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19.9.4 수 00:59
기획학술
[문학] 함께 살아가는 세계를 그려내다김지은 / 아동문학평론가
김규리 편집위원  |  dc88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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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호]
승인 2019.04.30  21:3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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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의 재발견 ③ 그림책의 새로운 흐름
과거 그림책은 교훈적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읽기를 연습시키기 위한 도구로 여겨졌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그림책은 문자텍스트와 시각텍스트가 결합한 예술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아동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영감을 주는 그림책은 독자들에게 미감(美感)에 의한 즐거움은 물론이거니와 깊은 사색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번 기획에서는 그림책의 구성, 표현기법에 관한 지식과 텍스트 분석을 통해 그림책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그림책을 제대로 읽는 기쁨과 즐거움을 느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그림책 이해하기 ② 포스트모더니즘과 그림책 ③ 그림책의 새로운 흐름 ④ 멀티미디어 시대와 그림책

   
 
함께 살아가는 세계를 그려내다


김지은 / 아동문학평론가

  
  최근 몇 년간 세계의 그림책은 그림책 안에 다양성이 얼마나 잘 표현되고 있는가를 주의 깊게 다룬다. 서사와 이미지 모두 이 문제를 진지하게 집중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Coopery Children’s Book Center’의 2015년 조사에 따르면 아동 그림책에 나온 73.3%의 인물이 백인이었으며, 동물·자동차·공룡 등이 12.5%, 다른 피부색을 지닌 사람들은 모두 합해 15%도 되지 않았다. 그림책은 이미지를 통해서 의미를 전달하므로, 독자의 머릿속에 오래도록 특정한 편견을 각인시킬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사회적 영향력을 지닌다. 해외의 출판사들은 창작자의 반편견 의식을 환기하고 책임을 묻는 조항을 출판계약서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인종주의적인 태도나 여성혐오 등이 포함된 작품은 출간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듯, 로라 바카로(L.Vaccaro)는 《세상의 많고 많은 초록들》(2014)로 색에 대한 차별적 태도를 지니기 쉬운 독자들에게 섬세한 충격을 안겨주는 작품을 출간해 칼데콧상을 수상했다. 그의 최신작 《세상의 많고 많은 파랑》(2019)을 읽으면 ‘파랑은 남자의 색’과 같은 편견은 깨끗이 사라진다. 이 세계에는 오직 자연의 다양한 아름다움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편견에 대항하는 새로운 흐름


  여성 인물의 묘사에 차별적 요소가 들어가지 않도록 노력해온 국내 그림책 작가들이 있었다. 이수지 작가는 《파도야 놀자》(2009)를 비롯한 경계 그림책 3부작에서 검은 단발머리의 여성 아동을, 흔히 가지고 있는 아시아인과 여성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는 모습으로 그렸다. 이수지의 주인공들은 모험하는, 도전을 즐기는, 겁이 없는, 늑대와 노는, 야외에서 더욱 즐거운 어린이다. 수용적인, 얌전한, 겁에 질린, 도망가는, 실내에서 관찰하고 조력하는 모습으로 묘사되곤 하는 동양인 여성에 대한 서양 독자들의 편견과 거리가 멀다. 장식이 없는 옷, 바람에 흐트러진 머리카락 등의 묘사는 이러한 인물을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든다.
  김동수 작가는 《감기 걸린 날》(2002)에서 겨울날 오리털을 사람들에게 빼앗기고 추위에 시달리는 오리들을 구해주는 여성 아동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이후 《잘 가, 안녕》(2016)에서 자립적이고 건강한 할머니가 로드킬 당한 생명들의 최후를 돌보는 이야기를 그려냈다. 최근에는 《머리 감는 책》(2018)을 통해 용감한 사자도, 씩씩하게 달리는 말도 머리를 감는 순간만큼은 얼마나 꼼꼼하고 온순한지 보여주면서, 동물에 따라 다르게 부여되는 성역할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꾸밈을 좋아하는 것은 지정 성별과 무관한 개인적 특성이며, 마찬가지로 용맹함이나 투철함도 누구나 지닐 수 있는 장점이라 말한다. 세 권의 그림책에는 초록색 옷에 바지를 입은 단발머리 여성이 등장한다. 이 인물은 작가의 페르소나이자 여성의 외모에 대한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인물이기도 하다.
  백희나 작가의 《장수탕 선녀님》(2012)과 최근 출간된 여러 작가들의 목욕탕·수영장 그림책을 보면 몸을 묘사하는 방식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 《장수탕 선녀님》의 주인공 ‘덕지’ 모녀와 선녀님의 몸은 우리가 목욕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진짜’ 여성의 몸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작가는 스컬피(Sculpey)를 이용해 인물의 몸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여성의 주름살, 뱃살, 늘어진 가슴, 기미와 검버섯까지 재현했다. 특히 이 작품에서 중요한 부분은 어린 여성인 덕지의 몸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백희나는 덕지를 통해 성적 대상화 되지 않은 건강한 여성 아동의 몸을 그려냈다. 최민지 작가의 《문어 목욕탕》(2018) 속 주인공은 벌거벗고 목욕탕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여성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목욕탕 이용객들의 움직이는 뒷모습은 활력이 넘치며, 정면으로 서 있는 주인공에게서는 흔히 맨 몸의 여성에게 주어지곤 하는 ‘수치심’을 찾아볼 수 없다.


다양한 몸을 담아내는 그림책


  정진호 작가는 머리카락이 없는 인물을 자주 그린다. 성별과 연령 등에 대한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인물을 주인공으로 두기 위해서다. 《3초 다이빙》(2018)은 남성 아동의 신체에 대한 편견을 무너뜨리는 작품이다. 근육질이어야 하고 어깨가 넓어야 남자답다는 생각은 이 작품 속의 다양한 몸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바뀐다. 독자는 우리 세계에 다양한 몸이 존재하며, 어떤 몸을 비난하거나 비웃을 수 없다는 것을 그림책을 통해서 배울 수 있다.
  반면, 전준후 작가의 《팔딱팔딱 목욕탕》(2018)은 창작 의도가 다양성을 지지하는 방향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표현에서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목욕탕 나들이는 탈의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여러 가지 몸을 만나는 경험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여기서 짙은 피부색을 한 소수의 인물과 탈모인의 몸이 지나치게 부각되는 것이 이 그림책의 아쉬운 대목이다. 서로 다른 몸들이 어우러지는 훈훈한 목욕탕을 나타내려는 것이 작가의 의도겠지만, 색의 차이가 강조되는 바람에 이 그림책을 통해 독자가 재대상화할 수도 있다는 염려가 생긴다.
  칠레의 작가 솔 운두라가(S.Undurraga)의 《여름 안에서》(2018)는 볼로냐 도서전에서 라가치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 작품 속에도 수많은 사람의 몸이 나오는데, 그들은 해변에 있기 때문에 대부분 신체의 일부를 노출하고 있다. 그런데 작가가 그리는 몸의 선은 기러기를 그리거나 물개, 돌고래를 그리는 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둥글고 부드럽고 유연하게 미끄러지며, 햇빛을 받아 발그레하다는 색조의 공통점을 제외하면 피부색은 모두 조금씩 다르다.
  흥미로운 것은 작가가 그림책 속 인물들에게는 표정을 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작가는 표정을 부여함으로써 인상이 생겨나고 그 안에서 인종의 차이가 간파되는 것을 피하고자 했다. 반면 동물에게는 눈·코·입과 표정을 준다. 인간 중심의 세계 이해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자연 속의 일부 배경으로 사람을 바라보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이 아름다운 칠레 해변에서 주인공은 동물들이다. 사람은 다만 어지러운 배경일 수 있으며, 그들이 이 자연을 독차지하려고 드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작가가 그림으로 전하는 메시지로 보인다.
  그림책은 몸에 대한 접근을 바꿔나가는 것을 시작으로 다양성의 구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성소수자가 주인공인 그림책 《사랑에 빠진 토끼》(2018)나 장애인 아동이 학급의 일원으로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우리동네 택견 사부》(2017)와 같은 작품들은 이런 움직임을 보여주는 시도들이다. 이러한 시도는 점점 더 적극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세계는 같이 살아가는 곳이며, 우리는 차별받지 않아야 할 소중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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