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19.9.4 수 00:59
기획학술
[중앙아카데미아] 한보사태는 일부 행위자들의 실책에서 비롯됐나오형석 / 사회학과 박사
최은영 편집위원  |  rio.flaneu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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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호]
승인 2019.04.30  23: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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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카데미아] 『한국 발전국가 전환과 1997년 한보사태』 오형석 著 (2019, 사회학과 박사논문)

  본 지면은 학위 논문을 통해 중앙대 대학원에서 어떤 연구 성과가 있는지 소개하고, 다양한 학과의 관점을 교류하고자 기획됐다. 이번호에서는 사회학과 오형석의 박사 논문 『한국 발전국가 전환과 1997년 한보사태』를 통해 1997년 IMF에 선행하는 한보사태를 기존의 국가주의와 신자유주의 대립구도에 기반하지 않고, 구조적 분석이라는 제3의 방법론으로 되돌아 봄으로써 현재 경제위기의 대안적 틀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한보사태는 일부 행위자들의 실책에서 비롯됐나

오형석 / 사회학과 박사

  1997년 1월 23일, 당시 국내 재계 자산 14위의 한보그룹 최종 부도가 발표됐다. 그리고 연이어 삼미특수강(3월), 진로(4월), 기아(7월), 쌍방울(10월) 등 국내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무너졌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주로 동아시아 외환위기와 해외 자본 유출에 의해서 형성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미 수개월 전부터 국내엔 기업위기가 크게 확산돼 있었다. 여기서 한보가 차지하는 위상은 다소 특별한데, 한보는 1997년 대기업 연쇄 도산에 시간적으로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선행하기 때문이다. 삼미특수강과 기아의 주거래은행은 한보와 마찬가지로 제일은행이었으며, 이로 인해 한보부도는 나머지 기업들이 더 어려운 자금 조달 상황에 놓이게 했다.

  한보의 급속한 성장과 부도는 현재까지도 정상적이지 않은 과정의 결과로 이해된다. 이 문제에 대한 통념은 한보가 당시 부정부패로 얼룩진 정실 자본주의(Crony Capitalism)의 산물이었다는 것인데, 특히 사태를 악화시킨 주요 행위자들의 비합리성이 두드러지게 강조돼 왔다. 반면, 본 논문은 한보의 성장과 실패를 ‘한국 발전국가 전환’이라는 구조 변동의 맥락에서 파악한다. 이렇게 볼 때, 한보부도는 행위자 수준의 역량을 초월하는 지점에서 발생한 ‘구조적 문제’가 된다.

 

   
■ 출처: 대한뉴스 제 1998호-노사 화합
1994년 한보철강 충남 아산만 일대 종합 철강 단지 조성 준비 사진


1997년 위기의 행위자 중심적 설명을 넘어서

  1997년 경제위기에 근거한 주장은 많은 반면 면밀한 검토는 상대적으로 적다. 결국 구체적 분석이 비어있는 공간은 이데올로기로 채워지는데, 가장 전형적인 형태는 1997년 위기가 주요 행위자들의 비합리성으로 점철된 정실주의(Cronyism)의 파국적 결과라는 이해다. 한보 총수 일가가 당시 대통령 김영삼의 아들 김현철과 가깝게 지냈다는 소문은 당시 한보사태(1997년 1월 한보부도와 그 직후 언론을 통해 정경유착 의혹이 폭로돼 결국 같은 해 4월 국회 청문회가 열리는 상황을 총칭)의 핵심이었으며, 이러한 정경유착 의혹은 한보가 그 어떤 합리성을 결여한 투자도 가능할 수 있었던 것처럼 여기는 근거가 됐다.

  이상의 통념은 단지 한보에 국한되지 않으며, 1997년 경제위기의 원인에 대한 사회과학 일반 논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것의 한 축은 소위 ‘발전국가’라고 불린 한국 자본주의 국가의 독특한 성격의 변화와 관련된 것이었다. 일부 논자들은 전형적인 발전국가의 긍정성에 주목해 1997년 위기의 근원을 그 해체에서 찾는 반면, 다른 논자들은 그것의 부정성에 주목하고 근원을 그 지속에서 찾는다. 그렇지만 세부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많은 논의들은 1997년 당시 한국 자본주의가 특정한 정책적 실책이 없었더라면 또는 국가 정책 결정자의 비합리적 행위가 없었더라면 위기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제한다.

  그렇지만 근본적인 수준에서 이러한 행위자 중심적 이해는 여러 한계를 갖는다. 무엇보다도 이 논의들은 목적론적인데, 즉 1997년 위기가 특정 행위자의 실책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은 역사의 정답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더 나아가서 이러한 논의는 현재의 우리에게 최대한 ‘비합리적 행태’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할 수 있을 뿐이다.


불황 전망 하에서 한국 발전국가의 전환

  본 논문이 가장 주목한 발전국가 전환의 요인은 1980년대 들어서 향후 경기 전망이 호황기에서 불황기로 반전됐다는 것이다. 본 논문은 이를 정책의 목표와 수단으로 구분해 살펴봤다. 1980년대 이후 더 이상 많은 생산량이 수익과 직결될 수 없는 조건이 형성되자, 국가적 정책 목표는 생산 규모의 확충으로부터 과잉 생산의 지양 및 생산의 신축성 제고로 전환됐다. 또한 더 이상 물가 인상을 상쇄할만한 고성장을 기대할 수 없게 되자 물가 인상 그 자체의 관리에 주력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 결과 국가적 정책 수단은 미시적이고 직접적인 규제로부터 거시적이고 간접적인 유도로 전환됐다. 이처럼 1980년대 이후의 발전국가 전환기는 1970년대까지 한국에서 추구된 것과는 다른 정책 목표를 다른 정책 수단을 통해 달성하려 했다는 점에서 가장 큰 특징을 갖는다.

  한보 당진제철소 건설은 전반적으로 전환기 한국 발전국가의 정책 목표에 적극적으로 부합한 것이었으며, 이는 설비 구성과 자금 조달 모두에서 관찰된다. 구체적으로 당진제철소 설비는 신축성 증대라는 정책 목표에 부합했다. 대형 고로(Hoch-ofen) 설비를 통해 생산량 확충에 매진했던 1970~80년대 포항제철과는 대조적으로, 구체적으로, 당진제철소를 당시 최신 기술에 기반한 박슬라브 주조(Thin-slab casting)와 코렉스(COREX) 설비로 구성함으로써 생산 신축성 증대를 중시했다. 또 다른 한편, 한보의 투자는 1990년대 초반 투자 활성화라는 정책 목표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당시 한보 자금 조달에 정권 차원의 지원이 있었다는 통념은 절반만 맞는 진술인데, 1992~3년의 극심한 투자 저하의 상황에서 정부는 모든 기업에게 투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책 목표 추구에는 경제 자유화의 기치 하에서 거시적이고 간접적인 방식의 정책 수단이 활용됐다. 당진제철소 건설은 1980년대 중반 이래로 추진된 ‘산업 자유화’와 ‘금융 자유화’ 속에서 진행된 것이기 때문에, 표면적으로 이 사업은 인허가나 정책 금융의 결과라기보다는 해당 기업과 은행의 자율적 결정의 결과였다. 한보의 극적인 실패만큼이나 중요한 사실은, 그전까지 당진제철소가 당시 철강 산업의 최신 설비가 집약된 첨단 제철소가 돼가는 중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 국가가 경제 전반을 특정 방향으로 선도하려는 정책 목표를 ‘지시나 명령’이 아닌 ‘유도’로도 순조롭게 추구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한보 실패의 구조적 배경

  국가의 특정한 목표를 더 이상 직접 지시 수단이 아닌 간접 유도 수단으로 달성하는 전환기 발전국가의 특성은 한보가 크게 성장했던 1996년 전반기까지는 조화로 특징지어지는 반면에, 한보의 자금난이 점차 가중된 1996년 하반기부터는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 구조적 취약성으로 이해된다. 한보가 경영난에서 부도까지 이르는 과정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1995년부터 전반적인 경기상황이 악화됐다. 한편으로는 국제 철강 시황이 나빠졌으며, 역플라자 합의(Reverse Plaza Accord)에 따른 국내 수출 둔화는 국내 철강 수요 둔화로 이어졌다. 둘째, 포항제철 주도의 과다경쟁 상황이 펼쳐짐에 따라 한보의 경영난이 더욱 가중됐다. 포항제철은 한보철강이 국내 최초로 도입한 박슬라브 설비를 도입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의 생산품인 열연코일의 내수가격을 인하시킴에 따라, 당진제철소가 박슬라브 설비 가동을 시작한 1996년 하반기 국내 열연코일 시장은 한보가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곳이 됐다. 셋째, 채권은행단과 정부 모두 자력 회생이 불가능해진 한보를 ‘부도 이외의 방식’으로 처리하기를 바랐지만, 실제 결과는 부도였다. 은행들은 한보의 규모 그리고 국가 정책적 고려가 수반되는 철강 산업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정부가 한보 처리 결정을 할 것으로 생각하고 이 결정에 우유부단하게 대응했다. 그러나 정부는 끝내 금융 자유화 원칙을 훼손시키고 싶지 않았으며, 이러한 양자 사이의 결정 미루기는 결국 한보부도로 귀결됐다.

  한보 사례에 기반한 본 논문은 1990년대 한국 자본주의를 단순히 국가의 관리 및 조정 정책의 부재로 특징지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한보부도 그리고 더 나아가서 1997년에 발생한 극적인 위기는 어떤 비정상적인 정책의 결과가 아니라 당시 한국 국가가 처한 제반 조건 하에서 최선의 결과를 추구하던 가운데 발생했던 것이다. 여기서 특정 행위자의 실책은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통념과 달리, 당진제철소는 근거 없는 낙관적 기대에 기반한 과잉투자라기보다는 향후 수요 둔화를 예상한 신중한 투자였다. 한보의 자금조달은 관치금융에 기댄 불법 또는 편법 대출이었다기보다는 경제 전반의 투자 부진을 반전시키기 위한 타개책의 일환이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문제의 원인을 국가 정책적 실책에서 찾는 주장은 인적 교체 또는 더 나은 정책 수립이라는 가시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대중적 지지를 얻는다. 그렇지만 더 많은 지지가 더 옳음을 담보할 수는 없다. 정확한 분석이 올바른 대안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정확한 분석 없이는 그 어떤 대안도 도출될 수 없다. 이는 한국 자본주의의 국내외적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가중돼 가는 오늘날, 우리가 1997년 위기를 반추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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