당시 상황에서 실제 역사보다 더 나은 판단을 했을까’를 질문하고 싶었다.


  ■ 한보사태라는 실패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한보부도와 뒤이은 여러 대기업들의 연쇄 도산은 ‘비합리적 결과’가 아닌 ‘회피 불가능한 결과’다. 1995년부터 세계 철강 시황 악화가 없었더라면, 그리고 1995년 역플라자 합의에 따른 교역조건 악화가 없었더라면, 한보는 실패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포항제철 주도의 과다경쟁도 결정적 타격 요인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변수들은 회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규모 실패와 위기 대응보다 ‘그것을 어떤 틀로 인식하는가’가 중요하다. 한보사태와 한보청문회는 1997년 위기에 대한 대중적 인식에 중요한 기반을 마련했다. 정치인과 공무원의 부정부패를 매개로 한 강한 개입이 한보 실패의 원인이라는 대중적 인식으로 확산됐고, 이것에 근거해 시장 원리의 전면적 확산을 기치로 내건 구조조정이 관철될 수 있었다.


  ■ 발전국가의 전환이 순조롭게 이뤄졌다면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대면하지 않을 수 있었나

  다음과 같은 쟁점을 상기해 보자. 발전국가 ‘전환기’의 속성은 현재의 신자유주의와 얼마나 다른가. 1997년 위기를 겪지 않은 채, 발전국가의 순조로운 전환 또는 연착륙은 가능했을까. 1997년 1월의 한보부도와 11월의 IMF 구제금융 신청은 어느 정도로 밀접한 관련을 갖는가. 1997년 이전의 전환기 발전국가는 현재의 신자유주의와 완전히 상이하지는 않더라도 동일하지 않은 차별적 속성을 지녔을 것이다(국가가 특정 산업의 발전 방향을 지속적으로 제시하고 추동한다는 측면에서). 또한, 1997년 경제위기가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일환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1997년 위기를 겪지 않은 순조로운 발전국가 전환은 결코 가능하지 않다. 이렇게 볼 때 1997년 1월 한보부도는 11월 IMF 구제금융과 그 자체로 자명한 관계라고 볼 수 없다. 발전국가·경제위기·신자유주의의 관계에서 한보사태 분석은 중요하지만 전부라 할 수 없으며, 본 질문은 향후 더 추적할 필요가 있는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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