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정 / 문화연구자

 

산업화와 공간의 문화 정체성 형성과정
- 타자 공간으로서 종로 3가를 중심으로 -


남수정 / 문화연구자


  서울은 국가 산업화의 한 과정으로 개발돼 왔으며 근대적 문명 공간을 목표로 치열하게 관리돼 왔다. 덕분에 현대 서울은 글로벌 메트로폴리스로 발돋움했다. 이러한 도시 공간에는 서울이 원하지 않는 존재와 공간이 있다. 노동, 이성애, 소비 정상성 등의 규범에서 이탈된 존재들은 서울 공간에서 배제돼야 마땅했다. 현대 서울 재생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경유하며 자본을 통해 집단을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배제한다. 바로 종로 3가의 타자 공간이다.

남성 노인의 공적 친교 공간

  탑골공원은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들이 쉽게 찾던 공공 공간이었다. 탑골공원 주 이용자 중 노인들이 급증한 것은 1998년 외환위기의 여파라고 할 수 있다. 탑골공원 후문에 있는 원각사는 1994년부터 공원에서 빵과 우유를 나눠주는 급식 봉사를 시작했다. 1998년 외환위기 때문에 노인 빈곤층이 급격히 확대되자 원각사의 무료 급식은 전면 확대돼 한 끼 식사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공원에 빈곤 노인이 급증하자 서울시는 2001년 안국동에 서울노인복지센터를 설립하고 탑골공원과 그 일대의 빈곤 노인에 대한 실질적 복지를 제공했다. 복지센터에서는 당시에 무료 급식뿐 아니라 영화관, 노래방, 기원 등을 운영하고 다양한 복지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탑골공원에는 자연스럽게 노년 문화가 발달하게 됐다. 특히 남성 노인이 많이 방문하고 남성 노인의 문화가 공간의 일상이 됐기 때문에 남성 노인이 아닌 시민들은 탑골공원을 남성 노인의 공간으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공원을 찾지 않게 됐다.
  탑골공원을 주로 찾는 남성 노인이 집안이나 동네에 있기보다 도심 공원을 찾는 이유는 친교 활동도 공적 공간에서 이루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남성 노인은 생애 주기 중 노년에 접어들면서 생산과 재생산을 책임지던 가장 정체성에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탑골공원 노인들의 문화와 의례는 저렴한 비용으로 하루 시간을 도심 공공 공간에서 보내는 것이 됐다. 탑골공원은 ‘동네’가 아니고 서울의 도심에 위치한 공공 공간이다. 남성 노인은 사적인 친교 활동의 영역 공간으로서 공공 공간을 선택했다. 젊은 시절 바깥일을 나가듯 공원에 나온다는 뜻이다.
  이들은 하루 시간 ‘집’이라는 사적이고 내밀한 공간에서 탑골공원으로 탈출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원에서 여성의 존재는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공원에 입장하는 여성은 남성에 의해 두 가지로 분류된다. ‘점잖은’ 여성과 ‘점잖지 않은’ 여성이다. ‘점잖은’ 여성은 남편과 함께 산책을 나오는/사회적 교육을 잘 받은/내성적인, 가부장적 여성성에 부합하는 여성을 뜻하며 ‘점잖지 않은’ 여성은 일명 ‘박카스 아줌마’를 의미한다. 사회적으로 타자화된 남성 노인의 지배 공간인 탑골공원에서조차 여성은 규범적 젠더 질서에 따라 타자화되고 있었다.

 
 

게이 정체성의 자유로운 표현 공간

  1970년대 게이 남성의 성애적 실천은 사회의 혐오적 시선을 피해야 했기 때문에 은밀하고 폐쇄된 공간에서 이뤄졌다. 낙원동에 위치한 파고다극장과 파고다공원(탑골공원)은 남성 동성애자들의 만남의 장소로 이용됐는데, 이러한 영향으로 낙원동에 게이 바 밀집 지역이 형성됐다. 또한 1968년 김현옥 전 서울시장이 사창가 ‘종삼’을 무너뜨리며 도시의 공동화 현상이 일어난 것도 주요한 이유다. 저렴한 가격에 비어버린 공간을 매입하거나 임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는 당시 신고만 해도 영업이 가능했던 ‘소주 바’를 중심으로 게이 게토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사서함 153과 PC통신 등 퀴어미디어가 발달하자 전국적으로 종로 3가 게이 게토의 정보가 보다 쉽게 전달됐다. 1990년대 통신 기술 발달로 지역과 대학 내 모임들이 결성됐고 이 영향으로 동성애 인권운동 확산과 게이 게토 확산 또한 이뤄졌다. 인권 운동의 일환으로 ‘커밍아웃’이 논의되고 물리 공간으로의 ‘아웃’의 수가 급증했다. 이때부터 호프 형태의 업소가 등장했는데, 이로 인해 대규모 모임이 가능해지기도 했다.
  일상 공간에서 게이 남성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대체로 숨겨야 한다. 하지만 종로에서는 본인과 같은 정체성의 남성들이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마음껏 드러내고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종로 게이 게토가 게이 남성에게 전하는 가치는 ‘드러냄’과 ‘알아봄’의 자유로움이다. 따라서 종로 게이의 일상 문화도 ‘드러냄’과 ‘알아봄’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도시 최빈곤층의 일시적 주거지

  돈의동 쪽방촌에 정주하는 인구는 약 5백 명 이상이다. 토착민부터 장기 주거자와 단기 주거자가 존재하는데 특히 노숙인들이 투숙객 형태로 다수를 차지한다. 돈의동은 국내 최대 사창가 ‘종삼’이 위치했던 자리다. 1968년, 서울은 물리력을 동원해 일주일에 걸쳐 종삼을 해체했다. 수십 년 동안 축적된 윤락업소와 판자촌이 갑자기 사라지자 지역은 진공상태가 됐다. 주민들은 값싸게 건물을 매입해서‘세 장사’를 시작했다. 국가 산업화로 이촌 향도한 이주 노동자들은 주거에 적합하진 않지만 저렴한 돈의동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외환위기로 돈의동에는 노숙인의 수가 급증했고 모텔, 여인숙과 같은 공식적 숙박업소보다 값이 싼 비공식적 방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 무렵 잘게 쪼갠 방마다 일세를 받는 현재의 쪽방 형태가 만들어졌다. 현재 쪽방의 일세는 8천 원에서 1만 원, 월세는 24만 원에서 30만 원정도다. 쪽방 주민들은 돈의동이 다른 쪽방 지역과 달리 평지에 있고 지하철역이 가까우며 골목을 나가면 바로 식당가가 나와 생활하기에 편리하다고 말한다. 또한 탑골공원과 종묘공원이 가깝고 주변에 무료급식소가 많은 점도 돈의동의 장점으로 꼽았다.
  쪽방은 가족 경제의 몰락과 가족 해체 등으로 노숙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주거하는 공간이다. 또는 정신질환과 신체장애에 의해 가족과 보건 시스템에서 이탈돼 노숙을 경험하고 쪽방을 찾아오기도 한다. 쪽방은 일시적 주거지이며 동시에 순환적 주거지다. 노숙인 및 단기 주거인들은 서울의 5가지 쪽방촌 중에 몇 군데를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년 단위로 순환한다. 성인 한 사람이 들어가 잘 수 있는 크기의 방 덕분에 가족단위의 거주민은 보기 힘들고 대부분 1인이 단기로 거주한다. 쪽방 지역은 가족이 장기로 거주하며 재생산 활동을 하는 주거용도 지역의 일반적인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는 지역이다. 불안하며 유동적인 공간이다. 쪽방 빈곤 주거는 가족과 보건, 경제 등의 사회 시스템으로부터 탈락해서 불안한 주거 공간을 순환하는 경험이다. 하지만 이 공간조차도 여성 노숙인과 여성 빈민에게는 선택지가 되지 못한다. 쪽방은 도시의 가장 열악한 주거 공간이지만 그 공간에서도 여성은 배제되고 마는 것이다.

규범적 질서를 균열시키는 다양성의 공간

  공간을 억압하는 통치의 힘과 그 힘에 대응하며 자기 공간을 생산하는 타자의 공간 생산성이 뒤엉키며 종로 3가는 만들어져 왔다. 2018년 현재 통제, 타자의 공간 생산성, 그를 다시 통제하려는 자본 등이 첨예하게 충돌하고 있다. 종로 3가 공간의 문화 양상은 단순히 종로 3가를 소비가 저하된 비활력 공간으로 규정하고 도시의 담장에서 밀어낼 수 없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증명한다.
  종로 3가는 도시 규범의 정상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집단 공간에 대해 단편적이고 공시적으로 타자화해 온 서울에 타자의 일상이 가진 저항성을 드러낸다. 도시 통치가 의도하는 완전무결한 질서에 균열을 낸다. 청년층의 소비 유동 인구를 중심으로 하는, 이성애 정상 규범 등의 질서가 종로 3가에서는 와해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공간에서조차 규범적 젠더질서와 소비질서가 재기입되기도 한다. 종로 3가는 도시의 규범과 비규범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르페브르(H.Lefebvre)의 말처럼 “도시 공간은 이제 동질성-등방성으로 표현되는 고전적인(유클리드식, 데카르트식) 수학적 공간이라기보다, 밀푀이유(Mille-feuilles)처럼‘층층이 쌓인’다양성으로 부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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