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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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엘 클라시코: 카탈루냐 민족주의의 스포츠적 발현정동희 /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강사
최은영 편집위원  |  rio.flaneu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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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호]
승인 2019.04.30  22:5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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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와 정치 ③ 카탈루냐의 염원 - 정치적 갈등과 스포츠에의 열정

  스포츠는 우리를 열광케 하고, 열광은 대중을 부른다. 때문에 정치는 스포츠를 도구로 활용하고자 시도한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팀’과 ‘상대팀’을 나누며, 경쟁과 규칙의 소용돌이 속에 위치한다. 스스로 애국주의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월드컵을 보며 왜 자국을 응원하게 되는가.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 경기지만, 그 안에 내포된 다층적인 정치적 역학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메가 스포츠 이벤트를 통한 스포츠 외교 ② 민족주의 대 초국가주의 - 현대 스포츠의 논쟁 ③ 카탈루냐의 염원 - 정치적 갈등과 스포츠에의 열정 ④ 스포츠와 몸의 정치학


엘 클라시코: 카탈루냐 민족주의의 스포츠적 발현

정동희 /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강사

  정치적 목적을 위해 스포츠의 순수성을 훼손한다는 비판과 비난은 더 이상 의미가 없을 정도로 현대 사회에서 스포츠와 정치는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한다. 이제는 스포츠 속에 내재된 정치적 해석과 접근이 오히려 현대 스포츠의 존재 의미를 밝히는 유의미한 작업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한 세력이 스포츠를 정책 수단으로 활용하는 형태를 띤다. 그에 반해, 정치권력의 의도적 개입 없이 역사를 통해 축적돼온 특정 사회 현상 속에서 스포츠가 거대한 정치적 의미를 함유하며 대중의 의식 속에 자리매김하는 경우가 있다. ‘엘 클라시코(El Clasico)’라 불리는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라이벌 축구 경기가 그 대표적 경우다.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라는 대립적 기표는 단순히 세계 최고 축구 클럽 간의 라이벌 관계라는 기의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기호체계다. 이 기표는 역사적·사회적 차원에서 끊임없이 기의들을 생산해내는 하이퍼링크적 속성을 갖는다. 카탈루냐와 카스티야의 대결(지역성), 지방자치와 중앙집권의 대결(정치체제), 진보와 보수의 대결(정치이념) 등 다양한 대결 양상이 대립적 기표의 기의들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길항적 성격의 기의들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엘 클라시코를 가장 매력적인 축구 경기로 전환시키는 요소다.


스페인과의 구별짓기

  Catalonia is not Spain! 엘 클라시코 경기가 F.C. 바르셀로나의 홈구장 캄 노우(Camp Nou)에서 열릴 때면 홈 팬들은 플랜카드를 통해 세계에 자신들의 땅 카탈루냐가 스페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과감히 알린다. 이들에겐 유럽의 모체인 로마 문화가 이베리아반도에서 최초로 뿌리내린 지역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12·13세기 아라곤 연합 왕국 시절 지중해 무역의 패권을 장악하면서 유럽 그 어떤 도시보다 화려한 영화를 구가했던 바르셀로나가 곧 카탈루냐의 역사다. 이는 카탈루냐인들로 하여금 8백 년간 아랍 세력의 지배 하에 있던 카스티야 및 다른 이베리아반도 지역에 대해 역사적 차별성을 느끼게 하는 동인으로 작동한다.

   
■ 출처: Pere prlpz

  카탈루냐는 ‘카탈루냐어’에 대한 자부심에 기반해 전 공공기관에서 카탈루냐어 사용을 의무화하는 정책을 펼치는데, 피에르 부르디외(P.Bourdieu)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는 카탈루냐와 스페인 문화와의 ‘구별짓기(Distinction)’다. 구별짓기는 언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중의 반역》(1929) 작가이자 현대 스페인 철학을 대표하는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J.Gasset)는 ‘투우에 대한 이해 없이 스페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2010년 카탈루냐 의회는 투우를 카탈루냐 문화가 아니고 야만적이라는 명목으로 금지시켰다.


엘 클라시코, 정체성의 외침 혹은 저항의 은유

  카탈루냐인들이 엘 클라시코에 저항의 개념을 투사한 계기는 40년간 지속됐던 프랑코(F.Franco) 독재 때문이다. 스페인 내전 당시 카탈루냐는 공화국 정부를 지지했고, 바르셀로나는 공화국의 마지막 임시 수도였다. 하지만 이는 쿠데타를 주도한 프랑코 세력에게 탄압의 빌미를 제공했고, 카탈루냐 민족주의자이자 F.C. 바르셀로나 회장이었던 주셉 수뇰(J.Sunyol)은 내전 중 프랑코 세력에게 총살당하기에 이른다. 이 사건은 F.C. 바르셀로나에 반 마드리드주의, 반 카스티야주의를 뿌리내리게 한 결정적 사건으로 작동한다.

 

   
 

  종전 이후 권력을 장악한 프랑코 장군은 스페인 국가주의에 기반해 철저한 중앙집권주의적 정책을 펼친다. 이 시기 F.C.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인들의 울분을 합법적으로 표출하게 해주는 카탈루냐의 상징이었다. 로제 카이와(R.Caillois)는 《놀이와 인간》(1958)을 통해 인간은 본능적으로 동일한 규칙 하의 놀이에서 이기려는 욕구를 가지고, 승리를 통해 타자에 대한 우월성을 획득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핍박의 대상이던 카탈루냐는 적어도 동일한 규칙이 적용되는 축구 시합을 통해서만은 마드리드로 상징되는 중앙 권력에 대해 자신들의 우월성과 자존심을 보여주고자 했다. ‘성스런 의식’의 전위대로서 F.C. 바르셀로나의 엠블럼은 카탈루냐의 수호성인인 ‘성 조르디 십자가’와 ‘카탈루냐주 깃발’로 구성됐다. 이는 F.C. 바르셀로나가 카탈루냐의 은유이자 그 자체라는 사실의 징표다.


Independentisme Catala

  2017년 10월 카탈루냐 독립운동 당시 클럽 측은 공식 반응을 자제한 반면, F.C. 바르셀로나의 수비수 제라르 피케(G.Pique)와 같은 선수들은 독립운동 지지를 표명했다. 현 맨체스터 시티 감독인 주셉 구아르디올라(J.Guardiola)는 카탈루냐 독립 선언문을 낭독했고, 투옥된 카탈루냐 정치인 석방을 촉구하는 의미로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다녔다.

 

   
 

  그러나 카탈루냐 공화국 선포 후 단 나흘 만에 중앙 정부의 개입과 카탈루냐 내부 사정으로 국가 선포가 무효화 되는데, 이는 독립운동 진행과정이 매우 비체계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오늘날 카탈루냐 독립 움직임 속에는 분명 스페인과의 ‘구별짓기’에 대한 열망이 녹아 있지만, 가장 근본적 이유는 경제적 요인이다. 스페인 국가예산의 20%에 육박하는 세금을 카탈루냐인들이 부담하는데 비해 중앙정부가 카탈루냐에 배당하는 예산액은 전체 예산의 10%가 안 된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독립을 지지하는 카탈루냐인들은 스페인으로부터의 분리 독립이 오히려 경제적 이익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하지만 독립선언 이후 중앙정부는 카탈루냐의 자치권을 박탈했고, 바르셀로나에 위치해있던 다국적 기업 및 대기업들은 대거 마드리드나 다른 지역으로 본사를 옮겼다. 유럽 연합 역시 취지와 정신을 문제 삼아 분리 독립 이후 유럽 연합 가입을 희망하는 카탈루냐 독립운동 세력의 논리를 거절했다.

  그럼에도 중요한 사실은 이때까지 침묵해왔던, ‘스페인 내 최대 자치’를 원하는 다수의 카탈루냐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실제 여론 조사를 보면 완전 독립을 원하는 시민보다 최대 자치를 원하는 비율이 근소한 차이지만 항상 높게 나온다. F.C. 바르셀로나는 라 리가의 틀 속에서 엘 클라시코를 통해 최고의 가치를 창출한다. 동일한 법칙이 카탈루냐에도 적용될 수 있다. 스페인이라는 국가 틀 내부에서 독립 국가에 준하는 자치권을 가지고 자신들의 역사적 유산을 계승·발전시키는 것이 현실적인 미래다. 이 미래 속에서 엘 클라시코는 카탈루냐인들에게는 카타르시스를, 축구팬들에게는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스포츠 스펙터클을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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