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민 / 유럽문화학부 독일어문학전공 강사

 [교수칼럼]

 

개강을 앞둔 몇 가지 단상


최동민 / 유럽문화학부 독일어문학전공 강사


  시간이 정신없이 흘러 방학이 벌써 끝나버렸다. 그렇지만 방학이 빨리 지나갔다는 사실은 시강강사에게 꼭 나쁜 일 만은 아니다. 강의료가 지급되지 않는 방학이란 남은 곡식이 똑 떨어지는 춘궁기나 다름없으니 시름 속에서 보내다 보면 시간의 흐름은 오히려 더디다. 나는 다행히도 계절학기 수업을 진행한 덕에 방학 기간을 그런대로 배 주리지 않고 나름 생산적으로 보낼 수 있으니 행운이었다. 그러나 행운은 모든 강사들에게 찾아오지 않는다. 요즘 대학가에는 ‘강사법의 유령’이 맴돌고 있어 더욱 그렇다.
  강사법을 준비하신 강사단체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해고의 바람이 여기저기서 불고 있다. 학과 혹은 단과대로 일종의 ‘살생부’가 만들어지고 강사사회는 몇 개의 카테고리, 즉 출신 대학·나이·경력·해외학위 보유 여부에 따라 위계적으로 분류돼 정리되고 있다. 모교 출신의 적당히 젊고 제법 경력이 있는 해외 박사일수록 생존 확률이 높다. 연배가 높으시거나 갓 학위를 받은 학문후속세대에게 강사법은 일종의 ‘좁은 문’으로 작동한다.
  가난한 강사들이 으레 그러하듯 며칠 전 나도 끼니를 때우러 집 앞 분식점에 갔다. 어느새 2000원이던 일반김밥의 가격이 2500원으로 올라 있었다. 최저임금도 많이 올랐고, 건물세도 오르니 의당 그러려니 하고 어묵과 함께 사가지고 나왔다. 그러다 문뜩 떠올려보니 내가 대학원 석사과정에 다니던 10년 전에도 강사료는 시간 당 5만원이었는데, 아직도 강사료는 그대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김밥은 한 줄에 1000원이었는데 말이다. 김밥 값이 2.5배 오르는 동안 강사료는 잠을 잤다.
  상황이 이런데도 강사들 간의 연대나 집단적 개선 요구는 불가능에 가깝다. 이는 무엇보다 강사들의 자기 정체성이 분열돼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강사들은 시간강사직을 전임이 되는 과정에서 거치는 임시신분으로 생각하지 항구적 신분이나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요컨대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전임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현재의 임시적 상황을 개선하는데 큰 관심이 없다.
  어제까지 함께 소주를 마시며 강사 신세를 한탄하던 지인 A가 대학에 임용이 되자 옛 시절은 까마득하게 잊은 듯 근무환경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다음 학기 임용 여부가 학과에서 전화가 오는지에 달린 현재의 대학구조 속에서 저항을 통한 이득 또한 없다. 오지 않는 전화를 하릴없이 기다리는 일이란 얼마나 괴로운가.
  나를 포함한 주위의 많은 강사들은 8월부터 시행될 강사법을 긴장된 시선으로 추적하고 있다. 강사법이 과연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까? 약간의 기대와 불안, 그리고 패배감 속에서 새 학기가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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