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19.5.3 금 19:51
기획학술
[학술] 기록을 남기지 않은 사람들의 기억 - 사회운동과 구술사최종숙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주의연구소 연구원
정보람 편집위원  |  boram2009@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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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호]
승인 2019.04.30  16:4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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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구술, 하나의 학문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③ 기억의 역사를 기록의 역사로

  구술사는 민중의 체험과 기억을 역사 담론의 장으로 끌어낸다는 점에서 민주적 기능을 한다. 국내에서는 과거사 진상규명을 위한 사회운동으로부터 촉발된 구술사 연구가 소외된 여성사와 민주화 운동의 기록 및 근현대 예술사의 공백을 메우는 중요한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구술사의 역사와 현재를 되돌아보고, 그 성과와 나아갈 방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한국구술사의 전개 과정 ② History에서 Herstory로, 여성의 이야기를 기록하다 ③ 기억의 역사를 기록의 역사로 ④ 근현대 예술사의 공백을 메우다 

기록을 남기지 않은 사람들의 기억
- 사회운동과 구술사 -

   
■ 사진출처 6월항쟁 공식 홈페이지 (www.610.or.kr)

최종숙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주의연구소 연구원

  1980년대 처음 시작된 구술사 연구가 한국 사회와 학계에 안착한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구술사 연구는 학계에서 주변부였다. 그러나 2000년대 중후반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구술사 연구는 하나의 트렌드를 넘어 붐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된 데는 구술사 방법론을 활용한 연구들이 많이 등장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러 국가기관이 대규모 구술채록사업을 추진하고 다수의 연구자가 여기에 적극 호응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회운동 연구 역시 구술사의 강점이 잘 발휘되며 구술채록사업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연구 분야 가운데 하나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구술사와 사회운동 연구의 접목

  오늘날 구술사 방법론이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현실적인 이유일 것이다. 한국 사회는 일제강점기·해방·한국전쟁·군부독재시기 등 격동의 시대를 거쳐왔다. 그동안 많은 공식기록은 소실됐고 의도적으로 폐기처분되기도 했다.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학문의 금기영역은 사라졌고 진실에 좀 더 다가서는 역사서술이 가능해졌지만, 이제는 역으로 그것을 뒷받침해줄 문헌사료가 부족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문헌사료의 부족은 민주화운동사 영역에서 가장 심각하다. 엄혹한 현대사 속에서 압제에 맞서 싸워온 민주화운동은 비합법 내지 반합법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관련 자료들 역시 체계적인 형태로 남겨져 있지 않다. 그렇기에 그 시대적 상황과 맥락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구술은 문헌자료의 공백을 메워줌으로써 보다 생동감 있는 역사서술을 가능케 한다.
  다른 한편, 주류 역사는 국가-민족의 역사다. 그것은 마치 국가와 민족을 구성하는 모든 구성원에게 공평한 몫이 주어지는 역사서술일 듯하지만 실은 권력을 획득한 자, 지배집단, 그리고 그것을 집필한 엘리트 지식인에 편중된 역사였다. 민주화란 바로 이러한 편중을 완화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의 의미는 권력으로부터 배제돼 있던 피억압 민중·소수자·하층민을 역사서술의 대상으로 포괄한다는 것이다.
  물론 1970~80년대에도 ‘민중’은 독재를 끝장낼 ‘변혁의 주체’로 상정됐다. 그러나 당시의 민중은 역사의 주체로 ‘선언’됐을 뿐 이들의 실제 삶이 구체적으로 탐구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민중의 삶에서 출발하는 역사서술은 민주화 이후 이들 민중이 자신의 발로 저항을 시작했을 때, 그럼으로써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본격화됐다고 할 수 있다.
  이들 피억압 대중은 권력으로부터 배제됨에 따라 어떠한 기록으로부터도 배제돼 있었다. 이들은 말 그대로 ‘기록을 남기지 않은 사람들’인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에 대한 역사서술은 문헌자료에만 의존해서는 불가능하다. 이들의 기억에 대한 구술채록이 요청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더불어 구술 및 증언이 때로는 사회운동의 방법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해 둘 필요가 있다. 한국현대사는 국가폭력의 역사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한국전쟁기의 대규모 학살사건, 군부독재시절의 고문·학살·의문사 등 실로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사건사고가 발생했다. 민주화는 전쟁학살 내지는 군부독재체제 하에서 저질러졌던 국가폭력에 대한 진상규명운동이 시작되는 시발점이 된다. 이러한 진상규명운동은 대부분 구술증언과 함께 진행됐다. 반공이 국시였던 군부독재시절에는 이 사건들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돼 있었기 때문이다. 사건의 진상은 관련자들의 기억 속에만 존재했으며, 이들의 증언을 통해서만 외부에 알려질 수 있었다. 전남사회운동협의회와 황석영이 공동 기록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광주5월 민중항쟁의 기록》(1985), 4.3연구소의 《이제사 말햄수다》(1989),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한국정신대연구회가 펴낸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군위안부들》(1993) 등은 모두 이러한 목적으로 나온 구술증언집이자 한국 현대사의 굴곡진 이면을 드러내는 생생한 역사서이기도 하다.

민주화운동 연구와 구술채록 현황

  오늘날 한국 구술사의 양적인 증가는 국가기관 중심의 구술채록이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민주화운동 관련 구술 역시 많이 수집되고 있는데 주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하 사업회)에서 집중적으로 수집하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 등 자유주제의 공모를 통해 구술을 수집하는 기관에서도 관련 구술을 수집하곤 하지만 아무래도 사업회가 압도적이다. 사업회는 2002년 처음 구술채록사업을 시작했고 2018년 현재 700명에 육박하는 구술수집목록을 보유하고 있다. 학생운동, 재야운동을 비롯해 노동·농민·빈민·여성·인권 그리고 해외민주인사들의 구술까지 지역·대학·주요사건·시기·주체·부문단체별로 수집되고 있다. 사건별로는 4월혁명(95건)과 6월항쟁(113건)이 가장 많이 수집됐으며, 그 밖에도 한일협정반대운동(49건), 3선개헌반대운동(19건) 등 1960~70년대를 대표하는 사건들이 포괄됐다. 4월혁명이나 6월항쟁의 경우 전국적인 사건이었던 만큼 지역별 분류를 통해 전국을 아우르려는 시도가 있었으며, 6월항쟁의 경우에는 지역별 구술자 수에서도 균형을 이루고자 했다. 다만 이렇게 수집된 구술자료를 활용한 본격적인 연구가 많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점은 아쉽다. 물론 많은 민주화운동 관련 연구들이 구술사 방법론을 활용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 연구는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대부분 개인 연구자 본인이 직접 수집한 구술자료에 토대한다. 향후 구술채록사업의 확대 못지않게 그것이 어떻게 연구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인가도 고민될 필요가 있다.
  한편, 사업회는 이러한 구술채록작업과 관련해 책자 형태의 증언집·회고록도 출간했다. 가장 먼저 출간된 것은 2003년에 나온 《1974년 4월》이다. 박정희 유신정권에 저항했던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사건 관련자들이 당시 현장에서 겪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증언집은 이후 4편까지 발간됐다. 그 밖에도 인혁당 사건에 대한 현장증언을 담고 있는 제임스 시노트(J.Sinnott, 한국명 진필세) 신부의 회고록 《1975년 4월 9일》(2004), 월요모임 선교사들의 이야기 《시대를 지킨 양심》(2005), 80년대 민주화운동 참여자의 삶을 설문조사와 심층면접조사를 병행해 다룬 《1980년대 민주화운동 참여자의 경험과 기억》(2007) 등이 있다.

구술사 연구의 질적 도약을 위해

  구술사 연구는 오늘날 연구성과물로서도, 수집되고 있는 구술의 양에 있어서도 성황이다. 다만, 구술채록과 구술사 연구가 서로 분리돼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문제다. 이 글에서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만을 다뤘지만 비단 사업회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왜 그러한가에 대해서는 여러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구술채록사업이 특정 주제로 쏠려 있는 현상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문제는 구술채록기관들이 대부분 국가기관이기 때문에 정치적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과도 연결된다. 민주정권 하에서 수집했던 구술목록이 보수정권 하에서 실제 문제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사업선정에도, 질문 문항에도 정치적인 영향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 사업회에서 수집된 구술목록을 보면 4월혁명이나 6월항쟁과 같이 누구나 인정하는 성공한 혁명에 구술자수가 집중돼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활용할 만한 구술이 제한돼 있다고 느낄 수 있다.
구술자료에 대한 접근성 문제도 있다. 사업회의 경우 구술 아카이브를 통해 구술자료를 서비스하고 있지만 모든 부분을 다 공개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개인정보 노출 및 제3자 명예훼손에 대한 법적·윤리적 문제 때문이다. 구술자 본인이 공개를 원한다고 하더라도 공개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구술자료에는 구술자 본인뿐만 아니라 관련된 다른 사람들의 정보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하나의 구술자료를 보기 위해서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결국 구술채록사업과 구술사 연구를 연계시키기 위해서는 수집하는 구술주제를 좀 더 다원화하고 구술자료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들이 필요해 보인다. 또한 구술 아카이브 자료를 활용하는 연구에 연구비를 지원하거나 관련 학술대회 개최를 지원함으로써 연구를 유도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 구술채록과 구술사 연구가 잘 융합됨으로써 사회운동 연구는 물론 구술사 연구도 한 단계 질적인 도약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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