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사회적 증상의 복수극


  ■ 연구에서 정의한 ‘복수극’이란

  ‘복수극’은 그리스·로마 신화나 비극에서부터 셰익스피어 작품을 거쳐 현대의 서사물들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나타나고, 우리의 고전설화에도 드물지 않게 등장하는 대중적 극 형태다. ‘복수극’이라는 개념이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것이 ‘원수를 갚는 내용을 주로 다룬’ 극 형태를 가리킬 뿐만 아니라, ‘참극’이나 ‘치정극’처럼 예술 장르 바깥의 행동이나 사건을 가리키는 일반적 용법으로 혼재돼 사용되기 때문이다. ‘복수극’이라는 명칭 자체는 1902년 쏜다이크(A.Thorndike)가 ‘Revenge Tragedy’라는 용어로 처음 사용했는데, 본 논문에서는 비극에만 한정하지 않고 ‘복수’라는 테마를 주요 내용으로 취하는 드라마들을 일컫는 것으로 ‘복수극(Revenge Drama)’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이때 ‘복수극’은 복수 테마를 사용하는 드라마들을 모두 칭하는 것으로, 기존의 장르 구분에 구애받지 않고 여러 세부 장르들에 걸쳐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초장르적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주인공이 복수하는 이야기라는 ‘내용’을 기준으로 구별하는 극 형태지만, 그 자체가 대결과 갈등, 되갚음과 반복이라는 구조와 ‘형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 복수 정동의 이행구조를 ‘전환 히스테리’라는 정신분석학적 관점으로 구체화했다

  정신분석학은 광기와 히스테리 등 정신 병리적 증상들을 통해 일부 광인들의 정신상태만이 아닌 일반 사람들의 정신과 심리를 설명해준다. 복수극이 사회문화적 징후로서 광기와 히스테리를 드러낸다고 하는 것은 드라마 속 인물들이 이를 드러낼 뿐 아니라, 복수극이라는 서사형태 일반이 우리 사회의 이러한 신경증을 드러낸다는 의미다. ‘전환히스테리’는 트라우마적 사건에서 기억은 억압돼 무의식이 되지만, 불쾌한 정동은 그대로 남아 육체적인 증상으로 옮겨지는 현상을 말한다. 본 논문은 전환히스테리가 말하는 기억과 정동의 분리, 정동의 다른 표상과의 결합이 복수 정동의 메커니즘을 설명해 줄 수 있다고 봤다. 그것은 복수극의 인물들 사이에 벌어지는 투사나 전이 같은 복수 정동의 메커니즘을 드러내는 동시에, 복수극이 사회 안에서 정동을 흡수하고 발산하는 방식의 정동 전환 메커니즘을 설명해준다고 본다.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분노와 원한, 불안의 정동이 복수극이라는 형태에 달라붙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 정치·경제·사회적 요인들은 복수극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본문에서 복수극의 특성으로 설명한 다섯 가지 현상(피해의식, 생존/경쟁/욕망/스노비즘의 문제, 악의 부상, 사적 복수, 복수와 폭력)은 2000년 이후에 노골적으로 가시화된 사회적·심리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1997년 외환위기 사태를 거친 이후 경제위기의 전면화와 장기침체, 불평등과 양극화의 심화를 맞게 된다. 외환위기 이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이 사회 전반의 불평등과 빈곤층 확대를 낳았다. 특히 1987년 민주화대투쟁 이후로 사회 전반에서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문화적 풍요와 향상이 있었기 때문에, 외환위기 이후 사람들이 느끼는 상대적인 빈곤과 박탈감, 위화감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대량해고와 실업, 비정규직화 등 생존 위기가 휩쓸고 지나가면서 사람들은 분노와 불안에 휩싸이고 피해의식에 시달리게 된다. 복수극은 내가 겪는 모든 위기와 불안을 떠맡을 강력한 적을 만들어 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승리를 구가하는 방식으로 시대 상황과 심리에 긴밀히 조응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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