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미 / 대학원신문 전 편집장

 

 

대학원신문이라는 이름

김혜미 / 대학원신문 전 편집장

  이번 학기 대학원신문의 출발은 ‘이름값 하고 산다는 무게’를 저울질 했다. 기득권층이 세대, 다문화, 죽음 등에 동의 없이 붙이는 이름을 비판하겠다는 의도는 멋졌다. 그러나 특집 주제 “ ”이라고 모호하게 붙인 이름을 통해, 대학원신문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본질 알기를 어렵게 하는 곳이 적지 않았다.

  첫째, 신문의 ‘완성도’에 대한 아쉬움이다. 학기 중 밀려오는 과제를 떠안으며 신문을 만드는 행위는 결코 여유롭지 않다. 그러나 그 분주함이 지면에 티가 난다면, 각 편집위원들이 제 역할을 다 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사회I면의 경우 세계화된 시대 속에 다문화로 묶인 사람들의 애환을 다루겠다고 특집기획의도를 통해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 해당지면의 편집자 주를 확인하면 ‘국제화’의 영향으로 빠르게 진행되는 다문화와 관련된 여러 이슈, 정책, 담론 등을 살피겠다 말한다. 진정 편집위원들은 ‘세계화’와 ‘국제화’의 차이를 몰랐던 것인가. 이 둘은 정말 다른 단어다. 대학원신문은 학술매체다. 기본적인 용어사용에 문제점이 발생했다는 것은 어쩌면 ‘편집회의’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둘째, 독자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기사들이 많았다. 그간 대학원신문은 원우들의 권리를 높이기 위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온 신문답게, 대다수의 원우들이 졸업 후 피할 수 없었던 ‘강사’라는 소재를 자주 다뤄왔다. 그리고 346호 포커스에서는 ‘강사법’이 개정되며 강사가 노동자로서 기본권을 보장받고 ‘파리 목숨’ 신세를 면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나머지 절반의 파리를 박멸하는 대학의 ‘꼼수’를 대학원신문은 미리 예측하지 못했던 것일까. 대학원신문 327호의 포커스의 한 부분을 빌려 적으면, 가끔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을 때가 많다. 부족한 취재 때문인지 문학적 표현으로 메꿔진 숭숭 뚫린 기사문은 강사법 개정이 원우들에겐 어떤 영향을 줄지 제대로 알 수 없다.

  셋째, 독자들의 의견을 수용하지 못했다. 지난 344호 신문평가에서 분명히 ‘구성 통일성’에 대한 지적을 한차례 받았던 바 있다. 그러나 한 학기가 지난 후 같은 지면에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왜 그렇게까지 무리를 했는지 이유도 잘 모르겠다. 심혈을 기울이고, 마음 아파해하며 적은 평가의 글을 쉽게 생각하지 말아 달라.

  노자는 도덕경을 통해 사물에 이름을 붙이면 본질을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그의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해보면, 이름이란 것은 어쩌면 깊은 이해와 올바른 판단을 잃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노자 사상은 ‘자기정립성’에 문제가 있어 비판을 받기도 한다. 나는 한 학기 만에 편집장에서, 저격수가 돼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나는 대학원신문이 자기 목소리를 잘 유지하길 바라는 사람이다. 대학원신문이라는 이름으로 잘 견디고, 버티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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