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웅 / 서울평화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스포츠와 정치 ① 메가 스포츠 이벤트를 통한 스포츠 외교]

스포츠는 우리를 열광케 하고, 열광은 대중을 부른다. 때문에 정치인은 스포츠를 도구로 활용하고자 한다.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우리팀’과 ‘상대팀’을 나누며, 경쟁과 규칙의 소용돌이 속에 위치한다. 따라서 스포츠는 결코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 스스로 애국주의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월드컵을 보며 왜 자국을 응원하게 되는가. 쉽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 경기지만, 대학원생으로서 스스럼없이 불안정한 열광 속으로 걸어가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메가 스포츠 이벤트를 통한 스포츠 외교 ② 민족주의 대 초국가주의-현대 스포츠의 논쟁 ③ 카탈루냐의 염원-정치적 갈등과 스포츠에의 열정 ④ 스포츠와 몸의 정치학


메가 스포츠 이벤트와 스포츠 외교

정기웅 / 서울평화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월 9일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 1주년을 맞아 자신의 페이스북에 메시지를 남겼다. “우리가 함께 굴린 작은 눈덩이가 평화의 눈사람이 되었습니다…평화의 물꼬를 튼 평창올림픽은…세계인들에게 아주 특별히 기억될 것”이라며 평창 올림픽과 이후에 이뤄진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어쩌면 많은 시간이 흐른 후 2018년의 평창은 역사를 바꾼 ‘결정적 분기점’으로 평가받게 될지도 모른다. 향후의 평가가 어떻게 이뤄지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평창올림픽이 메가 스포츠 이벤트로서 스포츠 외교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다시 한번 환기시켰으며, 그 파급효과는 아직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스포츠 외교란 무엇인가

  오늘날 스포츠는 어느 사회에서나 잠재적인 정치적 이슈이며, 스포츠에 내재된 문화적 주제는 언제든지 정치적 의미로 전환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잠재력을 갖는다. 그런 까닭에 ‘스포츠는 훌륭한 정치·외교적 수단으로서 작동한다’는 주장에 대해 강력한 부인을 행하기란 쉽지 않다. 스포츠가 정치·외교적 수단으로 유용성을 확보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스포츠가 표방하는 표면적 비정치성과 중립성, 그리고 스포츠가 어떠한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로 사용됐을 때 수반되는 책임의 경미성에 기인한다.

  스포츠는 특히 외교 분야에서 매우 다양한 도구적 유용성을 표출한다. 외교를 정의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존재하며, 외교의 실제적 전개 양상 또한 매우 다양한 까닭에 ‘정상외교·실리외교·통상외교·세일즈 외교·공공외교’와 같은 표현들이 사용된다. ‘스포츠 외교’는 이와 같은 외교의 다양한 양상을 나타내는 표현들 중 하나이며, 오늘날 외교적 방법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지만 스포츠 외교란 무엇인가에 대해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는 보편적 개념 정의를 찾기란 힘들다. 스포츠 외교 분야의 주요 저자인 스튜어트 머레이(S.Murray)는 “만약 전통적 외교가 국가의 외교 정책적 목표를 위한 수단이라면, 스포츠 외교는 그와 같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들을 위한 수단들 중의 하나”라고 규정했다. 본 글의 필자는 스포츠 외교를 “국익달성을 위한, 스포츠를 전면에 내세운 대외정책 혹은 스포츠를 통한 대외관계의 처리”라고 정의한다.


스포츠 외교의 성공 신화?

  20세기 이후의 외교사를 되돌아보면 스포츠가 경직된 국가 간 대화를 촉진시키거나 우호의 증진을 위한 매개체로 사용된 많은 사례들을 찾아볼 수 있다. 가장 성공적인 사례는 1970년대 냉전 시기 미·중 간의 외교적 관계수립을 위해 동원된 탁구의 경우다. 소위 ‘핑퐁외교’로 불리는 이 역사적 사건은 스포츠가 국가 간 외교적 교착(Deadlock) 상태를 전환시키는데 얼마나 효과적인가를 잘 보여준다.

  ‘핑퐁외교’의 성공 이후 세계정치 무대에서 스포츠의 도구적 유용성은 부풀려 선전됐고, 스포츠 외교의 성공 신화를 탄생시켰다. 이러한 신화는 21세기에 들어 소프트 파워 개념의 등장 및 공공외교의 확산과 결합돼 스포츠의 도구적 유용성을 부각시켰다. 하드 파워가 아닌 소프트 파워의 증진은 국가 이미지 고양, 정체성의 변화 등을 통해 이뤄지고 스포츠는 이와 같은 목적 달성을 위한 훌륭한 도구라는 믿음이 확산됐다. 김연아·박지성·손흥민과 같은 셀러브리티를 통한 국가 이미지 고양 역시 소프트 파워로서 스포츠의 단면이다. 그러나 항상 성공으로 끝나는 시도란 존재하지 않는다. 스포츠 외교의 실패 사례와 여타 상호작용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져 왔다. 인종차별에 대항한 1968년 멕시코 올림픽의 블랙 살루트(Black Power Salute) 퍼포먼스는 저항적 의미에 있어선 성공적이었지만, 대항한 선수들이 소속된 국가(와 국가행위자)의 입장에선 그렇지 못했다.

 

 
 


향후의 스포츠 외교는

  스포츠는 미래에도 여전히 매력적인 외교적 도구로 작동할 것이다.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스포츠를 외교적 도구로서 작동하게 만드는 기제와 스포츠 외교의 주요행위자들 및 그들 간의 상호작용이다. 특히 국제무대에서 국가행위자뿐만이 아닌 비국가행위자들의 영향력이 증대하는 오늘날 스포츠의 도구적 사용이 어떠한 양태를 표출할 것인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스포츠 외교의 주된 행위자는 국가였고, 국가는 스포츠의 활용에 크게 세 가지 방식을 채택해 왔다. 첫째, ‘이미지 확장’의 측면이다. 국가는 스포츠 경기 참여나 메가 스포츠 이벤트 개최를 통해 스스로 이미지를 다듬거나 소모해 국가 브랜드를 확장한다. 둘째, 스포츠 경기 참여를 외교적인 의사표명 방식으로 사용한다. 이는 자국이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국제 사건에 대해 경기의 참여 여부로 의사를 표명하는 방식이다. 셋째, 타국과의 스포츠 경기에서 의도적 대립각을 형성해 국가 정체성을 강화하거나 스포츠 경기를 타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국가행위자가 국제 스포츠 무대의 주된 세력이었던 시절은 이미 과거가 됐다. 오늘날 국제무대에서는 비국가행위자 역시 국가행위자 못지않은 존재감을 과시한다. 더불어 스포츠 외교의 무대로 가장 빈번히 선택됐던 올림픽과 월드컵 같은 메가 스포츠 이벤트 또한 변화 과정을 겪고 있다. 올림픽의 경우 조직의 문제점과 운영상의 어려움, 그리고 국가행위자들과 스포츠 세계 행위자들의 이해관계 상충 등으로 인해 미래의 영광에 대한 확신이 쉽지 않다. 또 월드컵으로 대표되는 단일 국제경기단체가 주관하는 메가 스포츠 이벤트들 또한 조직의 폐쇄성과 자본에 대한 의존 심화, 경기개최를 둘러싼 국가행위자들과의 이익 배분, 안전보장, 후속세대 양성 등의 문제로 향후 전망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더불어 끝없이 높아져 가는 선수의 몸값과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스포츠 시장의 확장은 스포츠의 외교적 활용이 앞으로 쉽지 않을 것임을 예측하게 한다.

  스포츠의 정치·외교적 도구로서의 사용은 국가 행위자의 영향력이 강대했던 시절 절정에 달했으나, 지금까지와 같은 효용성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인지, 혹은 그 도구적 사용을 주관할 국가 행위자들의 영향력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매우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한 가지 전망할 수 있는 것은 스포츠의 중립성 표방에도 불구하고 도구적 유용성이 널리 인정받아 왔듯이, 향후의 모습도 이러한 틀 속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단, 지배적 행위자나 그와 관련된 행위자들 간의 단위나 관계 변화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향후의 연구는 이러한 변화에 집중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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