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센터는 무엇을 보호하는가

  본교 대학원 사회복지학과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다. 제보에 따르면 가해자로 지목된 박사과정생 B는 같은 학과의 여학생 A에게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가했다. A는 계속된 일상적 괴롭힘에 동료 원우 C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이 과정에서 다른 피해자 D가 있음이 밝혀졌다. D는 동료 원우 E와 F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동료 원우들은 이번 달 학과 종강 모임에서의 피해가 우려돼, 12월 14일경 피해자 D에게 즉시 인권센터에 신고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2차 가해에 대한 두려움으로 피해자들은 직접 신고를 주저할 수밖에 없었고 본교 인권센터 홈페이지에 고지된 신고 절차에 따라 대리인 신고 접수를 진행하기로 했다.

‘내방’해야 신고 가능?

  그러나 실제 신고 접수 과정에서부터 피해자들은 난관에 부딪혔다. 제보에 따르면 E는 12월 14일 9시 30분경, 인권센터에 유선으로 사건을 신고하며 학과 일정으로 예상되는 추가 피해 위험이 있으니 ‘즉시 전수조사를 실시해 추가 피해를 사전 예방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인권센터는 “신고인과 피신고인의 인적사항이 포함된 신고서 작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전수조사를 실시하기에 당장 다음 주는 시간이 촉박하다”고 답했다.

  또한 E는 2차 가해에 대한 염려 때문에 피해자들이 신고를 어려워하는 상황임을 알렸으나 인권센터는 개입을 위해서는 본인이 직접 신고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또한 인권센터는 E의 전수조사 요청에 센터 내 상의를 거친 후 연락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이후 연락은 없었다. 인권센터 담당자는 이에 대해 “서로 상황을 알고 있는 것으로 예측되는 다른 신고자에게 상황을 전달한 것”이라고 밝혔다.

  D는 인권센터의 상담을 받아보기로 하고 F에게 자신의 인적사항을 전달해 인권센터에 신고 접수를 요청했다. F는 같은 날 10시경, 인권센터에 유선으로 본 사건을 다시 신고하고 D의 인적사항을 인권센터에 전달하면서 피해 조사 및 전수조사를 요청했다. 이에 인권센터는 피해자 D에게 연락해 “익명 신고는 신빙성이 없으므로 직접 방문해 진술서를 써야 한다.”고 안내했다.

 

출처: 중앙대학교 인권센터 홈페이지
출처: 중앙대학교 인권센터 홈페이지

  D는 인권센터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사건 처리 절차를 들어 항의했다. 인권센터 홈페이지의 “사건 처리 절차 안내”에 따르면, 상담 및 사건 접수 조건에 “피해자 또는 대리인도 신고 가능”이라 명시돼 있다. 그러나 인권센터에서는 “대리인 신고는 불가피한 상황에만 적용된다.”고 답변했다. 불가피한 상황이 무엇인지를 묻는 본지의 질문에 담당자는 “피해 당사자가 진술이 불가능한 정도의 피해를 입은 경우”라 답했다. 또한 D는 인권센터 운영 시행세칙(2018.8.23) 제2절 제8조(신고의 처리)의 “1. 신고를 받은 센터는 즉시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라는 조항을 들어 즉시 처리를 요청했으나 인권센터에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D는 이메일로 진술서를 보냈으나 또한 유효한 방법으로 인정되지 못했다. 인권센터 담당자는 피해자에게 사건 접수를 위해 또다시 ‘방문’을 요구했다.

하루 만에 바뀐 신고 방식

  같은 날 낮 12시 45분경 인권센터 담당자는 D에게 피해자들의 익명 진술서를 제출하면 접수가 가능하다고 연락했다. 가해자가 조사 중 내용을 부정하면 근거의 효력은 갖지 못한다는 말을 덧붙이며 말이다. 피해자 D는 이를 감수하고 요구에 따라 학생 다섯 명의 진술서를 작성해 이메일로 송부했다. 그러나 인권센터 측은 이메일을 확인한 후, 다시 신고자와 피신고자의 인적사항이 포함된 신고서를 작성하기를 요구했다. 또한 신고서에는 자필 서명이 필요해 센터를 방문해야 유효하다고 답했다. 직접 피해 사실을 밝히는 것에 심적 부담이 클 피해자는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후 방식 변경 등으로 시간이 지체돼 업무시간이 종료됐고, 결국 그날 신고 접수를 할 수 없었다.

변화가 필요하다

  제보자는 인권센터의 안일한 대처 상황에 피해자가 큰 충격을 받은 상태라고 전했다. “홈페이지에 안내된 신고 절차와 실제 신고 절차가 다르며, 피해자가 직접 방문하기 어려움을 호소했는데도 계속해서 내방을 강조한 점, 신고 방식을 바꿔 피해자의 불안감을 증폭시킨 점, 신고인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점, 근무 시간 외 긴급연락제도가 부재한 점”을 현재 인권센터의 문제점이라고 말했다.

  인권센터 담당자는 내방을 요구하는 이유를 묻는 본지의 질문에 “신고서에는 서명이 필요하다. 피신고인에 대한 인적사항을 모르는 상태에서, 피해자들의 이야기만 듣고 조사를 실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담당자 개인이 처리할 수 있는 부분에는 한계가 있어 절차에 협조를 부탁한 것”이라 밝혔다.

  대학원이라는 공간의 특성으로 인해, 인권센터는 학내 성폭력 피해자가 거의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기관이다. 물론 인권센터의 담당자 한 명이 절차를 무시하고 조사를 진행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절차 자체의 변화를 꾀해야 할 때다. 피해자가 인권센터에 신고 접수를 하는 과정에서조차 상처를 받는다면 이는 ‘인권’센터의 역할이 충분치 못하다는 뜻일 것이다. 끊임없이 학내 성폭력 사건이 밝혀지고 있고, 또 발생하는 상황에서 피해자들은 아직도 직접 싸우는 중이다.

정유진 편집위원 │ _hege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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