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아 / 사회학과 교수

[교수칼럼]


재난은 같은 결과를 낳지 않는다


이민아 / 사회학과 교수


  세월호 사건은 ‘교통사고’와 같은 것이라는, 지금까지도 망령처럼 우리 주변을 배회하고 있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세월호가 사람(결국엔 국가)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그저 불행한 사고였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그만 잊어버리자는 말과 함께. 그러나 교통사고도 순전히 개인의 실수나 불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교통사고 사망률은 나라 별로 차이가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의 OECD 국가에 비해 높은 수치다. 이는 운전문화·교통체계·사고 처리 시스템 등 여러 사회적 요인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심지어 인간이 결코 통제할 수 없어 보이는 자연재해의 경우에도 그 결과가 온전히 ‘자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재난 불평등》(2016)을 쓴 존 머터(J.Mutter)는 자연재해가 모든 사회에 결코 같은 결과를 낳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연재해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는 재해가 일어난 사회의 시스템·불평등·부패 정도 등 ‘사회적’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일례로 2010년 아이티에서 발생한 규모 7.0의 지진과 칠레에서 발생한 8.8의 지진을 비교하면, 칠레 지진의 위력이 더 컸음에도 불구하고 아이티 지진이 더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 가난의 편중과 부패, 그리고 이로 인한 재해 방지 시스템의 미비 등 그 원인은 ‘자연’이 아닌 ‘사회’에 있었다. 이렇듯 우리는 재난 너머 존재하는 ‘사회’의 영향과 책임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세월호 침몰의 결과가 그리도 참혹했던 것을 그저 재수 없는 교통사고나 지독한 불운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다.
  재난으로부터의 회복도 사회적 맥락을 떠나서 이해될 수 없다. 회복탄력성(Re-silience)은 주로 역경과 시련 이후에 다시 일어나는 개인의 심리적 능력을 칭하는 말이지만, 사회 단위에도 적용될 수 있다. 어떤 국가·사회·공동체가 재난 이후 다시 빠르게 혹은 트라우마를 최소화하며 회복하는가. 2005년 미국 뉴올리언스 지역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강타한 이후로 진행된 많은 연구들은 사회적 수준의 회복탄력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재난으로 사망한 사람들을 충분히 애도할 수 있는 환경,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위로와 도움의 손길, 사람들 간 협력과 신뢰가 있는, 그래서 함께 나아지려 노력하는 사회가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회다. 우리는 얼마나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회에 살고 있는가. 생존자와 유가족에게 공감하고, 사회구성원 간의 높은 신뢰 수준을 바탕으로 서로 협력하여 국가와 사회적 차원에서 함께 노력하고 있는지 묻고 성찰해야 할 것이다.
  다시 4월이다. 세월호 천막은 광화문을 떠났지만 아픔은 여전하다. 세월호를 기억하고, 애도를 표하는 일뿐 아니라 다시는 이러한 아픔을 겪지 않도록 고민하고 나아가는 것, 그것이 상처를 치유하는 길이자 우리 사회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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