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18.11.7 수 13:35
기획학술
[중앙아카데미아] 왜 '복수극'인가
임해솔 편집위원  |  tuddldos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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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호]
승인 2018.11.07  03:4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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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 아카데미아: 『‘복수 정동’의 이행 구조 연구: 2000년 이후 한국 TV드라마 ‘복수극’을 중심으로』 신주진 著 (2018, 문화연구학과 박사논문)


  본 지면은 학위 논문을 통해 중앙대 대학원에서 어떤 연구 성과가 있는지 소개하고, 다양한 학과의 관점을 교류하고자 기획됐다. 이번호에서는 문화연구학과 신주진의 박사 논문 『‘복수 정동’의 이행 구조 연구: 2000년 이후 한국 TV드라마 ‘복수극’을 중심으로』을 통해 드라마 복수극이 담고 있는 감정·정동 구조에 주목해 복수극의 전개양사과 특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왜 ‘복수극’인가


신주진 / 문화연구학과 박사


  현재의 TV드라마는 자극성, 폭력성, 선정성을 강화해가고 있다. 이는 종편과 케이블TV, 인터넷 등 채널과 매체·플랫폼의 다변화와 상관적이다. 이는 무엇보다 다양한 장르를 표방하는 범죄물의 증가로 나타났다. 복수극은 기존 가족드라마 안에서 나타난 ‘막장드라마’와 새롭게 각광받는 ‘장르드라마’를 함께 아우르는 현상이다. TV드라마 뿐 아니라 영화와 웹툰 등 장르와 매체를 넘어 대중 서사물 일반에서 일어나고 있는 초장르적 장르 현상인 셈이다. 복수극 시대의 시작을 알린 TV드라마 <인어아가씨>와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이 2002년에 동시 등장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이 우리 사회의 어떤 중요한 징후를 드러낸다는 것에서 본 논문은 출발했다. 이는 신자유주의적 체제가 본격화되는 2000년 이후에 뚜렷이 나타났는데, 이렇게 우후죽순 늘어난 복수극들에는 이 시대를 설명해주는 공통의 감정과 정동의 구조가 내재하며, 그것이 사회 전체의 감정, 정동 구조와 공명한다고 보았다.

   
▲ 출처: tvN, <부암동 복수자들>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복수극 열풍


  2000년 이후 만연한 복수극은 현 사회의 실상을 드러내는 징후적 현상이다. 분노와 불안, 증오와 절망으로 가득한 사회 분위기와 대중적 심리가 복수극이라는 형태로 가시화된 것이다. 복수극은 이전투구와 무한경쟁으로 황폐해져가는 21세기 사회현실을 반향하는 것인 동시에, 복수극 자체가 사회현실을 향한 강력한 감정 분출과 해소의 대리 기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대 복수극의 특성으로 피해의식, 생존/경쟁/욕망/스노비즘의 문제, 악의 부상, 사적 복수, 복수와 폭력 등의 요인을 들 수 있는데, 이는 복수극이 이 시기 사람들의 감정·정동 구조를 관통하고 있음을 명확히 드러낸다.
  받은 만큼 되돌려주고 당한 만큼 되갚아주는 복수의 원리는 현재와 같은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경제논리에 그대로 상응한다. 복수가 부당함과 불공평함에 대한 약자들의 분노와 원한에 기초한다면, 그 기저에 놓인 피해의식은 오랜 세월 억압과 종속에 처해왔던 사람들이 갖게 되는 ‘당하고 살아왔다’는 생각에 해당한다. TV복수극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가부장체제에서 학대받고, 억압받고, 당하면서 살아온 여성들의 피해의식이 복수라는 일대 반격의 판타지로 나타난 점이다. 생존투쟁, 무한경쟁, 승자독식의 사회 정동과 직결된 복수극이 마침내 그/그녀를 죽여야만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과 경쟁, 욕망의 제로섬 게임을 벌이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이 모든 것이 복수극을 통해 부와 권력, 성공과 지배에 대한 집착으로 추동되는 노골적인 속물성을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속물형 인간들에 대한 격한 공감이 일어나고 악인 캐릭터들이 급부상하게 되는데, 부당하게 부와 권력을 지닌 악인들이 분노와 적개심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선망과 매혹의 대상이 된다. 악인들에 맞서다 스스로 악인이 돼가는 주인공들은 권력형 악인들을 묘하게 빼닮았다. 이 복수의 주인공들이 사적 복수를 벌인다는 것은 공적 영역이 축소되고 모든 것이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겨진 신자유주의 시대를 반증하는 것이지만, 이는 결국 사회악에 대한 분노와 응징이 개인적 이해관계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들은 사회적 억압, 배제와 분리의 경계를 뛰어넘고자 폭력의 무기를 직접 손에 쥐는데,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처벌의 형태로 법과 제도 자체의 폭력성을 드러내주기도 하지만, 폭력의 전시를 통해 강화된 남성성을 과시하기도 한다.


‘복수 정동’의 이행구조


  본 논문은 비판적인 문화연구의 연장으로 정동이론과 정신분석학에 대한 논의를 바탕으로 ‘복수 정동’이라는 개념을 추출하고, 2000년 이후 대표적인 TV드라마 복수극 다섯 편에 나타나는 복수 정동의 이행 양상과 구조를 살펴봤다. ‘복수 정동’은 복수극을 특징짓는 분노, 원한, 증오, 불안 등 여러 감정들과 정동을 모두 합친 개념이다. 이는 복수의 주체와 복수의 대상 사이에서 움직이고, 또 다른 인물들에게로 퍼져나가며, 그리고 복수극과 복수극 시청자들 사이를 흐른다고 가정되는 일정한 정동의 흐름을 하나의 전체적 움직임으로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복수 정동의 이행 메커니즘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복수의 주체인데, 분석한 복수극들의 복수 주체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복수 정동에 휩싸인 우울증자이자 자신의 복수 정동을 외부 대상에 부착시키는 히스테리 주체라고 볼 수 있다. 드라마 시간 안에서 복수 주체와 복수 대상은 그들의 행위 속에서 동시에 복수 정동을 공유하면서 주체에서 대상으로, 대상에서 주체로 자리바꿈을 하며, 양쪽 모두 주체와 대상으로 분열되는 불안정한 변이와 이행의 과정 안에 놓인다.
  여기서 복수 주체와 복수 대상 사이 복수 정동의 일차적 이행 메커니즘은 복수 정동의 등가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당한 만큼 갚아주는 복수가 정확히 자본주의 교환법칙을 따른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교환거래의 등가/비등가라는 내재적 모순(등가 교환이되, 동시에 거래의 이문이 남아야 하는) 역시 지니고 있음을 드러내준다. <인어아가씨>나 <아내의 유혹>(2008)은 임자 있는 남자를 빼앗는다는 동일 형식의 복수로 그 등가 방식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러한 등가교환의 내재적 모순과 외적 한계로부터 복수 정동의 전환과 확산이 발생한다. <인어아가씨>나 <너의 목소리가 들려>(2013)에서처럼 최초의 복수 사건이 대리 복수나 대리 타깃에 의해 점차 죄 없는 대상들에게까지 복수 정동을 확산시키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그것은 오랜 관습에 의해서, 혈연관계에 의해서 정당화된다.
  특히 투사나 전이에 의한 복수 정동의 전환은 전환히스테리 양상과 유사하게 엉뚱한 대상을 향해 정동을 이전하는 것으로, 현 시기에 벌어지는 온갖 혐오 정동의 전가 현상 설명에 큰 시사점을 준다. 멜라니 클라인(M.Klein)의 대상관계이론에서 내가 대상에 대해 가진 공격성이 그 대상이 나에게 부여한 것이라고 여기는 ‘투사’(또는 ‘투사적 동일시’)나 그 원초적 대상관계를 다른 대상과의 관계에서 반복하는 ‘전이’ 개념을 살펴볼 수 있다. <아내의 유혹>에서 복수의 출발은 신애리(김서형)가 구은재(장서희)에게 갖는 투사적 동일시라 할 수 있으며,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민준국(정웅인)이 장혜성(이보영)을 복수 대상으로 삼은 것은 투사와 전이의 뚜렷한 사례다. 이러한 빗나간 대상 전환은 주로 사회적 약자를 향해 행해진다는 것이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명백히 나타났다.


복수하지 않는 복수극


  복수가 또 다른 복수를 낳는 복수의 연쇄와 악순환 속에서 복수가 계속될 수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복수가 실패하고 지연되기 때문이다. <추적자>(2012)에서 잘 드러나듯 복수의 지연이 복수극의 이야기 진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셈인데, 이러한 복수의 시도-실패·지연-재시도의 반복이 복수극 전체 서사를 구축한다. 최후의 처벌과 단죄로 끝이 나는 복수극 결말에서 죽음은 가장 극적이고 폭력적인 복수 정동의 중단이다. <마왕>(2007)이 보여준 죄의식에 따른 자기 처벌의 몸짓은 자신의 복수 정동을 자기 안으로 회수하려는 비극적 결단이다.
  그러나 복수 정동의 결정적이고 근본적인 전환은 무조건적인 복수 정동의 중지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혜성이 행한 복수의 거부와 중지는 선언이자 행위로서 무조건적이고 전면적으로 수행됐다. 혜성의 복수 중지 행위는 자크 라캉(J.Lacan), 슬라보예 지젝(S.Zizek), 주디스 버틀러(J.Butler) 등 많은 논자들이 설명한 안티고네의 윤리적 행위를 떠오르게 하는데, 그것은 자기희생이나 용서와는 다른 체제위반적이고 저항적인 형태의 윤리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복수 정동의 이행 구조가 말해주는 것은 개인의 절대화된 생존이데올로기다. 시대적 광기와 히스테리로서 복수 정동은 억압된 사회적 분노의 자생적 표출로 사회적 정의와 평등, 공평함을 요구하는 일차적 목소리가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수 정동 자체의 폭력성의 문제는 물론이고, 무엇보다 복수극이 정동의 형태로 신보수주의적인 지배 가치와 믿음의 체계를 강화시키는 것이 더욱 문제적이다. 이것이 복수극의 사적 복수가 지니는 한계를 비판적으로 고찰해야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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