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플레이어와 에이전트의 복잡한 역학관계

  ■ 인터랙티브 매체의 서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AR·VR을 포함한 인터랙티브 매체 제작에 있어, 스토리 요소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는 늘 머리를 아프게 한 과제다. ‘스토리’를 강조하면 선형적 구조로 이어져 ‘상호작용적 측면’이 약화된 경험이 많다. 처음엔 두 측면의 조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매체에 따른 서사 전략 혹은 서사 방법론 자체가 근본적으로 달라야 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으로 바뀌었다. 사실 AR·VR·비디오 게임·인터랙티브 드라마·소셜 필름 등은 모두 인터랙티브 매체라 불리나 세부적인 인터랙티브 방식, 사용자 경험 등은 매우 판이하다. 그런 점에서 인터랙티브 매체의 서사학은 각 장르별 맞춤형 적용을 요구하며, 이러한 서사학의 확장은 소설이나 영화와 같은 자기 완결형 매체의 서사학의 발전에도 좋은 자극이 될 것이다.

  ■ 본 연구의 필연적 질문은 ‘간극’이라 했다
  ‘서사’를 ‘누구, 혹은 무엇에 의해 다시 서술된 이야기’라 정의한다면 서사에서 간극의 발생은 필연적이다. 다시 서술된 이야기는 원래의 이야기나 서술대상과 결코 같을 수 없다. 일부 루돌로지스트들은 논쟁 초기 게임의 서술은 플레이어에 의해 현재 진행형으로 이뤄지므로 소설 등의 자기 완결형 매체와 달리 간극이 발생하지 않거나 본질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컷-씬 및 스토리와 담론의 관계를 비롯해 디지털 인터랙티브 영상 또한 다양한 서사 요소들 사이의 간극을 풍부하게 포함하게 됐다. 그런 점에서 서사에서 등장하는 간극은-스토리와 담론 시간 사이의 간극이든, 등장인물과 독자 정보량 사이의 간극이든-서술 대상을 낯설게 보도록 만드는 것 자체를 예술의 목적으로 간주했던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서사 매체를 서사 매체답게 만드는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라 생각한다.

  ■ 글로벌 에이전트·음모자(Intrigant)라는 표현처럼 본 논문은 플레이어의 수행성에 대해 논하지만, ‘최종 심급 서술자가 모든 건 총괄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든다. 로컬 플레이어는 정말 자율성을 갖고 있는가
  디지털 인터랙티브 서사의 에이전트 개념이 인공 지능 시스템과 유사함은 흥미롭다. 인공지능 시스템의 로컬 에이전트 또한 시스템의 일부로 소셜적으로 작동하며 ‘상대적 자율성’을 갖는다. 플레이어 에이전트·서술 에이전트로서의 로컬 에이전트는 당연히 자율성을 갖는데, ‘문서 작성 프로그램’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우리는 프로그램의 아이콘을 클릭해 ‘새 글’, ‘불러오기’를 선택하고 키보드 자판 규칙에 따라 타이핑한 뒤 저장한다. 모든 규칙·프로세스는 중앙연산장치에 의해 수행되나 어떤 글이 작성될지는 사용자 에이전트에게 달려있다. 아울러 올셋의 ‘음모자-피음모자’론은 한명의 사용자가 사전 설계된 경로를 탐색하는 하이퍼 텍스트나 액션 어드벤처 장르 게임을 주요 대상으로 성립됐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다수의 플레이어가 동시에 하나의 인터랙티브 영상(게임)에 참여하는 오늘날 현실에 비춰보면 로컬 에이전트의 자율성에 더 방점이 찍힌다.

  ■ 신세대 인터랙티브 영상 매체를 다루기 위해 염두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본 연구는 확장적 서사학의 입장에서 루돌로지 진영과 반대되는 포지션을 취했지만 기실 플레이어의 육체성 및 매체적 속성에 대한 루돌로지스트들의 연구는 서사학의 발전은 물론 게임 및 디지털 인터랙티브 영상의 학적 기초를 쌓는데 크게 기여했다. 가령 키보드·마우스의 매개 없이 신체를 움직여 시스템과 상호작용하는 VR의 매체적 특성은 무엇인가. 실재 정보에 가상의 정보를 증강하는 AR 영상의 서사는 허구 스토리 세계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기존의 인터랙티브 영상 서사와 어떻게 다른가. 이러한 질문은 서사학이 고정된 서사물에 대해 완결된 연구가 아니라 매체 확장에 따라 끝없이 자기 변모해야할 학문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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