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끝나지 않는 싸움

 

권력형 성폭력, 악순환을 끊어야 할 때

 

  본교에서 또 다른 성폭력 사건이 공론화됐다. 가해자로는 영어영문학과 및 문화연구학과에 소속된 A교수가 지목됐다.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A교수 성폭력 사건 해결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에 따르면 본교 영어영문학과 A교수는 지난 11월 2일 자신이 담당하는 학부 수업의 수강생인 B에게 성폭력을 가했다.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비대위는 “A교수가 자신의 강의를 수강하는 다른 학생들에게도 사적으로 접근해 개별적으로 만남을 가지려 지속적으로 시도한 사실이 있어왔으며 성명서 발표 이후 추가 제보 사례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학내 성폭력

  올해 초부터 본교에서 성폭력 사건에 대한 고발이 쉴 틈 없이 이뤄졌다. 문화연구학과 C강사 사건에서부터 아시아문화학부 K교수 사건에 이르기까지, 2018년에 드러난 사건만 벌써 네 번째다. 아시아문화학부 K교수 사건은 본교 학생 4명이 K교수에게 2009년, 2011년, 2013년에 걸쳐 성폭력 당한 사실을 인권센터에 신고하며 공론화됐다. 인권센터는 K교수에게 파면을 권고했으며, K교수에게는 직위해제 조치가 내려졌다.

  그러나 12월 중순으로 예정돼 있는 징계위원회에서 K교수에게 실효성 있는 징계가 내려지기 어렵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본지 347호에서 언급했던, 5년으로 제한돼 있는 사립학교법(이하 사학법)의 교직원 징계 시효 규정 때문이다. 올해 사학법이 개정돼 시효가 10년으로 늘어났으나 K교수 사건에 소급돼 적용되지 않는다.

  K교수에 대한 처벌을 가로막는 것은 비단 법적인 문제만은 아니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교수의 ‘마음에 들지 못하면’ 연구를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는 학계의 문화다. 사학법의 징계 시효가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연구를 지속하고자 하는 피해자가 목소리 내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K교수의 징계 일정을 묻는 본지의 질문에 홍보팀 김진환 주임은 교무처의 지침으로 징계위원회가 열리는 정확한 시일을 공개하기 어렵다는 답을 내 놓았다. 학생들은 K교수의 징계 과정은 고사하고 징계위원회가 열리는 시일조차 알 수가 없다. 본부가 과연 가해자에게 정당한 처벌을 내리고 이를 학생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올해 초 언론에 공론화 됐던 C강사 성폭력 사건은 현재 가해자로 지목받고 있는 A교수가 소속된 문화연구학과에서 일어났다. 동료들과 학생들을 상대로 성폭행을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는 C강사에게 학내 인권센터 성폭력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10년간 본교 출강금지 ▲1년간 타 대학 출강금지 ▲자필 사과문 작성 및 해당 학과 교수진·재학생에 공유를 서약토록 권고했다. 하지만 조사과정에서 C강사는 도리어 피해학생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으며 이후 파장이 커지자 시간강사직을 버리고 학교를 떠났다. 퇴직한 C강사가 대책위의 권고 사항을 따를 의무가 없다는 점에서 실효성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C강사 사건 이후 학교가 차후 성폭력 사건의 예방 및 대처를 위한 뚜렷한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31명의 문화연구학과 졸업생들이 11월 29일 개재한 성명서에 따르면, C강사 성폭력 사건 이후 학생들은 문화연구학과 교수진들에게 성폭력 사건 예방을 위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지만 교수진들은 인권센터 조사, 경찰 조사 종결 등의 핑계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위 주장에 대한 해명을 듣기 위해 본지는 문화연구학과 학과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인권센터 조사 중인 관계로 인터뷰에 응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안일한 대처, 기댈 곳 없는 학생들

  학교와 학과 차원의 진심어린 사과, 성폭력 예방과 발생 시 대처를 위한 프로토콜이 부재한 상황에서 영어영문학과 A교수 성폭력 사건에 대한 본교의 대처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이번 사건의 피해학생은 11월 12일 본교 인권센터에 A교수를 신고했다. 그러나 신고 이후에도 2주가 넘는 기간 동안 A교수는 제재 없이 대학원 및 학부 수업을 진행했으며 27일, 28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학부, 대학원 수업에서 배제됐다.

  또한 A교수는 피해자에게 접촉하지 말라는 인권센터의 권고를 무시하고 피해학생에게 접근하려 시도하기도 했다. 인권센터 관계자는 “비대위 성명이 나온 뒤에야 A교수가 피해 학생에게 접촉한 사실을 알았다. 인권센터가 이런 내용을 알았다면 접근 금지 조처 등을 내렸을 것이다”고 <한겨례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뒤늦게 해명했다.

  현재 이번 A교수 사건에 대한 조사를 맡고 있는 학내 인권센터는 작년에 기존 2명이었던 인권센터 전문연구원을 4명으로 증원했다. 그러나 본지 344호에서 지적했던 바와 같이 2만 5천 명에 달하는 본교의 학생 수를 감안한다면 여전히 부족한 인원이다. 전문연구원 증원 필요성을 묻는 본지의 질문에 인권센터 관계자는 “사건이 계속 늘어나니까 일할 사람이 많아지고 공간도 넓어지면 더 좋기는 하겠지만 학교 사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답했다.

  올해 학내 구성원들은 미투 운동을 통해 수평적 구조에 기반한 교육기관이어야 할 대학에서 일어난 교수-학생간의 권력형 성폭력을 고발하고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엄단하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의 부재와 C강사, K교수 사건을 거치고도 A교수를 마주하게 한 대학의 안일한 태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비대위 관계자는 “A교수에 대한 엄중한 처벌, 피해자와 참고인의 2차 피해 방지와 더불어, 학내에서 더 이상 권력형 성폭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학교에 재발 방지책을 요구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박재홍 대학원 총학생회 회장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피해자에 대한 학교의 보호조치도 부족하고 학교 측에서 해당 교수에게 부과하는 징계 수위도 낮다고 생각한다. 성명서를 공고하고 학교 측에 요구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방안을 강구중이다”고 밝혔다.

  올해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본부가 학내 성폭력 예방 및 대처를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 놓을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김유중 편집위원 | yuri3956@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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