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희 / 영상학과 박사

중앙아카데미아: 『디지털 인터랙티브 영상의 서사 특성 연구 - 서술하는 ‘나’와 서술 에이전트를 중심으로』 김대희 著 (2019, 첨단영상대학원 영상학과 박사논문)

  본 지면은 학위 논문을 통해 중앙대 대학원에서 어떤 연구 성과가 있는지 소개하고, 다양한 학과의 관점을 상호 교류하고자 기획됐다. 이번 호에서는 영상학과 김대희의 박사 논문 『디지털 인터랙티브 영상의 서사 특성 연구 - 서술하는 ‘나’와 서술 에이전트를 중심으로』를 통해 수많은 인터랙티브 영상을 마주하함에 있어 앞으로 새롭게 인식돼야하는 서사구조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게임의 서사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하는가


김대희 / 영상학과 박사

  게임을 비롯한 디지털 인터랙티브 영상에서 서사의 역할 및 특성에 대한 학계의 논쟁은 뿌리 깊다. 내러톨로지스트(Narratologist)로 통칭되는 자넷 머레이(J.Murray), 브렌다 로렐(B.Laurel)과 같은 학자들은 디지털 매체의 등장 이전부터 프랑크 카프라(F.Kafra)의 영화나 보르헤스(J.Borges)의 소설에서 ‘다중 분기 서사’가 존재했다는 역사적 맥락을 짚으며, 게임 또한 서사 매체이므로 스토리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루돌로지스트(Ludologist) 진영인 제스퍼 율(J.Juul), 에스펜 올셋(E.Aarseth) 및 곤잘로 프라스카(G.Frasca)와 같은 학자는 플레이어와 상호작용하는 시뮬레이션 환경은 고유의 특징을 갖기 때문에, 게임은 자기 완결적 서사 매체와는 뚜렷이 다른 독자적 매체이며 서사적 측면은 부차적이라고 반박했다.

  양 진영의 논쟁은 《First Person: New media as story, performance, and game》(2004) 출간을 계기로 게임에서 ‘서사’와 ‘놀이’가 공존한다는 점을 확인하며 게임학을 학적 영역으로 확립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디지털 인터랙티브 영상이 전통적 매체와 공유하고 갈라서는 지점을 엄밀하게 규명하지 못한 한계를 지녔다. 본 연구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디지털 매체의 물질적 특성에 기반해 기존 서사학의 제 범주를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디지털 인터랙티브의 서사적 특성을 규명하고자 했다.

  우선 자넷 머레이, 이안 보고스트(I.Bogost)는 디지털 인터랙티브 영상의 매체적 특징을 ‘과정 추론적’ 혹은 ‘절차적 수사학’이라 표현한다. 전통적 매체와 달리 디지털 매체는 ‘규칙에 기반한 재현’과 ‘상호작용’을 통해 플레이어를 설득하며, 플레이어의 참여로 서사적 세계가 창조된다. 올셋은 플레이어가 직접 자신의 육체를 활용해 텍스트를 구축하는 현상에 대해 ‘에르고딕(Ergodic)’이라 명명했다. 이는 디지털 인터랙티브 영상의 플레이어성(性)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던지는데, 인터랙티브 영상의 플레이어는 시스템 외부 플레이어 자신과 시스템의 일부로 기능하는 플레이어 에이전트로 분열된다.


서술자에서 서술에이전트로

  이러한 매체 특성을 전제하며 본 연구는 서사학의 핵심 주제인 ‘서술자’를 먼저 규명했다. 즈네뜨(G.Genette)는 이전까지 흔히 거론됐던 인칭에 따른 구분이 모호함을 지적하며, 서술자가 등장인물의 한명으로 등장하는지 혹은 스토리 외부에서 발화하는지에 따른 구분을 제안했다. 그러나 즈네뜨의 제안은 서술행위가 언어 중심으로 이뤄지지 않는 영화나 디지털 인터랙티브 영상에 적용하기엔 한계를 지닌다. 또 다른 문제는 다양한 유형의 서술자 각각이 수행하는 ‘서술’이 서사에서 차지하는 심급(Instance)이 분명치 않기에, 처음 제기한 분류 기준 자체가 모호해진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서술하는 ‘나’는 이러한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마르셀 프루스트(M.Froust)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913)의 첫 장면에서 어느 날 잠자리에서 일어난 ‘나’가 ‘어린 시절의 나’를 회상한다. 이때 ‘어린 시절의 나’를 ‘회상하는 나’를 ‘서술하는 자’는 누구인가. 그 서술자는 또 다른 ‘나’인가, 내포 작가 혹은 작가 자신인가. ‘문법적 관점에서 보면 화자(서술자)는 항상 1인칭’이라는 미케 발(M.Bal)의 지적은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소설에서 주어가 ‘그’이든 ‘나’이든 상관없이 모든 문장의 앞에 ‘나는 말한다’가 전제된다면, 이제 중요한 질문은 “서술하는 ‘나’는 ‘누구’인가”가 아니라 “‘나’는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가”로 수정돼야 함을 뜻한다. 즉 미케 발은 ‘무엇’, 다시 말해 최종 심급의 서술자를 사람이 아닌 서술 에이전트로 이해할 것을 제안한다. 르윈(J.Lewin)에 따르면, 서술 에이전트는 ‘서사적 진술이 생성되는…서사 매트릭스’이자 ‘서사 내의 통로 또는 매개, 즉 주체’로 정의된다. 인격적 존재로 혼동하기 쉬운 서술자와 달리 서술 에이전트론은 매체의 물질성을 반영하며 ‘서술의 권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묻는다.

 

 

 
 


문학의 시간과 디지털 인터랙티브 영상의 공간

  최상위 서술 심급(서술 에이전트)으로부터 서술 권한을 위임받은 ‘세헤라자데’를 거쳐 다시 각각 에피소드의 주인공으로 서술 권한이 위임되는 《천일야화》가 보여주듯 문학의 경우 통상 시간 층위에 따라 서술의 위임이 일어나는 반면, 게임을 비롯한 인터랙티브 영상에선 주로 공간 관계에 따라 서술의 위임이 일어난다. 대표적으로 게임 〈스타크래프트〉(1998)의 플레이어들은 사전에 약속한 맵에서 자신에게 할당됐거나 자신의 유닛이 활동하고 있는 영역의 서술 권한만을 글로벌 서술 에이전트로부터 위임받는다. 서술 권한이 미치고 있는 영역은 좌하단의 미니맵에 형광색으로 표시돼, 플레이어로 하여금 자신의 서술 권한을 확대하기 위한 투쟁을 하도록 유도한다. 개별 플레이어의 서술 에이전트는 다른 플레이어의 서술 에이전트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각자의 스토리를 서술하며, 각자의 스토리는 글로벌 서술 에이전트에 의해 조정·통합된다.

  이러한 공간 중심의 서술 위임은 필연적으로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서술할 수 있는 ‘자유도’와 그 각각의 행위 결과로 출현하게 될 서사의 ‘일관성 확보’ 사이의 딜레마를 발생시킨다. 전자가 플레이어 각각의 서술 에이전트 측면에서 제기된다면, 후자의 일관성 확보는 글로벌 서술 에이전트의 과제다. 딜레마 해결을 위해 인터랙티브 영상의 주체(시스템 및 플레이어)들은 사회적 관습·윤리·도덕 등의 무형적 요소를 포함한 규칙(맵, 종족 선택 등)에 합의하는 과정을 거치고, 이러한 규칙에 대한 합의는 외적 디에제틱(Diegetic) 단계에서 주로 이뤄진다. 디지털 인터랙티브 영상의 표시 층위는 스토리 세계에 속하는 내적 디에제틱 요소보다 캐릭터 등을 설정하는 외적 디에제틱 요소에 더 영향을 받는다. 이에 따라 모달 및 명령창 등이 포함된 인터페이스 공간이 매우 중요해지며 이는 디지털 인터랙티브 영상이 갖고 있는 서사적 특징이다.

  또한 ‘플레이어의 의지가 서사에 반영되는 형식과 프로세스’란 문제 해결을 위해 에이전시와 에이전트 개념이 다시 도출된다. 디지털 인터랙티브 영상에서 에이전시와 에이전트는 시스템과 시스템의 각 요소, 그리고 플레이어 에이전트가 상호작용하는 ‘소셜’의 특성을 갖는다. 앞선 두 개념은 각각 플레이어가 시스템으로부터 즉각적이고 특정 맥락에서 반응을 일으키는 ‘로컬 영역’과 플레이어 행위로 축적된 경험이 전체적·결과적으로 나타나는 ‘글로벌 영역’으로 나뉜다. 글로벌 서술 에이전트로부터 로컬 단위로의 서술 위임은 외적 디에제틱 화면을 통한 규칙 합의와 함께 공간 단위로 효력이 발생하며, 그 위임과 위임 회수의 구체적 양상은 인터랙티브 영상의 장르별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디지털 인터랙티브 영상의 고유성을 찾아서

  아울러 본 연구는 서사 층위의 경우, 매체의 물질적 특성을 반영해 스토리·담론·서술행위로 구분된 기존의 3층위로부터 텍스트 층위를 담론에서 구분해 4층위를 새로이 제안했다. 같은 맥락에서 서사 시간의 경우 플레이어의 사용 시간이 기록되는 디지털 매체의 특성을 반영해 스토리·담론·체험의 세가지 시간으로, 공간의 경우 플레이어의 서술 공간인 인터페이스 공간을 추가해 스토리·담론·인터페이스의 공간으로 구분했다.

  본 논문에서는 총 4편의 디지털 인터랙티브 영상이 분석됐다. 그 결과 인터랙티브 영상의 장르·작품에 따라 서술의 위임·회수 방식은 다양하게 나타나며 작품 고유의 배경 서사와 플롯이 스토리 세계의 전개뿐만 아니라 인터페이스 공간 구성, 사용자 경험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출처: <오버워치(Overwatch)>캡쳐화면.
 ■출처: <오버워치(Overwatch)>캡쳐화면.

  가령 식민지 정복이 메인 플롯인 〈스타크래프트〉의 승자는 무한대의 서술 권한을 부여받는 반면, 비밀 영웅 조직의 임무 성공 여부가 메인 플롯인 〈오버워치〉(2016)의 경우 승패가 갈린 순간 즉각적으로 위임의 회수가 일어난다. 극적 요소가 풍부한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1〉(2015)은 플레이어의 혼란 방지와 일관된 스토리 구축을 위해 영화를 재매개하는 한편, 분석 대상 중 가장 빈번하게 서술 권한을 위임·회수하지만 즉흥극과 유사한 인터랙티브 드라마 〈파사드〉(2005)는 서술 권한 회수가 게임이 종료하는 순간에만 발생한다. 그 외 캐릭터가 죽는 순간 징벌 수단으로 상대 플레이어의 시점에서 컷-씬을 리플레이하는 〈오버워치〉와 현재 시점에서 과거 스토리가 생성되는 〈파사드〉의 경우 등 자기 완결적 매체에서 구현되기 어려운 인터랙티브 영상만의 고유한 서사 전략을 확인할 수 있었던 점은 본 연구의 성과이자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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