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문호 / 《인권이 없는 직장》 저자

 [특집] 회색지대의 폭력-직장 내 괴롭힘

 

21세기 수많은 대학원생은 노동자라는 정체성을 동시에 지닌다. 이에 본지는 대학원생의 근무현장에서 발생하는‘직장 내 괴롭힘(Workplace Harassment)’에 주목했다. 직장 내 괴롭힘은 갑을노동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법적 방어막이 없어 규제하기 어려운 직장 내 폭력이 돼 버렸다. 대학원생에게도 필요한 ‘직장 내 괴롭힘’이란 개념의 법적 근거를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을에게도 법적 안전망을
-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해 -

류문호 / 《인권이 없는 직장》 저자 

  최근 대한항공, 위디스크 등 대기업 총수들의 굵직한 직장 내 괴롭힘(Workplace Harassment)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소위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사회적 움직임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종래 직장 내 괴롭힘은 <남녀 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등 일부 법률에서만 제한적으로 규정하고 있어 실제 노동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법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웠다. 이에 지난 1월 15일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내용을 주된 골자로 하는 근로기준법 제76조의2와 제76조의3이 ‘신설’됐고, 오는 7월 16일 시행을 앞뒀다. 다수 언론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제정된 것처럼 보도했지만, 실제로는 기존 근로기준법 내에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내용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근로기준법을 ‘개정’한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나라에는 여전히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라는 법률은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직장 내 괴롭힘이란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노동 현장의 사건들은 다양하다. 폭행·모욕 등 명백하게 위법한 행위부터, 교묘하게 왕따를 시키거나 불필요한 잔무를 시키는 것과 같은 윤리적으로 비난할만한 행위 등도 있다. 사람들을 대량으로 퇴출시키는 구조조정이나 경영상 해고 등도 사용자의 조직적인 직장 내 괴롭힘 현상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개정 근로기준법 제76조의2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라고 직장 내 괴롭힘을 정의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2월 21일에 발표한 《직장 내 괴롭힘 판단 기준과 예방·대응 체계에 관한 매뉴얼》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은 지위나 관계의 ‘우위’를 이용한 경우에 해당하고 사회통념에 비춰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아야 한다.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는 행위도 직장 내 괴롭힘이다. 폭행과 협박, 반복적인 욕설과 폭언, 음해, 심부름 등 사적 용무 지시, 정당한 이유 없이 상당 기간 일을 주지 않는 행위뿐만 아니라 음주, 흡연, 회식에 대한 참가를 강요하는 행위와 인터넷 또는 사내 네트워크 접속 차단 행위 등도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 고용노동부의 의견이다.


직장 내 괴롭힘에 주목해야 할 필요성

  근로자에게 직장이란 업무 수행의 성취와 그에 따른 금전적 보상을 받는 곳이기도 하지만 일상의 대부분을 보내는 삶의 터전이다. 업무 관계뿐만 아니라 동료와의 인간관계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를 겪을 수밖에 없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직장인 4명 중 3명(73.3%)이 최근 1년간 직장에서 존엄성이 침해받거나 적대적·위협적·모욕적 괴롭힘을 한 차례 이상 겪었다. 3명 중 2명(66.9%)은 직장 내 괴롭힘 때문에 이직을 고민한 적이 있고, 심지어 최근 1년 안에 직장을 그만둔 경험이 있는 직장인 중 절반 가까이(48.15%)가 직장 내 괴롭힘 때문에 사직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 내 괴롭힘은 정신적 고통을 넘어 신체적으로도 발현된다. 뇌심혈관계 질환, 근골격계 질환, 만성통증, 만성피로증후군, 두통, 당뇨 등 다양한 질병이 이에 해당한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고통은 돌연사나 과로사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나아가 자살이나 직장 동료와 같은 제3자에게 해를 가하는 극단적 결과로 이어지기도 해 쉽게 간과할 수 없는 노동시장의 새로운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그럼에도 개정 근로기준법 제76조의2는 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만 규정하고 있을 뿐 처벌 규정이 없고, 그 외에는 실체법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직접적으로 규율할 수 있는 법률이 없다. 명백하게 폭행죄나 모욕죄에 해당하는 행위에 대해 고소를 하는 등 기존의 형법으로 문제해결이 가능하지만, 폭행이나 모욕에까지는 이르지 않은 분명하게 위법하지 않은 행위는 법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없다. 그런데 최근 직장인들이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스트레스와 고통을 호소하는 사건들 대부분이 폭행이나 모욕 등에는 이르지 않는 경우라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규율은 사실상 ‘법적 공백’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해결이 실질적으로 어려운 이유

  우리나라는 근로자에게 괴로움을 줄 수 있는 상급자의 언행이 정당한 지휘·명령권의 행사라는 명목으로 합리화되는 경우가 많다. 직장 내 괴롭힘을 집단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왕따나 따돌림이라는 지엽적 문제로 치부해 버리기도 한다. 최근 문제가 되는 직장 내 괴롭힘 현상들은 대부분 ‘은밀하고 교묘하게’ 직장인들에게 괴로움과 고통을 주는 행위로 그 위법성이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위의 국가인권위원회의 보고서에서 직장 내 괴롭힘의 피해자라고 응답한 직장인의 53.1%가 “업무와 관련해 나에게 사소한 일에 트집을 잡거나 시비를 건 경우”를 자신이 당한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답했다.

  직장 내 괴롭힘이 ‘근로자에게 어떤 정신적인 침해나 손해를 입혔는가’라는 인과관계를 명백하게 밝혀내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한 사실이 분명해도, 그 정도는 누구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감내해야 할 일이라고 묵살해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직장 내 괴롭힘과 대학원 문화

  필자도 석·박사과정을 거치며 학생, 연구조교, 강사 등 여러 위치에서 대학원 문화를 경험했다. 하루는 학과 교직원이 반복적으로 필자를 마치 자신의 부하 직원처럼 업무를 시키는 것에 화가 났다. 필자는 “나는 공부를 주 업으로 하는 대학원생이지 당신의 직원이 아니다”는 취지로 항의했고, 결국 그 일로 대학원장실까지 가게 됐다. 그 이후, 교직원에게 협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일부 교직원들이 대학원생을 ‘하대’하는 경향은 개선되지 않았다.

  교수님과 함께하는 대학원 생활도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다. 훌륭한 인품을 가진 교수님일지라도 그 관계는 사실상 수직적일 수밖에 없다. 대학원에서 진로와 관련된 모든 사항은 지도교수가 결정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와 같은 대학원 문화가 직장 내 괴롭힘의 범주에 속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원에서 학문 이외의 다양한 일을 하는 것도 ‘노동’의 범주에 속한다는 점에서, 대학원생들도 이제 대학원 문화 속에 스며들어 있는 오랜 관행과 문화들 중에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그와 같은 문제점이 일회적이지 않고 지속· 반복적으로 계속되는 행위라면 법적 차원에서든 대학원의 조직적 차원에서든 해결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나의 노동을 팔아도, 나의 영혼을 팔수는 없다

  유명 기업 인사들의 엽기적인 행위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면서 소위 ‘갑질’로 대변되는 직장 내 괴롭힘이 문제되고 있다. 폭행·욕설과 같은 명백히 위법하고 지극히 비윤리적인 직장 내 괴롭힘은 근절되고, 그 가해자는 법적인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

  다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겪을 수 있는 부당한 일 모두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규정해 해결하려는 단계 이전에, 어떤 행위가 금지돼야 할 직장 내 괴롭힘인지, 해당 조직문화에서 수용해야 할 수준의 행위인지에 대한 기준을 정립하는 과정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개개인의 주관적인 기준에 따라 서로를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로 비난하면서 조직의 통합적인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문제인식과 그 해결을 위한 노력은 이제 걸음마 단계에 있지만, 사회 각 분야에 걸쳐 직장 내 괴롭힘 및 유사한 갑질문화를 개선하려는 노력들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대학원 사회조직도 여러 지위와 유형의 사람들이 함께 연구하고 일을 하는 곳인 만큼 예외일 수는 없다.

  일에 대한 지휘명령을 받는 반대급부로 임금이라는 대가가 주어진다고 해서 ‘인격의 지배’까지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니다. 나의 노동을 팔아도, 나의 영혼을 팔수는 없다는 것이 ‘참된 노동’의 속성이라는 것도 같은 표현이다. 대학원생들의 연구와 업무도 그들의 ‘영혼’이 살아 있는 ‘참된 공부’가 될 수 있도록 대학원 구성원의 의식개선과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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