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영 / 부산대 교육철학전공 박사과정 수료

[문학] 그림책의 재발견 ② 포스트모더니즘과 그림책

과거 그림책은 교훈적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읽기를 연습시키기 위한 도구로 여겨졌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그림책은 문자텍스트와 시각텍스트가 결합한 예술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아동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영감을 주는 그림책은 독자들에게 미감(美感)에 의한 즐거움은 물론이거니와 깊은 사색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번 기획에서는 그림책의 구성, 표현기법에 관한 지식과 텍스트 분석을 통해 그림책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그림책을 제대로 읽는 기쁨과 즐거움을 느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그림책 이해하기 ② 포스트모더니즘과 그림책 ③ 그림책의 새로운 흐름 ④ 멀티미디어 시대와 그림책


앤서니 브라운 그림책에서 만난 포스트모더니즘


문지영 / 부산대 교육철학전공 박사과정 수료


  철학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침은 물론이거니와, 아동들이 접하는 그림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성 중심의 근대철학 사조에 반(反)해 나타난 철학의 한 패러다임이며, 이성 중심의 사회를 부정하고 해체주의·탈권력적·탈인간화·탈영토화 등을 추구하는 철학이다.
  포스트모더니즘 그림책은 기존의 그림책이 고수해왔던 내용과 형식에서 ‘탈주’를 시도하는 아동 문학의 한 장르를 총칭하며, 인과응보의 결말과 고정된 형식 등에 도전을 시도한 그림책의 장르다. 또한 그림책 구성에서 언어적 기호와 이미지 기호가 주는 관습적인 관념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한다. 회화적으로 ‘다다이즘(Dadaism)’과 ‘초현실주의’의 뒤를 이어 ‘팝아트’의 형식을 추구했고, 내용에서는 다양성의 세계관·인간관·자연관·윤리관 등을 지향한다. 전통적 그림책이 작가의 이야기를 시작부터 결론까지 직선적으로 구성했다면, 포스트모더니즘 그림책은 다양한 기호를 활용한 열린 결말을 통해 폭넓은 독자적 해석이 가능하도록 이끌고 있는 문학의 출현이다.
  포스트모더니즘 그림책 작가 중 대표적인 인물은 앤서니 브라운(A.Browne)이다. 그는 초현실주의 회화작가 조르지오 데 기리코(G.Chirico), 르네 마그리트(R.Magritte), 살바도르 달리(S.Dali)에게 영향을 받았다. 실제로 그의 그림책 다수에서 이들의 작품이 패러디 됐다. 마그리트는 그의 작품 <이미지의 배반>에서 ‘파이프 그림’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텍스트를 기록함으로써 시각적 이미지와 텍스트를 무심하게 연결 짓는 인간의 관념을 깨뜨렸다. 앤서니 브라운은 첫 작품 《거울 속으로》(1976)에서 이러한 마그리트의 작품을 다수 패러디하며 텍스트와 그림을 역설적 관계에 놓거나, 낯익은 오브제를 낯설고 상이한 장소에 옮겨 놓음으로써 ‘관념 깨기’에 주력했다.

 

《꿈꾸는 윌리》(2004)
《꿈꾸는 윌리》(2004)

그림책 속 포스트모더니즘적 철학의 의미

  포스트모더니즘 그림책은 행복·희망·밝음의 내용만을 지향하지 않는다. 앤서니 브라운은 《꿈꾸는 윌리》(1997)에서 달리의 <기억의 지속>과 기리코의 <멜랑콜리아>를 패러디해 시간과 죽음, 욕망과 우울함의 담즙을 통한 멜랑콜리(Malancholy)의 오브제를 다시 ‘유인원’과 ‘바나나’의 해학적 오브제로 변환시켜 놓았다. 플라톤이 어린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것에 대한 경험만 제시할 것을 주장했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담즙의 우울한 정서’를 완전히 외면하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 《숲속으로》(2004)는 숲에서 만난 ‘우울한 영혼’들에 대한 묘사가 사실적으로 표현돼 있어 기존의 그림책이 지니고 있는 ‘밝음’의 정서에 충격을 안겨준다.
  포스트모더니즘 그림책은 단순하게 ‘읽혀지는 책’이라는 그림책의 수동성을 부정한다.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은 독자를 ‘구경꾼’으로 내버려 두지 않고 ‘대화자’로 초청한다. 그는 독자를 다양한 방법으로 그림책의 등장인물과 함께 소통시키며, 독자가 스토리에서 사건의 또 다른 행위자이자 사건의 또 다른 경험자가 되도록 이끈다. 특히 《동물원》(1992)에 등장하는 가족들의 모습은 인간보다 더 인간스러운 동물과 동물보다 더 동물스러운 인간들의 모습을 발견하는 가운데, 《동물원》에 등장하는 가족을 비웃고 있을 독자에게 속표지의 햄스터를 통해 ‘당신은 정말 인간스러운 인간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에는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가 있다. 이는 미셸 푸코(M.Foucault)가 언급한 ‘중첩된 공간’이다. 그곳은 현실세계도 꿈의 세계도 아닌 현실과 꿈의 세계가 인접한 공간으로, ‘감시와 처벌’이 없는 세상이며 자기일탈이 가능한 세상이다. 앤서니 브라운은 자신의 그림책 곳곳에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자유의 공간’ 표현에 정성을 들였다. ‘꽃무늬 벽지’ ‘분홍 소파’ ‘터널’ ‘거울’ ‘문’ 등 그림책에 등장하는 시·공간적 기호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과거사회가 지향했던 감시와 강제, 처벌의 강압이 이뤄지는 도덕적 이상지의 ‘유토피아(Utopia)’를 깨고 포스트모더니즘이 지향하는 개별적 감성의 회복적 공간으로써 ‘헤테로토피아’의 이상적 사회를 제시한다. 앤서니 브라운은 아동들에게 현실과 꿈의 ‘중첩된 공간’인 초월의 세계 ‘헤테로토피아’에서 자기 성찰과 자기 회복이 이뤄져야함을 시사한다.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에서는 모두가 보편적으로 느끼며 생각하고 깨닫게 만드는 이성의 스투디움(Studium) 기호가 아니라 작가의 경험에서 ‘찌르는 듯한 아픔’의 감성인 푼크툼(Punctum) 기호가 자주 사용된다.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오브제나 사건과 상황은 저자가 경험한 어린 시절의 ‘두려움’이었으며, 이를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다. 자신을 찌르는 아픔을 예술로 새롭게 창출한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적 예술이다. ‘생일’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좋은 날’이지만, 앤서니 브라운의 《어떡하지》(2013)에서 주인공 조가 맞이한 친구의 생일은 ‘불안한 감정’을 앞세우고 있다.


‘숨은그림찾기’와 같은 그림책

  포스트모더니즘 그림책의 또 다른 특징은 파라텍스트(Para-texte) 기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특히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은 단순히 텍스트나 그림만으로 그림책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그의 작품에서 텍스트와 그림은 서로 대응하기보다는, 다른 내용의 메시지를 발신한다. 이를 통해 그림책이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는 책’ ‘쉽게 이해 가능한 책’ ‘아동을 위한 책’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리도록 이끈다. 파라텍스트 기법의 그림책은 독자들을 끊임없이 사고하도록 만든다. 이 기법의 그림책은 표지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왜 속표지를 겉표지와 달리했는지, 주인공의 의상과 색상은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프레임의 크기는 왜 다른지, 오브제는 무슨 의미인지 등의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읽도록 한다.
  아동이 추상적 사고를 하지 못한다는 전제를 둔다면, 아동을 위한 철학의 발전은 불가능의 영역일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불가능’에 대한 ‘가능성’을 활짝 열어둔다. 그것은 ‘그림책으로 철학하기’가 성인보다 아동에게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에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을 담은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은 성인이 발견할 수 있는 기호의 해석보다 아동이 질문하고 발견할 수 있는 ‘숨은그림찾기’의 기호와 그림책의 구성요소가 더 풍부하다는 것이다. 이에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은 ‘그림책을 통한 아동 철학’을 연구함에 적절한 대상임이 틀림없으며,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에서 나타난 포스트모더니즘 연구가 앞으로 더 활발히 이뤄질 것을 기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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