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철 / 상지대 미디어영상광고학부 교수

[다문화사회] ④ 다문화사회로 가는 길

대한민국은 다문화사회로 진입하는 길목에 서 있다. 국제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외국인 인구의 증가폭은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다문화사회로 접어들면서 사회 곳곳에서 난민법 개정, 외국인 인권 등 관련 이슈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다문화 담론을 시작할 시기다. 이번 연재에서는 국내외 다문화 관련 이슈와 담론을 살펴보고 다문화 정책의 방향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다문화사회와 이데올로기 ② 다문화주의와 국제이슈 ③ 외국인 인권실태 ④ 다문화사회로 가는 길

  다양성의 시대, 상호소통과 교류를 위한 미디어의 역할

 

정의철 / 상지대 미디어영상광고학부 교수

  이주민이나 외국인이 출연하는 방송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다. 대부분의 주류방송에서는 이주민을 가난, 부적응과 연결해 시혜의 대상으로 묘사하거나 부정적 뉴스 중심으로 재현하는 관행이 계속되고, 중국동포나 이주민 밀집 지역을 ‘위험한 동네’로 왜곡하는 영화도 속출하는 상황이다. 이주민에 대한 왜곡된 재현은 미디어가 상호소통보다는 오히려 문화 간 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한편 이주민들을 위한 정책조차도 동화주의와 한국화(韓國化) 관점에서 추진되면서, 이주민들의 일상에서의 권리는 물론 그들의 문화적 표현과 발언의 기회가 위축되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일방적인 한국화가 아닌 상호이해와 교류를 토대로 한 문화 간 공존과 사회통합을 위한 미디어의 역할이 더욱 요구된다.

 

미디어의 인종주의적 재현

  미디어는 지배와 통치의 수단임과 동시에 아래로부터의 참여와 자기표현, 소통과 연대의 수단이다. 화면·자막·음성을 통해 동시에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에 효과적인 교육 도구이기도 하다. 특히 미디어는 다문화사회 시민교육을 위한 ‘사회적 커리큘럼(Societal Curriculum)’으로써 다양한 문화나 삶에 대한 간접경험과 학습기회를 제공해 다른 문화를 배우고, 믿음을 계발하며, 태도를 내면화하고, 행동 패턴을 형성하게 한다.

  김현미의 2008년 연구 <결혼이주여성과 한국의 다문화사회 실험>에 따르면 이주민이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할 통로가 부재한 가운데, 텔레비전 등 대중 미디어는 다수자가 보고 싶어 하는 방식으로 이주민을 묘사하는 습관화된 재현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몇몇 주류방송은 이주여성의 약한 점을 부각하고, 이들이 작은 도움에도 기뻐하는 모습을 강조하며, 영어권 출신 이주여성과는 영어로, 동남아 출신 이주여성과는 한국어로 인터뷰하는 등 백인을 인종적 서열의 최상위에 위치시키는 경향을 보인다. 대중 미디어는 이주민에 대한 편협하고 왜곡된 이미지를 재생산하고 확산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이주여성들은 가난한 나라에서 가난한 시댁으로 시집온 ‘온순하고 운명 순응적인 여인’이라는 ‘동질화’된 집단으로 그려지고, 이러한 재현방식은 2005년 KBS <러브인 아시아>가 시작된 이래 ‘다문화 방송프로그램’들에서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미디어교육을 통해 미디어 내용에 대한 비판적 해석 능력을 키우고, 동시에 미디어 제작 참여를 통해 문화 간 소통과 이해를 강화하는 방안을 찾는 노력이 요구된다.

 

 다문화 맥락에서 소통권 이해하기

  ‘소통권(The Right to Communicate)’은 공론장에서 다양한 집단들이 가시성을 얻고, 그들의 목소리가 ‘경청 및 반영될 수 있는 권리’다. 소통권은 다양한 구성원들이 자신의 방식으로 관점들을 알리고, 주장할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전제로 한다. 소통권은 정보의 습득·공유·생산에 있어서 다양한 지역과 공동체의 참여에 바탕을 두며, ‘접근’과 ‘참여’를 통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정치적 실천에 기여하고, 약소지역이나 소수집단이 지배적인 집단·국가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장치의 역할도 한다. 소통권을 매개로 특정 계층이 아닌 다양한 구성원들의 권리들이 주장되고, 실천될 때 풍성한 상호문화 교류와 상호공존, 나아가 차별 없는 사회통합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주의 시대인 지금, 이주민 등 소수자들의 권리 주장이 부상하고 있으며, 이들의 미디어 참여와 목소리 내기도 증가하고 있다. 정책이나 미디어 담론에서 상호소통의 관점은 중요하다. 즉, 미디어 제작에 있어서 ‘다문화’로 구별 짓지 않고, 이주민과 선주민이 함께 하는 활동이 중심이 돼야 한다. 또한 미디어 참여를 통해 이주민과 선주민이 상호작용하고, 미디어를 함께 제작하면서 소통권을 실천할 수 있다.

  이는 국적 중심의 ‘시민권(Citizenship)’ 개념의 변화를 요구한다. 이용재의 2013년 연구 <사회갈등 대응을 위한 시민권의 재해석: 획득하는 권리로서 생활공동체의 성원권>에 따르면 국적 중심 시민권은 제도적 합법성·비합법성을 기준으로 정책 대상을 정하고, 제도에서의 동화가 비제도적 영역에서의 공존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실제로 다문화 정책의 지원 대상인 결혼이주여성과 그 가족들은 일상에서 여전히 차별적 관행들에 직면해 있으며, 이러한 상황들은 국적·제도 중심 시민권의 한계를 보여 준다. 귀화여부에 관계없이 이주민들은 그들의 문화나 언어, 인종 또는 출신 배경에 의해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상호소통과 교류, 상호변화를 지지하는 소통권 중심의 시민권 논의가 요구된다.

  이주민이 억압 없이 표현하고 발언할 수 있는 조건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주민의 미디어 참여와 목소리 내기를 뒷받침하는 소통권 정책이 요구된다. 나아가 단순한 차이의 인정이나 보여 주기가 아니라 다양한 상호문화 교류와 축적된 불평등의 해소를 위한 노력 속에서 참여와 소통에 기반한 사회통합이 모색될 수 있겠다.

 
 

상호소통의 장으로서 미디어의 역할과 정책의 필요성

  사회통합에서 주류와 소수집단들이 차별 없이 참여하는 과정은 필수적이다. 다문화 맥락에서는 구성원들이 이슈와 문화를 제약 없이 표현하고, 소통하면서 그들의 정체성과 문화가 존중받을 수 있는 권리인 ‘소통권’의 역할이 중요하다. 특히 이주민의 목소리가 경청 될 수 있는 조건과 함께 이들의 일상에 영향을 주는 담론의 공정함도 중요한 이슈다. 이 점에서 상업화된 미디어 환경에서 보이지 않거나 왜곡되게 재현되는 이주민들이 미디어 참여라는 장을 통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정책과 사회운동 차원의 노력이 요구된다. 이주민들은 직장과 가정에서 열악한 노동환경과 바쁜 일상에 직면하고 있으며, 이들의 경제적 지위도 높지 않다는 점에서 정책적 뒷받침 없이는 이들의 미디어 활동을 요구하기가 어렵다.

  <관악FM>의 모국어 방송, ‘베트남 목소리’ 팟캐스트, 이주민 주체 미디어 활동, <부산영어FM방송>에서의 베트남어와 중국어 방송 그리고 광주 고려인 공동체의 <고려FM> 방송 등 이주 배경 공동체들의 미디어 활동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의 미디어교육 참여도 증가하고 있는데, 이주여성들은 미디어교육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면서 자존감을 높였고, 학습한 제작능력은 자녀 교육과 고국과의 소통에도 도움을 줬다고 한다. <MWTV(이주민방송)>가 주최한 ‘라디오 제작교육’에 참여한 이주민들은 다양한 이주민들을 만나고, 미디어 제작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면서 공감의 폭을 넓혔다는 점에 대해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한편 지역에 기반한 미디어 참여는 미디어 제작 이외의 실천적인 상호작용과 관계 맺기의 장이 되며, 개인과 공동체의 일상에 실질적인 변화를 준다. 미디어 참여를 통해 이주민과 선주민 간의 상호작용과 교류가 지역에서부터 강화되고, 이주민의 목소리가 경청될 수 있다. 이주민의 미디어 참여를 지지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방송사·시청자미디어센터·대학 등과 연계해 미디어교육의 전문성과 지속성을 높이고, 미디어 제작에 필요한 스튜디오·편집실·장비 등을 지원하는 정책이 요구된다. 지역과 공동체에 기반한 미디어 참여를 통해 이주민들은 그들의 정체성과 이슈를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으며, 재현의 대상에 머물지 않고, 문화적 표현과 소통의 주체로 변모할 수 있다.

  이주민의 미디어 참여는 미디어 활동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주민들은 취재와 미디어 제작 준비과정에서 다른 이주민들은 물론 선주민들과도 만나고, 연대하게 되며, 새로운 관계 맺기와 상호교류를 체험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를 위해서는 한국화나 동화주의에서 탈피해 이주민이 직접 목소리를 내는 미디어 활동과 이주민 미디어 활동가를 배출하는 미디어교육을 지원하는 정책들이 지역에서부터 강화돼야 한다. 특히 이주민과 선주민 모두가 참여하는 미디어교육의 장이 상호소통과 교류, 네트워킹의 장으로 확장될 수 있으며, 이는 차별 없는 문화 간 공존과 사회통합에도 기여할 수 있겠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