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정 / 한국 과로사·과로자살 유가족모임 운영자

[한국 사회와 죽음] ③ 과로사회와 과로사

 과중한 업무, 치열한 경쟁, 복잡한 인간관계로부터 야기되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현대인들은 ‘과로죽음’이라는 위험에 노출돼 있다. 최근 정부의 주 52시간 근로정책 시행과 함께 노동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대되면서 과로사 이슈도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로죽음을 예방하고 과로사 유가족들을 지원하기 위한 뚜렷한 대책은 묘연하기만 하다. 우리는 과연 과로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자살의 사회적 이해와 예방책 ② 미디어 속 죽음 ③ 과로사회와 과로사 ④ 웰다잉-어떻게 죽을 것인가

 

한국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 과로죽음

 

강민정 / 한국 과로사·과로자살 유가족모임 운영자

 오랫동안 ‘과로사회’란 단어는 한국사회를 규정짓는 대표적인 단어였다. 하지만 ‘과로죽음’이라는 개념은 아이러니하게도 참으로 한국사회에 뒤늦게 다가왔다. 아니, 어쩌면 아직도 덜 다가왔을 수 있다. 과로죽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부족하다. 아직까지도 우리는 ‘과로사회에서의 죽음’을 개인적인 죽음이라고 인식하고 있기에, 과로죽음 유가족들은 여전히 가족의 과로죽음을 부끄러워하며 숨기기에 급급해한다. 매달 만나고 있는 과로죽음 유가족들은 하나같이 이와 같은 맥락의 말을 들려주곤 한다.

“회사 화장실에서 그렇게 됐다고 연락받고... 창피했어요. 남들이 보면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렇게 된걸까?’가 아니라 ‘그걸 못 버티고...’ 이런 시각에서 저희 가족들을 바라보는 것 같았어요.”

 

과로죽음의 새로운 맥락 짚기

 우리는 한국사회에서의 과로죽음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를 거부하고 있다. 예컨대 ‘한국인은 원래부터 성실해서 과로 DNA를 가지고 있다, 요즘 세상에 그 정도 일도 안하면 어떻게 먹고 살 수 있나’ 식의 현실적인 이해에 기반한 체념으로 과로를 우리가 해내야 하는 어떠한 것 혹은 우리의 본성으로 간주해 과로죽음을 개인의 취약성 문제로 자연스럽게 환원해버리고 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로라는 것은 개인화된 문제인 것일까. 일찍이 마르크스는 노동자의 수명단축, 돌연사 등에 대해 문제제기하며 노동자의 건강문제는 착취의 산물임에 주목했다. 즉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과로’란 매우 과중한 착취가 노동자의 육체 및 정신을 손상시키는 것이다. 이처럼 착취가 과중노동에 포함되는 것이라면 과로는 자본주의의 핵심적 원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노동자들은 투쟁을 통해 이러한 원리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했지만, 이에 대응해 자본가들은 과학성에 기반해 적정노동시간, 적정노동강도 등의 말로 과로에 합리성을 부여했다. 특히 신자유주의 이후 이러한 과로는 불안정노동, 성과주의 등과 맞물리면서 생존권, 건강권의 문제로 이어지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자본가는 자기관리담론을 통해 과로죽음을 개인화·주변화하고 있다. 그렇지만 꽤나 오랜 시간 반복된, 많은 과로죽음사건들은 과로죽음 안에 사회구조적 문제들이 관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 이상 과로죽음은 개인의 예외적 일탈이 될 수 없다.

 물론 과로죽음이 자본과 노동의 착취적 생산관계에 따른 필연적 비극이라는 당연한 문제제기에도, 과로죽음의 맥락을 다시 한 번 짚어볼 필요는 있다. 과로의 색깔이 자꾸만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과로문제는 작업장 내에서만의 문제로 매우 한정적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작업장 밖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성과주의가 중요한 기재가 돼버린 오늘날 근로자들은 퇴근 후 작업장을 벗어났다고 하더라도 실적압박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며 작업장 밖의 삶 역시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계량화 되지 못하는 노동시간의 양이 상당히 많다. 특히 IT기술의 발달로 노동과정이 탈공간화된 형태로 재편돼 과로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요즘 직장인들의 공감단어가 ‘카톡감금’인 것은 이러한 문제를 대변해준다. 이제는 과로죽음이 단순한 근로 양의 문제만은 아니며 노동의 질적 요인도 긴밀하게 결합돼 있는 사회적 산물임에 주목해야한다.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는 싸움

 최근 미디어를 통해 과로죽음에 대한 사회적 문제제기가 크게 일어나자 정부는 과로죽음에 대한 산업재해 인정을 더욱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태도에 쉽게 다행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국가는 과로죽음을 산업재해의 한 분야로 넓게 인정하면서도, 과로죽음을 병리적인 혹은 상대적으로 약한 개인에게 일어난 안타까운 사건으로 바라보며 과로의 정상성에 대한 규범을 재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죽음으로 이어지지 않을 만큼의 과로는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고, 다만 불운하게 예외적인 피해를 보상해주는 규범이 재생산된다면 결코 한국사회에서의 과로죽음이 반복되는 악순환의 구조적 원인을 밝힐 수 없을 것이며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도 없을 것이다.

 사회구조적 문제로써 과로죽음에 대한 산업재해인정은 죽음의 근본적인 원인을 유가족들이 증언하는 것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다. 또한 산재 승인율을 높이는 것 외에 과로죽음을 밝혀내는 것을 방해하는 제도도 함께 개선돼야 할 것이다. 가장 먼저 과로죽음여부를 오롯이 유가족이 증명해 내야 하는 입증부담이 완화될 필요가 있다. 현재 과로죽음의 산재승인을 위해서는 입증책임이 과로죽음 유가족에게 있기 때문에 유가족들은 슬픔을 온전히 느끼고 애도의 시간을 갖기도 전에 스스로 가족의 죽음의 원인이 과중한 업무와 관련 있음을 입증해나가야 한다. 이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아 유가족들은 지금도 극도의 고통을 겪고 있다.

 과로죽음은 궁극적으로 법률적·의학적·사회학적 인과관계가 복잡하게 교차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변호사, 노무사, 의사 등 전문가들과의 결합 하에서만 온전하게 수행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전문가들은 조력자일 뿐이다. 전문가들에게 산재승인에 필요한 자료를 가져다 줘야하는 것은 유가족의 몫이다. 망인의 과로생활을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유가족이기에 치열하게 고민하는 이 과정에서 망인을 돌보지 못한 죄책감 등에 빠져 유가족들은 육체적·정신적 피로도가 심화된다. 특히 망인의 과로실태에 대한 자료는 대부분 회사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쟁취하기 위해 유가족들은 회사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야 한다.

 죽음의 형태에 따라 감정적·신체적 반응은 상이하게 나타나는데 과로죽음 유가족들이 느끼는 비통함의 정도는 자연사나 신체질병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의 유가족보다 훨씬 더 크다. 거부, 책임감, 죄책감 등 다른 유가족들에게는 찾아보기 힘든 요소들이 나타난다. 나아가 ‘나약해서’ 업무를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는 사회적 낙인, 수치심 등을 더욱 깊게 느끼게 된다. 과로죽음 유가족들은 산재입증과정이 너무 외롭고 힘들지만 망인이 결코 약해서가 아닌, 버틸 수 없을 만큼 과중한 업무로 인해 죽음으로 이어지게 됐음을 밝혀 망인에 대한 명예회복에 성공하기 위해 지쳐있는 자기 자신을 애써 다독이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근로기준법상 사용자는 근로자의 노동시간을 반드시 기록해둘 의무가 없다. 때문에 과로죽음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회사가 근로자의 근로시간기록이 없다고 거짓말을 해도 유가족들은 어떠한 대응도 할 수 없다. 특히 과로죽음으로 의심되는 사건이 발생해도 근로감독을 해야 하는 사유에 해당하지 않아 과로죽음사건 이후 바로 대응해 자세하게 밝혀내는 조사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의 빈공간은 과로죽음의 구조적 원인을 밝혀내고자 하는 유가족에게 더없이 잔혹한 것이며, 더 이상의 과로죽음을 막기 위한 사회구조적 방안을 마련하는데 방해막으로 작용한다.

 

과로와 죽음의 연결고리 끊기

 과로죽음을 확대해서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사회구조적 문제’로써 과로와 죽음의 인과관계를 반드시 살펴봐야 한다. 과로죽음을 둘러싼 제도의 개선논의 역시 단순한 보상과 치유에만 초점을 두고 이뤄질 것이 아니라, 일터에서의 과로와 죽음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한 접근을 해야 한다.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과로죽음 피해자는 예외적인 경우로 원래부터 심신이 미약했다는 병리적 접근에서 탈피해 누구나 과로죽음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함께 연대해 과중한 노동에 대해 조정을 요청하거나 거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과로죽음 유가족모임을 운영하는 한 사람으로서, 더 이상 새로운 유가족이 나에게 연락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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